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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쯔뜨끄 Sep 30. 2019

가을의 시작점에 전하는 여름 이야기

part3. 리트리버는 과연 물개, 물트리버였다.

골든리트리버는 물을 참 좋아한다.

포가 어릴 때는 실내 수영장, 야외 수영장, 바다 가릴 것 없이 여름이면 수영을 하러 다녔다. 물가에만 가면 포는 반쯤 미쳐서 간식을 줘도 먹지도 않고, 물속에서 수영만 했었다. 다이빙도 거뜬했다. 겁도 없이 물로 날아 뛰어드는 모습을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역시, 리트리버네요!"


여름이 시작될 무렵, 송추에 있는 애견 수영장에 갔다. 여름을 시작하는 멍멍이포의 수영!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물로 뛰어든 포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수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물속에서 한 네다섯 시간 놀다가 나오겠구나~ 싶어 나는 가지고 온 책을 펼쳐 책이나 읽으려고 했다.

으으따 시원하개

어디서 주워 온 건지, 여기저기 굴러다니 던 장난감을 하나 물어오더니 던져 달라고 한다. 힘껏 멀리 던져줬다. 신나게 물놀이하라고 멀리 머~얼리 던져줬다. 그럼 포는 신나서 공을 물러 갔다.

공을 물러 가개

그렇게 몇 번 공을 던지고 노는데, 어라? 포가 공을 물러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친 모습이 역력한 채로 물 밖으로 나온 포는 한동안 공을 던져도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모양이다. 물속에 발만 담그고 다른 개가 노는 걸 지켜만 본다. 맘은 공을 물러 뛰어들고 싶은데 한참을 발만 담그고 첨벙 거리던 포였다. 한참을 그렇게 구경만 하던 포는 물밖로 나와 테이블에 앉아버렸다. 놀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물속에서 5시간을 놀던 포였다. 좋아하는 고기도 마다하고, 간식도 마다하고, 쉴 때도 물속에서만 쉬던 포였다. 불쌍한 내 새끼. 늙어서 이제 체력이 달리나 보다.


한참을 쉬다가 물에 다시 들어간 포는 흡사 잠수함과 같이 물에 절반은 잠긴 채로 수영을 했다. 옆에서 노는 다른 어린 강아지들은 첨벙첨벙 거센 물장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수영을 하는데, 포는 능 그적 능 그적 천천히 천천히 수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얌전하게, 멋있게 수영하는구나!' 말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저 녀석 힘이 빠져서 저런다는 걸.

포는 수영을 참 잘했다. 딱히 가르치지도 않았는데..(라고 하면 좀 우습지만, 수영장에 가보면 수영에 익숙하지 않은 리트리버가 많다. 엄청 허우적대고 당황하고 있다.) 처음 수영장에 갔을 때에도 포는 저 혼자 물에 스윽 들어가 신나게 수영을 했다. 가끔 꼬리를 잡고 뒷다리 운동을 시키면, 힘껏! 물을 차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은 그 발길질이 많이 약해졌다. 이 날 수영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구명조끼 하나 필요하겠구나...


그리고 생겼다, 구명조끼!!!

반쯤 잠겨 수영하는 사진을 본 남자 친구가, 멍멍이포를 위한 니모 구명조끼를 선물해줬다. 구명조끼를 입고 처음 수영하던 날. 수영하기 훨씬 수월해진 멍멍이 포는 어릴 때 모습을 되찾았다. 물밖로 나오지 않았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행복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고마웠다. 선물해준 남자 친구에게도, 그 선물을 받고 신나게 놀아주는 포에게도.


이 날은 오후 3시에 수영장에 도착해 9시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대략 6시간 동안 물 밖에 나와 있던 시간은 30분? 지난번 방문과 다른 모습이었다. 힘들어서 숨을 컥컥 쉬면서도 다른 강아지의 공을 쫓아 물로 뛰어드는 멍멍이포. 구명조끼가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 몰랐다. 물트리버니까, 리트리버들은 다 수영도 잘하고 물도 좋아하니까 구명조끼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포는 잘하니까.. 포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걸 하나씩 느끼면서도 나는 이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이 들어가는 개를 키우는 게 처음이라 여러모로 서툴다. 신나서 공을 삑삑거리는 포 뒤에서 생각했다.

'엄마가 더 잘할게.'

포와 같이 놀러 간 똘순이는 닥스훈트다. 남자 친구와 함께 사는 이 녀석도 나이가 9살이 되어간다. 세 번의 출산 경험이 있고, 다섯 살이 되던 해 암 판정을 받았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 남자 친구는 똘순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을 다 줬다고 했다. 사람이 먹는 음식도 주고, 고기도 주고. 죽기 전에 맘껏 먹어라! 그런 맘으로 줬다는데, 똘순이는 이제 9살이 되어간다. 오진이었나 보다. 아무튼 그 때문에 똘순이는 살이 많이 쪘고, 체력이 좋지 못하다. 물도 되게 싫어해서 같이 수영장에 가면 혼자 자리 차지하고 꾸벅꾸벅 졸며 누워있다. 귀여운 녀석이다.

