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자라요
아이가 18개월이 되었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올린 육아일기가 7개월이던데ㅎㄷㄷ...
1818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재접근기의 최고봉에 올라있지만 아직은 큰 투정없이 잘 지내주는 아이, 혹시 이것도 느리게 오는 걸까?
아이는 대부분의 발달사항을 느리게 느리게 달성(?)했다. 뒤집기도 느리게, 기는 것도 느리게, 혼자 서고 걷는 것도 느리게. 검색창에 개월 별로 아이의 발달사항을 검색해 볼 때 마다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일상이던 때가 얼마 전 같은데 아이의 개월수가 차며 엄마의 항마력(?)도 차올라서 이제는 하기 싫다 하면 그러려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그래도 혹시나 느린 아이로 인해 속상하고 걱정되는 엄마가 나말고 또 있어 어쩌다 흘러흘러 이 브런치에 오게 되었을 때, 다른 집 느린 아이는 무얼 얼마나 느렸는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느림의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느리다는 말을 계속 쓰니 타자도 느릿느릿해진다. 으어 느림의 저주에 걸렸...)
아이는 잠을 자는 법을 배우는 것부터 느렸다.
단순히 등센서가 예민하다 하는 식이 아니라 누워서 잠이 드는 방법을 익히는 것 까지가 느렸던 건데 덕분에 8개월까진 꼼짝 못하고 아기띠를 하여 재워야 했다. 다행히 언젠가부터 불을 끄고 눕히면 알 수 없는 옹알이로 하루 일과를 재잘재잘 거리다 잠이드는 식으로 잠자는 법을 배워 현재, 엄빠가 이부자리에 누워 누울 자리를 탁탁 치면 알아서 다가와 스스로 누워 잠 드는 식으로 잘 자게 되었다.
아이는 뒤집는 것이 느렸다.
시작은 터미타임부터였다. 50일 무렵부턴가? 부지런하게 시켜줘야 한다는 터미타임. 아이를 열심히 엎드려 눕혀 봐도 아이는 좀처럼 고개를 올릴 줄 몰라했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올려도 아주 잠깐. 덕분에 백일 무렵의 아기가 있는 엄빠들의 사진첩에 으례 있기 마련인 엎드려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는 아기의 사진이 우리에겐 희귀템이 되었....7개월 후반을 넘겨 간신히 몸을 뒤집은 아이는 뒤집기 시작하면 폭풍 굴러다닌다더라 하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내친김에 배밀이도 넘어가 버렸다.
아이는 이상하게 기었다.
8개월 후반 쯤 아이는 두 팔을 이용해 뒤로가는 기술을 습득했다. 그렇지만 아이가 원했던 행동은 아니었는지 뒤로 가기 시작하면 늘 울상을 짓고 화를 내곤 했다. 어쩌다 쇼파 밑으로 들어가게 된 날은 대성통곡을...
이후 엎드린 자세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애꿎은 바닥만 손바닥으로 땅땅 내려치며 침을 뿌리는 과정을 잠시 거친 후 12개월이 지나선 한쪽 다리만 이용해 기는 희안한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자세는 한동안 굳어져 걷기 시작한 이후에도 한참 한 쪽 다리는 질질 끌고 한 쪽 다리는 굽혀서 절뚝이며 기어 엄빠가 병원을 전전하며 이 자세가 정상인지를 묻고 다니게 만들었다.
아이는 양손을 잡고 걷는 것은 일찍 시작했지만 15개월에야 혼자서 걸었다.
10개월 후반 쯤 아이가 와서 자기 손을 잡으라고 했다. 아무생각없이 손을 잡아 주니 일으키란다. 일으키니 끙차 하며 뒤가 마려운 자세로 걷기 시작...기어다니기도 전이라 '아 뒤집고 기는 것이 느린 아기들이 걷는 건 빨리 걷는다더니 우리 아이도 그러려나 봐!' 하고 엄빠는 감격에 젖었지만 아이는 14개월까진 엄빠의 양손을 놓지 않았다...배로 밀고 기는 것이 싫었던 아이는 일어서서 걷는 것은 정말 좋아해서 시도 때도 없이 본인을 일으키라 성화였는데 정작 손을 놓으려 하면 주저 앉아 결국 손을 놓고 걷는 걸음마는 15개월에 시작. 그렇게 걸음마도 늦은 편이 되었다.
이제 18개월이 된 아이는 뒤로 걷거나 빠르게 뛰는 등의 발달사항을 차근차근 달성하고 지금은 짬푸짬푸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근데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 아직은 계단을 오르내린다거나 미끄럼틀에 오른다거나 등의 난이도 높은 과제는 어려워하고 있지만 아이가 손을 놓고 걷기 시작한 시점부터 신체발달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 대신 언어발달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두둥~신체 부위를 말할 줄 알거나 몇 개의 단어를 말해야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후훗...그래도 빠(빵), 치(치즈), 따(딸기) 식으로 단어의 앞 부분은 제법 말할 줄 아니까 말도 언젠가는 트이겠지 36개월 전에만 말하면 좋겠다 식으로 느긋하게 생각하려 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