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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Oct 13. 2020

너무 많은 나의 것들

2020/10/13

 #1

지난 주말

난생처음 네발로 기듯이 나아가야만 오를 수 있는 산을 타며

불필요하게 무거운 내 몸과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내 몸 하나를 건사하지 못할 때

마치 한참을 돌보지 않아 잡초밭이 되어버린 마당을 마주하듯이

내 몸에 가진 것들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오랫동안 고민했던 집안 정비를 하기로 했다.

지난여름의 긴 장마로 엉망이 된 천장이 스모킹 건이 되어

천장과 벽, 바닥까지 모두 손보기로 했다.

맥락 없이 여기저기서 받았던 가구를 모두 버리고

생각 없이 쌓아두었던 짐들을 정리했다.


일회용 우산은 왜 이리 여러 개며

쇼핑백이며 비닐봉지는 뭘 이리 많이 쟁여두었고

언제 얼린 지 기억조차 없는 냉동식품에

한두 번 먹고 두었던 양념 통

한 장 두장 모으다 수십 장이 되어버린 엽서

수십 자루가 있지만 제대로 나오는 건 몇 개 없는 볼펜

.....

뭘 이리 많이 사고

뭘 이리 많이 채웠는지


200리터 쓰레기봉투를 순식간이 채워

낑낑 거리며 내다 놓는 길에


나란 인간은 참으로 지구에 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미안해진다.


간소해지기로 한다.

그리고

깊게

반성한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너무 많이 무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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