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존심, 그녀의 자존감.
나는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편이 전혀 아니다. 연예인에 대한 동경심이 딱히 없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배우 임수정도 나에겐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연예인이었다.
얼마 전에 포털 메인에 임수정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 기사로 나왔기에, 굳이 눌러볼 것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얼핏 보아도 화장기가 없어 보이는 사진이라 그녀도 이제 나이가 드는구나, 그렇게 잠깐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 짧은 감상도 금방 휘발되었지만.
그런데 오늘 뜨는 기사를 보니 그 사진에 악플이 어마어마했나보다. 못생겼다고. 늙어보인다고. 내가 그녀라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 싶었다. 그래도 여배우인데, 민낯이 그만하기도 어려운데. 자기들은 화장 '빡세게' 하고 '설정'한 사진만 수십 장 찍어서 그 중 가장 잘 나온 것만 올리면서, 그녀가 자연스럽게 찍힌 사진 한 장 올렸기로서니 저렇게까지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저 사람들의 심보는 뭘까.
악플러들의 오지랖은 기어코 그녀의 귀에도 들어갔나 보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못 본 척 할 만도 한데 그녀는 친절하게도 답장까지 써줬다.
화를 내지도, 자존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남들이 그녀를 나이 들었다고 평가해도, 그건 잘못도 아니고 부끄러울 일도 아니라는 여유. 그녀는 악플러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자존감을 가진 것이다.
많은 연예인들이 열심히 가꾼 모습만을 사진에 담아 올린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도 빈틈없이 가꾼 채다. 그럴수록 평범한 우리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사진 속에 욱여넣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화장을 새로 하고, 프레임에 은근슬쩍 담아낼 아이템을 사고, 친구를 만나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데 여념이 없다. 그렇게 피땀 흘려 얻어낸 '인생샷'이 '진짜 우리'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짜 그녀들도 브라운관 속 인물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 그들이 원래도 그런 모습일 거라 오해한다. 그리고 우리와 끝없이 비교하며 그렇게 되려 애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만들어진 모습이 진짜인 줄 착각하고, 원래를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자존심만 살아남고 자존감은 바닥난다. 더 잘나 보이려는 자존심이 진짜를 사랑하는 자존감을 갉아 먹는다.
이런 우리에게 임수정의 답장은 차분히 묻는다.
나는 안 꾸미고 안 다듬은
그냥 나를 사랑하는데,
너는?
결국 사람들은 가꾸지 않은 '원래의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화장 안 한 여배우의 진짜 모습에 그렇게 분노해댄 건 아닐까.
뭐야,
너 사실은 이 정도밖에 안됐었구나.
진짜 네 모습은 생각보다 볼품 없네. 인정해주기 싫어.
한껏 분장해서 만들어진 나를 진짜 나와 헷갈리지 않는 그녀의 분별력이 부럽다. 다른 이들의 치기 어린 자존심이 긁어대도 튼튼하게 버티는 그녀의 자존감이 부럽다.
나도 그녀처럼 원래의 나도 사랑하고, 원래의 너도 사랑하고, 나에게 욕하는 너도 사랑하는 여유를 갖고 싶지만, 역시 아직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대안을 찾아봤다. 나처럼 '아직 나는 그럴 그릇은 못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가수 호란이 쓴 글을 먼저 읽고 따라해보면 어떨까.
어조가 임수정의 것과는 다르게 많이 강하기는 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원래의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건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며 자존감을 갉아먹을 뿐이니, '진짜 나'와 '진짜 너'를 깎아내리지 말고 인정하자. 반대로 누군가가 진짜 나를 이러쿵 저러쿵 공격해온다면 '너의 자존감 부족이 안타깝구나' 생각하고 상처받지 말아라.
(회사에서 매우 유용하겠다.)
자존감이 조금씩 단단해지다보면 혹시 모른다. 나도 '보살'이 되어 공격자들을 흠칫하게 할 수 있을지! 오늘 밤은 자존감 플러스되는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