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eautiful Mind
크로스핏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이겨내야지, 나이스, 좀만 참아, 인생 걸어 등등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이겨내야지'다. 어떤 변명도 다 몰살시켜 버리는 마법의 단어다. 오버 약간 보태서 이겨내야지 활용 대화를 살펴보자면,
"어제 운동 너무 빡세게 해서 근육통 때문에 오늘은 좀 살살할게요." "이겨내야지. 그럴 때 해야 더 강해지는 거야."
"손바닥 굳은살 찢어져서 철봉 운동은 힘들 것 같아요." "이겨내야지, 테이프 붙이고 하렴." 등등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를 모토로, 크로스피터는 어떤 근육통과 고통도 이겨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크로스핏처럼 신체적 고통을 이겨내는 행위가 아닌, 조현병이라는 정신병리를 이겨내고 노벨상까지 탄 사람이 있다. 바로 "John Forbes Nash Jr." 내쉬의 균형이론을 세운 사람이다. 내쉬의 균형이론이란 말이 생소하다면, 죄수의 딜레마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 "Beautiful Mind"는 존 내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존 내쉬가 놀라운 이유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200여 년 동안 옳다고 여겨진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뒤집어 버렸다. 그것도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해서 수학적 공식으로 만들면서! 하지만 모든 위인이 그렇듯 존 내쉬에게도 시련은 찾아오는데 바로 '조현병'이다. 정신분열증, 즉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는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를 통해 병의 증상이 시각화되니 정말 무서운 병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실제와 분간할 수 없는 환각 증상이 일어나면 내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사람도 가짜 아니야? 알고 보니 다 망상 아니야? 하면서 계속 의심을 했다.
미친 사람처럼 방을 메모지로 꽉 채워놓고,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환각 속 인물과 큰 소리로 싸우고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를 익사시킬 뻔한 존 내쉬. 명석한 머리가 무색하게도 조현병 약을 먹으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존 내쉬가 조현병을 '이겨내고' 노벨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와 동기 + 본인의 노력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제목 "Beautiful Mind"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명석한 두뇌, 또 하나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존 내쉬의 아내 앨리샤가 바로 아름다운 마음을 담당하고 있다. 조현병 때문에 중간에 한 번 이혼을 하긴 했지만, 그도 잠시 다시 존 내쉬에게 돌아가 죽을 때까지 그의 옆에서 보살펴주고 지원해준 당사자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았을 때 존 내쉬는 아래와 같은 아름다운 수상소감을 발표하기도 했다.
평생 수학 논리와 방정식들을 연구했지만 내 인생에서 소중한 발견은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 풀 수 없는 사랑의 신비한 방정식이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모든 이유는 당신 덕분이지요
영화에는 존 내쉬가 조현병 약을 끊고, 환각이 계속 보이지만 이를 무시하고 현실 생활에 적응하려고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 내용을 찾아보니, 존 내쉬의 조현병은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호전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병의 호전과 그의 노력이 합쳐져서 결국 여러 수상을 하고 교수직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존 내쉬의 병이 호전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가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은 바로 그의 대학 시절 동기들이다. 영화 속에선 대학시절 경쟁자였던 친구가, 존 내쉬가 현실에 적응할 수 있게 프린스턴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고, 조현병으로 말썽을 일으켜도 이를 덮어주는 등 케어해주는 모습이 나온다. 대학시절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기회를 존 내쉬에게 빼앗겼던 사람인데, 이 친구도 역시 Beautiful Mind의 소유자였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서 얻은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위에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앨리샤와 존 내쉬의 동기들 같은 조력자로 둘러싸인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