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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ul 04. 2021

우리 아기는 만병통치약

엄마가 아팠던 날

우리 가족은 일정한 패턴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유독 늦게 자는 아기 때문에 이른 '육퇴'를 하기는 어렵다. 밤 10시경, 남편 주도로 아기 목욕을 시킨다. 아기를 다 씻긴 후, 로션을 발라주고 깨끗한 새 옷을 입히는 일은 나의 몫이다. 그동안 남편은 목욕 뒷정리를 한다. 그 후, 나는 아기의 분유를 타서 먹이고, 충분히 트림을 시켜준 후 재워주는 것 까지가 하루 육아의 패턴이다. 남편은 마찬가지로 그 시간 동안 설거지라던지 집안 정돈을 한다. 자연스레 남편과 나의 일은 나뉘어 있다. 가끔 한 사람이 저녁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야 하기에 말 그대로 '독박 육아'의 처절함을 느끼게 된다.


어제는 이상하게 낮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산후풍인 걸까, 조금만 찬 바람을 쐬어도 온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바깥 기온은 30도에 육박하고 남편은 옆에서 덥다고 하는데, 난 혼자 긴바지를 입고 있는데도 자꾸만 몸이 덜덜 떨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를 목욕시킨 후 로션을 발라주려는데 극심한 두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머리가 너무 아파..." 힘없는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아기 욕조를 닦다 말고, "내가 로션 발라줄게, 들어가서 쉬어"라고 했다. 아픔을 참고 해보려 했지만 두통은 점점 심해졌고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남은 육아의 몫을 넘겨주었다.


미안한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도와주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안방에 들어가서 쉬었다. 두통으로 인해 쉽게 잠에 들진 못했다. 눈을 감고 있자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소리만 들어도 남편이 아기에게 무얼 해주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밥을 다 먹였구나.. 우리 아기 왜 트림을 안 하지..' 그렇게 거실의 상황을 눈에 그리며 두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아기가 잠투정으로 칭얼거리자 남편이 달래주기 시작했다. 토닥토닥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소리도 들렸다. 잠시 조용해지다가 아기의 울음은 더 거세졌다. "으아아아앙"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러다 아기의 울음소리에서 "으아앙 엄마~"라는 소리를 들었다. 4개월 아기라서 아직 '엄마'라고 말하진 못하지만, 가끔 잠투정으로 울 때면 '엄마'라는 소리가 섞일 때가 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우리 아기가 엄마를 찾는데, 내가 아프다고 계속 누워있을 수 없었다. 남편은 지친 얼굴로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아기를 건네받아서 안아주고 달래줬다. 처음엔 여전히 울던 아기가 어느새 엄마 목소리와 품을 기억하는지 금방 울음이 그쳤다. "응~ 엄마 여기 있지. 괜찮아 우리 아가~"라고 낮은 소리로 말해주니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선 아기가 제일 좋아하는 자세인 '엄마 배 위에 누워서 엉덩이 토닥여주기'를 했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으슬으슬했던 내 몸은 따뜻한 아기를 안고 있자 금세 녹아내렸다. 극심했던 두통은 잊은 지 오래였다. 안 오던 잠도 솔솔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기를 안은 채로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남편이 아기를 들어 침대에 옮겨주느라 잠깐 깼다. 나는 다시 편안한 마음과 자세로 잠에 빠졌다. 우리 아기 덕분에 나의 아픔은 싹 사라졌다. 우리 아기는 내게 만병통치약이다.








4개월인 우리 아기는 엄마 아빠의 존재를 알긴 하지만, 우리가 안 보인다고 해서 울지는 않는다. 할머니와 단 둘이 있어도 엄마를 찾지는 않는다. 어른들은 지금이 좋을 때라고 한다. 이제 엄마를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하면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해도 울고 불고 난리 친다고 한다. 화장실에 갈 때도 문을 열어두고 볼일을 봐야 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다던가. 그래도 나는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진정한 '엄마 껌딱지'가 될 우리 아기가 기다려진다. 분명 귀찮고 지친 마음이 들 때도 있겠지만, 아기에게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힘나게 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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