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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미걸 Mar 18. 2024

비긴어게인



수년 동안 연락이 두절된 지인을 마주쳤습니다. 돌연 단체 활동을 멈춘 뒤 아무도 소식을 몰랐습니다. 달라진 외모의 그에게는 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퇴직이 기다려질 만큼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이 반년 만에 문닫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요. 온 집안이 난리가 난 마당에 암 선고까지 받고 말았어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부지런히 살고도 말년 악운이 떼로 덮치는지 무섭더라고요.”


무서운 날들을 견뎌낸 그가 또렷한 눈으로 말했습니다. “재산 다 날린데다 투병까지 하는 것도 좋은 점은 있었어요. 돈 잃고 몸도 성치 않게 된 덕에 복잡하던 인간관계들이 단번에 정리됐으니까요. 누가 내 편이고 누가 진심이 아닌지가 확실해지더라고요. 도움이 간절한데 외톨이 신세가 되니 배신감에 기가 막혔지만 지금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천만다행으로 수술이 잘 돼서 다시 태어난 셈치고 살기로 작정했어요. 이만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하하.”


웃음까지 딴판이 된 그와 헤어진 뒤에도 흐믓한 것은 그의 고초가 해피엔딩으로 돌파구를 찾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가시밭을 헤쳐나온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믿음직한 위로 덕분이었습니다.


희망보다 어둠이 짙다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용케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위로. 아무리 외롭고 막막한 순간도 끝내 지나간다는 위로. 막다른 장벽에 눈앞이 캄캄해도 고개만 들면 하늘과 마주본다는 위로. 흐르는 세월과 바람처럼 삶에 닥친 모든 시련도 결국 흘러간다는 위로.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들 또한 가득하다.”

-헬렌 켈러-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조앤 롤링은 생활고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중에도 성공할 보장없는 원고를 써가며 생각보다 강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폭력적 남편을 떠나 젖먹이 딸과 포르투갈에서 탈출. 20대 싱글맘으로 홀로 서는 모험을 통해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를 세상에 선사한 크리에이터로 변모해갔습니다. ‘아즈카반의 죄수’에 등장해 영혼을 위협하는 디멘터도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 우울증 경험을 토대로 탄생한 캐릭터입니다.


삶에 닥친 고난은 소파에 길게 누워서 알 수 없는 것들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나른하게 외면해온 사실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미뤄온 우선순위를 정신이 번쩍 나게 보여줍니다. 꽁꽁 숨겨온 날개를 펴라고 벼랑 끝에 세우기도 합니다. 출구없이 정면돌파할 상황을 제공합니다. 무엇에 휘둘렸고, 무엇을 함부로 포기했는지 되짚고 리부트할 버거운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나름의 시련 속에 터득한 우리의 힘으로 세상 희망의 총량은 늘어갑니다. 눈으로 보지 못한 헬렌 켈러가 마음으로 믿은 세상은 이겨내는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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