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대하여
*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집에서 가까운 스포츠센터로 가서 회원증을 만들었다. 다시 학교로 가기 위해 탄 마을버스가 산 정상에서 종착지를 향해 나무길을 따라 내달리고 있었고, 버스 안에는 나무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볕이 순간순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에어팟에서는 원슈타인의 <존재만으로>가 나오기 시작했다.
청춘이 반짝거린다는 사실을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청춘이 부럽고, 내 청춘이 기억나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모두들 나희도와 백이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분노할 때도 나는 드라마 앞부분에 나오는 나희도의 청춘과 씩씩함의 여운에 벗어나지 못했다. 나희도와 백이진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안타깝긴 하지만, 그냥 그것 또한 청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나희도처럼 반짝이는 시절에 만난 사람과 운명이라 생각했고 영원의 짝꿍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결혼은 지금 남편이랑 했는걸... 그리고 난 그게 더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남편은 반짝이던 시절을 지나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한 그 시점에 만난 사람이라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날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남편아 사랑해!)
어쨌든 마을버스 안에서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이별했던 나희도의 반짝이는 청춘을 노래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노래와 함께 좋아하는 운동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봄과 여름 사이의 이 반짝이는 하루가 날 청춘의 한 복판에 세워두었다.
지나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거리는 고등학교 그리고 20대 초반 시절을 지나, 반짝이는지도 모르고 세상과 싸우면서 분투하던 20대,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던 30대 초반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는 더 이상 하루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 주말에 남편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본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설인아 배우를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저 많은 일을 하루에 할 수 있는 거지?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우리의 모습과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30,40대 패널들의 모습은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나의 20대 그리고 그들의 20대는 분명 설인아 배우와 닮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이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한 방향의 길을 걷진 않지만, 우리 모두는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40대의 나희도의 심드렁한 모습도 곧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화가 날 일도, 많이 기쁠 일도 거의 없는 요즘이다. 하지만 가끔씩 마음속에서 반짝이며 청춘이라는 순간으로 빨려 들어갈 때가 있다. 매 순간 반짝 일 수는 없지만, 이런 순간이 자주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이 반짝이는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가 되었으니까. 나는 청춘의 반짝임과 그 심드렁함 사이 어디쯤에 있지만 그래도 청춘의 순간이 더 많은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