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PRAGUE

#배낭여행자 02 _ #Praha Czech

by 재이리


Praha Cz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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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암스테르담에서 머무는 동안 혼자 하는 여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라하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다시 처음 이 곳에 떨어진 듯 멍해졌다. 야간열차에 대한 후기들이 온통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탓이다. 아직 출발하지도 않은 기차 속에서 탑승한 지 5분 만에 멀미 기운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방에 들어선 후에도 소매치기가 나타날까 전전긍긍. 작은 방 안에 빼곡하게 침대 3개가 높게 쌓여있고 한쪽 벽면에는 세면대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출입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3층에 있었음에도 몇 번이나 내려가 잠금장치를 확인하고서야 침대에 누웠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눕자마자 내 짐은 발끝에 내버려 둔 채 잠이 들어 버렸다. 심지어 아침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야간열차에서 숙면이라니. 불안해서 잠도 못 자겠다며 걱정했던 건 정말 괜한 짓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제야 프라하에서의 일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프라하 숙소에 짐을 풀고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것이 급선무다.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버스의 탑승시간. 생각보다 야간열차의 도착시간이 너무 많이 늦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기차역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도 잘 모르는데 시간까지 촉박한 상황이라니. 열차에서 제공되는 조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같은 방 1층 침대를 사용했던 밀라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다.


02

'배낭여행을 할 때 선뜻 도움을 주려는 친절한 외국인을 특히 조심해!' 해외여행을 좀 해봤다는 지인들의 또 다른 조언이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왔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녀를 믿어 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선 오늘 나의 일정과 촉박한 버스시간을 알리고 버스정류장까지의 빠른 길을 아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말문이 막혀버렸다. 영어로 소통할 수 없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사용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림에 효과음까지 총동원해야 했다. 부끄러움 따위 이미 내겐 중요치 않았다. 그저 내 간절함이 그녀에게 닿길 바랄 뿐이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내가 전하려던 말을 이해하기는 한 걸까. 오랜 통화를 끝낸 그녀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아주 쉬운 영어 단어들로 말을 이어갔다. 목적지까지의 지름길을 알고 있으니 자신을 데리러 나올 남편과 함께 가주겠다는 말 같았다. 그리고는 걱정하지 말라며 환한 웃음으로 나를 토닥여주었다. 해결됐다는 안도감과 고마움에 오늘 처음 본 그녀를 덥석 안아버렸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인사를 연신 외쳐댔다. "Thank you! I Love you!"


03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그녀는 프라하에 처음이라는 나를 위해 가이드를 자청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자신의 사비로 지하철 티켓을 끊어주며 티켓 구입 방법, 지하철 노선 찾는 법, 현금지급기 사용법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 영어에 취약한 나를 대신해 숙소 체크인까지 도맡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체스키행 버스기사에게 직접 바우처를 들고 가서 좌석을 확인해주고는 제대로 버스에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버스에 올라 미리 예약해둔 좌석에 앉았다.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아직 그곳에 서서 나를 바라봐주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밀라 부부는 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서 한국을 떠나던 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속, 혼자 떠나던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봐주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부모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있는 것 같은 왠지 모를 든든함이 한가득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늘 처음 본 타국 여자아이를 위해 당신의 시간은 물론, 사비까지 기꺼이 내어준 밀라 부부. 막 도착한 체코 프라하지만 그때 벌써, 나는 프라하에 빠져버렸다.


프라하 1.JPG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 성에서 내려다 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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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감정 변화와 고비를 넘겨 어렵게 도착한 곳은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 도보만으로 관광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기에 마을버스보다는 걸어가며 주변을 천천히 여행하기로 했다. 영주를 모시는 하인들의 집이 모여 있었다는 라트란 거리를 지나 강 건너의 구시가를 연결하는 이발사의 다리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체스키 크룸로프 성이 나온다. 체스키의 진풍경은 바로 이 곳, 마을 중앙 언덕에 위치한 체스키 성에서 내려다봤을 때 비로소 빛을 바란다. 블타바 강(Vltava River)이 마을 전체를 S자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프라하의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붉은 지붕들과 창창한 나무 그리고 평온하게 흐르는 강이 모두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경에 한없이 감탄하게 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풍스러운 중세시대의 어느 순간으로 넘어온 것 같은 느낌 혹은 동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두 눈과 카메라에 풍경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망대 돌 벽에 너무 붙어있는 바람에 언니 몰래 가져온 선글라스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인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프라하 2.JPG 매시 정각, 프라하 구시청사 천문시계의 이벤트를 보기위해 몰려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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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와 프라하의 최고 번화가 바츨라프 광장(Vaclavske Namesti)이 있는 신시가로 나뉜다. 신시가도 그만의 멋이 있지만 번화한 지역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나는 고풍스러운 구시가에 더욱 마음이 설레었다.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떠올리는 기억만으로 심장이 선덕 해지고 때 아닌 감성놀이를 하게 되는 장소가 있다. 바로, 프라하 구시청사 천문시계다. 매시 정각이면 천문시계의 12 사도 인형들이 하나의 창에서 줄지어 나와 반대편 창으로 사라진다. 뒤를 이어 시계탑의 황금 닭이 시간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대미를 장식한다. 정각이 다가올 때면 이 장면을 보기 위해 흩어져있던 관광객들이 이 곳으로 모여든다. 천문시계가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이 때문은 아니다. 정각의 이벤트가 끝나고 구시청사의 커다란 문이 열리더니 행복한 모습의 신랑, 신부가 팔짱을 낀 채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특급스타의 결혼식을 방불케 할 만큼, 천문시계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던 전 세계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와 열렬한 축하를 받았다.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각국의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신나게 춤을 추기도 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세계의 언어로 축하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참 멋지고 설레는 일이다. 이제까지 보았던 그 어떤 결혼식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프라하 3.JPG
프라하 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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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시계에서의 가슴속 설렘을 사랑과 낭만으로 가득 채워준 또 다른 장소는 카를교(Charles Bridge). 낮에 본 카를교는 왜 프라하를 유럽의 음악학원이라고 부르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많은 연주가들이 자유롭고 즐겁게 공연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멋들어진 공연장이 아닌 길거리 한 편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음악에 무지한 나조차 행복하게 공연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음악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카를교의 낮이 낭만이었다면, 밤에 다시 찾은 카를교는 사랑이었다. 프라하성의 야경을 배경으로 이어진 카를교를 가득 메운 연인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은 채, 서로에게 저마다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쑥스러워하기는커녕 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하는 나를 바라보며 도리어 귀엽다고 했다.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프라하에 혼자라니. 외롭고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다음에 또다시 프라하에 올 수 있다면, 이 곳의 아름다운 연인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자고로 꿈은 클수록 좋다고 했으니.





해당 글에는 본 저자의 독립출판물 <꽃다운 스물일곱의 여행 이야기 오늘은,>의 수정 및 보완한 사진과 글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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