이 날 포는 보더콜리 레오의 장난감을 제 것인 양 가지고 놀았다. 레오네 엄마 아빠가 던진 장난감을 레오보다 먼저 물어오고, 레오네 엄마 아빠한테 갖다 줬다. (어라???) 프리스비를 저렇게 좋아했단 말인가. 공대신 프리스비를 사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나는 사실 알고 있다. 포는 프리스비가 좋은 게 아니라, 남의 장난감이 좋은 거 란걸. 자기 것 놔두고 처음 본 남의 장난감을 탐내는 녀석.

재미있는 건 애견 수영장에 가 보면 다른 모든 개들도 자기 장난감을 두고 남의 장난감을 탐낸다는 거다. 모든 개가 서로의 장난감을 노리면서 장난감이 한데 다 뒤섞이는 데, 죽어도 자기 장난감은 물러 가지 않고, 남의 것만 물러 뛰어든다. 그 모습도 참 재밌다. 이 개놈들!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놀다 집으로 왔다. 수영하고 돌아온 날에는 포가 꿀잠을 잔다. 코를 드르렁드르렁.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잔다. 가끔 꿈속에서도 수영을 하는 건지 발을 움찔움찔 수영하는 모양을 하는데, 그 모습도 얼마나 귀여운지. 9살 늙은 어르신이지만, 아가다.

여름이 깊어지던 8월 중순, 휴가를 다녀왔다.

포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포를 두고 휴가를 다녀온 적이 없다. 내 가족이니까, 함께 가야지. 그러면서 항상 가는 곳은 애견 전용 펜션. 이번에는 서해에 있는 펜션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도 똘순이와 함께!

포는 차 타는 걸 좋아한다. 올 해가 시작하면서 차를 타는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더 차 타는 걸 좋아하게 됐다. 휴가철을 감안해서 서울에서 태안까지 두 시간 예상하고 출발을 했다. 중간중간 휴게소에서 쉴 것도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출발과 동시에 포가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더워서 그랬을까. 몸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까. 토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데, 영 자세를 잡지 못하고 안절부절 숨이 턱까지 차 컥컥컥 소리를 내며 숨을 쉬었다.

휴게소에 많이 들렀다. 태안까지 4시간 반이 걸렸다. 숙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뒷자리에 앉은 포가 거의 실신 직전이 되어 버렸다. 저렇게까지 심각해지는 건 보질 못했는데, 덜컥 겁이 났다. 저러다가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이 것도 나이 탓인가... 올해 들어 포에게 생긴 변화를 모두 나이 탓으로 돌리고 있다. 미안하다. 내가 관리를 잘해주지 못한 탓이다.

숨 넘어가기 직전에 숙소에 도착했고, 포를 차 밖으로 빼 내 풀어주었다. 입실 체크를 하고 나왔는데 포가 없어졌다. 포!!!! 포!!!!!!!!

물속에 있었다.

수영장이 딸린 숙소였다.

어떻게 알고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2박 3일의 일정 동안 포는 방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수영장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일이 좀 쌓인 상태로 휴가를 떠난 거라, 할 수 없이 노트북을 챙겨 휴가를 떠나게 되었는데, 내가 일하느라 바빠 공을 던져주지 못하니 포가 공을 혼자 물속에 빠뜨려서 물고 나오고, 또 물속에 빠뜨려서 들고 나오며 혼자 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똑똑한 건 알고 있었는데, 9살이 될 때까지 혼자 노는 모습은 처음 봤다. 수영장 물이 나오는 곳에 공을 툭 떨어뜨리면, 공이 물살 따라 멀리 가고, 그럼 포가 뛰어들어 공을 물었다.


역시, 내 새끼 천재다.

잠깐씩 가는 수영장과 달리, 숙소에서 여유롭게 2박 3일을 보낼 거라, 그냥 풀어 두고 놀게 했다. 반나절 가량 몰아서 놀아야 하는 수영장에서는 포가 쉬지도 않고 수영만 해대느라 체력을 다 썼는데, 이 녀석이 이 곳에서는 스스로 조절하면서 놀았다. 잠깐씩 쉴 줄도 알고, 먹을 것도 곧 잘 받아먹었다. 쉬러 온 걸 아는 걸까, 아니면 올 해는 수영장을 많이 다녀와서 익숙해진 걸까. 아무튼 포는 이번 휴가기간 동안 쉼을 만끽한 것 같았다.

그랬길 바란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포에게 올해 여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바쁘기만 한 엄마와 보낸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까? 포의 즐거운 한 순간에 내가 함께 머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개를 키우면 그냥 키우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구명조끼도 필요하고, 자동차도 오래 타지 못하고, 혼자 노는 법도 터득한다는 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배운다. 사람보다 조금 더 빨리 늙어가는 내 가족 멍멍이포. 이 아이가 점점 더 소중해진다.


10월 28일 9살 생일을 준비해야겠다.



(feat. 똘순이)

여름휴가도 함께 간 똘순이는, 수영이 싫은 모양이다. 저 큰 궁뎅이가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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