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Aug 23. 2022

육아는 타이쿤이 아니었다

MZ맘입니다

 산고 끝에 마침내 아기를 만나면 마냥 행복할 것 같았지만 그 행복은 아주 찰나였다. 육아라는 엄청난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아가 힘들 줄은 알았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애 키우느니 복직하고 싶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산후 백일 간은 그야말로 육아의 고통과 산후우울의 '대환장 콜라보'다.


 육아는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까? 많은 어른들이 옛날에는 아기 키우기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 요즘 엄마들이 나약해서 아기 키우기를 힘들어하는 걸까? 아니면 요즘 아기들이 유별나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걸까?


 내 경우엔 초기 육아를 하면서 확실한 해답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요즘 엄마들이 비슷한 심정인 것 같다. 집에는 아기와 나만 있고, 아기는 숨 넘어갈 듯이 우는데, 나는 아기가 왜 우는지 모른다. 방금 전에 수유했는데 우는 소리를 들어보면 배고파서 우는 것 같다. 공부하면 되겠지 싶어서 육아서도 열심히 읽어봤지만 이럴 때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아기가 우는 모습을 보다 보면 '엄마라면' 이유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도움도 안 되고 짜증만 나는 이야기뿐이다. 그럼 나는 엄마도 아니라는 건가? 전문가들이 썼다는 책을 읽어봐도 책마다 내용이 다르고, 정부지원 산후관리사님 얘기는 또 다르다. 급한 대로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유튜브 영상을 봐도 말이 다 다르다. 예방 접종하러 간 소아과에서 물어보려 해도 대기 환자가 너무 많아 접종만 끝나면 쫓겨나다시피 진료실에서 나와야 한다.

- 분유는 아기가 청할 때마다 줘야 하는지, 시간 맞춰 줘야 하는지

- 하루에 1000미리를 넘게 수유해도 되는지

- 체중이 적은 아기가 통잠을 자면 깨워서라도 먹여야 하는지

- 분유 먹는 아기의 이유식은 4개월부터 시작하는지, 6개월부터 시작하는지 (이런 것조차 아직도 전문가 의견이 갈린다는 게 화가 날 지경이다.)

- 수면 교육은 생후 6주부터 시작하면 되는지, 그 시기 전에는 교육의 의미가 없는지

- 아기를 오래 울리는 것이 정말 뇌손상을 유발하는지


 크고 작은 궁금증이 너무 많은데 확실한 답을 얻을 수가 없으니 이제 막 아기를 낳아서 하루하루 키워 나가고 있는 초보 엄마는 그야말로 멘붕이다. 다들 이렇게 알음알음 알아가면서 아기를 키우는 걸까. 분명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닐 땐 노력하면 됐었는데 육아는 왜 이럴까. 내가 무언가 '틀리게' 해서 아기를 힘들게 하고, 그래서 나도 힘든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안 그래도 힘든데 자책까지 하니 매일 무너진다. 육아에도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 '육아 타이쿤'이면 할 만할 것 같은데,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해본다.


 대가족이 모여 살던 옛날에는 아기를 키워본 할머니의 육아 지식만이 유일한 '매뉴얼'이었을 것이다. 요즘과는 달리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매뉴얼에 따라 아기를 키우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우리 아빠 말씀으로는, 옛날 시골 어른들은 우는 아기 함부로 안아주면 손 타서 고생하니 울든 말든 내버려 두도록 했단다. 어쩌면 밭일하러 나가면서 아기를 기둥에 묶어 놓고 나간다는 게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정보가 많다. 물론 이 정보들도 그냥 주어지지는 않는다. 엄마가 여기저기서 수집하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연히 초보 엄마는 육아 정보를 선별할 능력이 없으며, 체력과 시간도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임기응변 식의 육아, 짬짬이 육아, 검색 육아를 하게 된다. 나도 짬짬이 육아하기 싫다. 그런데 어쩌나. 애가 옆에서 우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기를 키우면서 맘카페에 의존하는 엄마들을 비난한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아기를 낳기 전에는 그들을 한심하다 여겼던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키워보니 당장 물어볼 데가 맘카페 말고는 없을 때가 참 많다. 책은 대부분 구체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정석적인 방법이나 학문적 지식만을 알려준다. 모유 수유의 중요성이나 일반적으로 통잠을 자는 시기 같은 정보는 그야말로 알면 좋은 '지식'일뿐, 아기를 키우는 데는 생각보다 별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이미 모유 수유에 실패했고 우리 아기는 아직 통잠을 못 자는데 어쩌란 거냐 싶다. '아기가 월령에 비해 노는 시간이 짧고 늘 졸려하는데 괜찮나요?'처럼,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너무 사소해서 책에 담지 않는 궁금증이 수도 없이 생긴다. 그러니 나보다 먼저 아기를 키워 본 랜선 선배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도 물론 매뉴얼은 없지만 최소한 경험을 나눠준다. 그러면 나는 선배들의 경험 중 우리 아기와 가장 비슷한 사례를 찾아 적용해보는 식이다.


 나는 임신 기간 내내 '이렇게 임신이 힘든 일임을 왜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는가' 분통을 터뜨렸었는데, 그것보다도 교육과정에 포함되어야 하는 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육아 지식이었다. '신생아는 하루의 대부분을 잔다'는 무미건조한 지식 말고, '신생아 시기에는 안아서 재우더라도 추후 수면교육이 가능하니 아직은 충분히 잠든 후에 눕혀도 된다' 같은 구체적이고 적용 가능한 지식 말이다. '모유 수유는 엄마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니 모유를 먹이라'는 훈계 대신 '분유 수유를 하는 경우 최소한의 수유 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엄마가 육아하기 편하다'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제시하는 수유 가이드가 있지 않을까 싶어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놀랍게도 '모유 수유'에 대한 정보만을 안내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육아가 즐거울 리가 있나.


 아기 키우기에 관한 실용적인 지식을 예비 양육자에게 구체적으로 제공하고, 수유, 수면 등 문제 상황에 대해 밀착하여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복지 혜택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안다.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출산지원금이 늘어난다고 해서, 육아휴직 급여가 늘어난다고 해서 아기를 낳고 싶을까? 적어도 나에게 돈보다 필요한 건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육아 정보, 내가 알고 있는 것들로 아기를 충분히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언제라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핫라인이었다.


 요즘은 오만 데서 MZ세대를 논한다.  명의 'MZ'으로서 감히 생각하건대, 적어도 내가 아는 MZ세대는 '누가 봐도 괴로워 보이는 ' 의무감만으로 기꺼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는 출산율이  떨어질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아기가 주는 행복은 아기를 낳아보기 전엔 절대   없지만 육아의 고통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친구들만 해도  육아를 지켜보며 비출산을 다짐하고 있고, 나도 그들에게 출산을 감히 권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출산지원금도 좋고 휴직도 좋지만, 가장 먼저 육아가  만해 보여야 아기를 낳고 싶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을 늘 '미션 클리어' 하며 살아온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매뉴얼에 따라 아기를 키우고 싶었다. 매뉴얼만 있다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육아에 단 하나의 매뉴얼이 존재할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육아라는 깜깜한 터널에서 손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 같은 초보 엄마들이 훨씬 행복하고 보람 있는 육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