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첫 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나 또한 엄마 경력 1년을 꽉 채웠다. 아기와 함께한 1년은 내 생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매일 갱신되는 느낌이었다. 이 때가 너무 힘들어서 절대 둘째는 없을 거라고 다짐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어떻게 행복한 시간으로만 기억하게 되었을까? 너무 간단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 다섯 가지 방법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1.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사실 나도 아기를 키우는 동안 마냥 행복한 순간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기도 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약간의 큰 소리를 낸 적도 있다. 그러고 나서는 바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혼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 순간들을 모아 보면 항상 문제는 나였다. 아기가 문제 된 순간은 없었다. 아기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할 뿐, 엄마가 바라는 이상향이 컸던 것이다. '밥 먹을 때 장난치지 않고 잘 먹었으면, 잠잘 시간이 되면 금방 잤으면, 기저귀를 갈 때는 얌전히 있어줬으면' 등등 내가 바라는 대로 아기가 행동하지 않으니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장난기 많고 온갖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행동은 말썽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성장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기대를 낮추니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됐다. 아기가 안 자려고 버티면 '더 놀고 싶은가 보다'라고 생각했고, 밥 먹다 말고 짜증을 부리면 '배가 별로 안 고픈가 보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지겨운가 보다'라고 아기의 생각을 읽어주며 뜻대로 행동하게 해 주었다. 나 혼자 만들어둔 스케줄에 아기를 끼워 맞추려 하지 않으니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2. 비교는 금물이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엄마라는 존재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직접 1년을 겪고 나니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실 아직도 '내가 엄마라고? 그 위대한 엄마가 나라고? 글쎄 난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SNS에서 보이는 부지런한 엄마들과 비교까지 하게 되면 '나는 아기한테 저런 것도 못해주고 겨우 먹이고 씻기고 재운 게 전부인데..'라는 생각이 들기 십상이다.
비교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주간 SNS를 로그아웃하고 생각해보았다. 아기를 키우며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아기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놀아주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육아의 본질이기도 하다.
본질에만 집중하고 그 외에 것들은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자 육아가 편해졌다. 놀라운 변화였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아기 성향에 맞춰 놀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일찍 자는 아기는 그만큼 일찍 일어난다는 말로 위안 삼으며 오늘도 밤 10시 반에 육퇴하는 나 자신을 위로했다.
3. 멘탈을 키우자
아기는 정말 제멋대로다. 무엇이 문제 되는 행동인지도 잘 모르고, 심지어 아는 것 같은데도 장난치고 싶은 마음에 또 저지른다. 우리 아기는 밥 먹을 때마다 음식과 식기류를 바닥에 집어던진다. 마음이 너그러운 날은 단호하게 훈육만 하고 넘어가지만 그렇지 못한 날엔 바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푹 쉬고 참아보려 애쓴다.
육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밥 먹일 때마다 장난치는 혹은 거부하는 아기와의 식사시간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그만큼 난이도도 높고 부모의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그럴 때면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뇐다. ‘아기가 이러는 게 정상이지. 내 새끼인데 내가 참아야지.’ 그렇게 엄마는 아이를 키우기보다는 멘탈을 키운다. 식사시간뿐만 아니라 잠을 잘 안 자는 아기도 마찬가지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모든 것이 순조로운 복 받은 부모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느 한 가지라도 스트레스 요인이 있다. 그때마다 매번 화를 내고 힘들어한다면 엄마는 버틸 수 없다. 육아는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하지 않던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아기를 내 마음대로 조절하려 하지 말고 엄마의 멘탈을 잡아야 한다. 우리 집은 아기가 말썽을 부릴 때면 이렇게 말하고 넘겨버린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4.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남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육아 참여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주양육자인 엄마가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혹은 수시로 우울한 감정이 솟구치기도 한다. 그때 남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재빠르게 평화가 찾아오거나 순식간에 불난 집이 되기도 한다. 나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육아를 보며 왠지 모를 좌절감과 우울함이 감돌았던 때가 있었다. 계속해서 바닥으로 치닫는 기분을 도저히 끌어올릴 힘이 없어 그대로 두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 순간 나의 감정을 바로 캐치하여 위로해주었다.
육아하는 아내를 위로하는 방법은 사실 너무 쉽다. 딱 두 가지면 된다. 하나, 육아의 고됨을 인정해주고 고맙다고 얘기한다. 둘, 잠깐이라도 혼자 밖에 나갔다 오라고 말한다. 방법을 알려준 적 없지만 알아서 너무 잘하는 남편 덕분에 나의 산후우울증은 하루 이상 지속된 적 없이 끝났다. 매일 아기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것도 너무 행복하지만 엄마들도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누군가 안아주고, 보듬어주면 참 위로가 된다. 그게 바로 남편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5. 육아에 정답은 없다
맘카페나 육아서적을 보면 엄마들 사이에서 공식처럼 행해지는 것들이 많다. 도움이 된 것도 여럿 있었지만 나에겐 맞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아기는 일찍부터 분리수면 시켜야 한다', '출산 전 아기 손수건, 옷들은 3번씩 빨래해 둬야 한다', '아기 식기류는 무조건 열탕 소독하고, 장난감은 매일 소독약으로 닦아줘야 한다', '유산균은 일찍부터 꼭 먹여야 한다' 등등. 이 내용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히,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누구에겐 적합하고 좋은 내용일지라도 누구에겐 맞지 않거나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초보 엄마들은 불안한 마음에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렇게 한다는 글을 읽으면 다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 불안함이 없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안해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일 년을 키워보니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인생이 그렇듯이 내가 생각할 때 옳은 방향으로만 가면 된다. 남들 따라가는 게 쉬울 때도 있지만 따라가다가 지쳐버릴 때도 있다. 나는 열정 넘치는 선두주자 타입은 아니라서 따라하는 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엄마도, 아기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다 작성하고 보니 너무 뻔한 얘기만 한 것 같아서 브런치 발행을 몇 번이나 망설였다. 육아를 경험하면 누구나 알게 되는 내용이지만 임신 때나 신생아를 둔 엄마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대로 발행했다.
사실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다. 아기가 커가는 만큼 엄마인 나도 쑥쑥 크고 있다. 엄마의 성장은 아기와 달리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자라긴 자란다. 가끔은 내가 아기에게 알려주는 것보다 아기가 나에게 알려주는 게 더 많다고 느끼기도 하다. 이 세상이 생각보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다는 것을, 아기라는 존재를 통해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