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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r 01. 2022

그래도 가끔은 자라고 싶어

서대문 안산 메타세쿼이아 숲길

숲은 전통적으로 숨기 좋은 장소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성장하는 꽃과 나무는 스스로의 삶만으로도 충만하기에, 은둔자에게까지 불필요한 오지랖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 편안한 무관심 덕에 오히려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다. 비록 이 숲에서 유일하게 성장하지 않는 존재라 할지라도. 

빌딩 숲을 벗어나

나무 숲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생경함이다. 자연으로 가면 원초적 안정감을 느낀다고들 하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숲은 친근하기보다 낯설기에 끌리는 공간이다. 그래서 익숙한 풍경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면 숲을 찾는다. 마음을 할퀴는 날 선 말을 들은 날, 기대하던 새 프로젝트가 어그러진 날, 낮과 밤이 뒤 바뀐 생활에 온 몸이 찌뿌둥한 날, 숲으로 간다. 그러면 그저 사는 대로 살아지던 삶의 방향에 제동이 걸리는 기분이 든다. 풀리지 않는 경기에서 잠시 타임아웃을 부르는 심정으로 숲에 멈춰 선다. 

그곳에서는 스스로 호들갑스럽지만 않다면 오롯한 적막에 빠질 수 있다. 나무와 꽃, 곤충과 동물, 본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구축해 놓은 흐름을 방해하는 존재는 오로지 이 숲에 뛰어든 사람뿐이다. 나만 입을 다물면 숲은 평상시와 같은 평화로움을 회복한다. 내게서 나는 소리를 지우고 가만히 걷는다. 바람 소리, 새소리, 나무가 스치는 소리가 만들어 내는 가만가만한 백색소음이 공기를 채운다.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각자의 삶에 집중하는 소리가 부지런히 들려온다.   

걸어서 10분 거리 

집 근처에 서대문 안산이 자리하고 있다는 건 꽤나 축복받은 일이다. 이 산은 유난스럽지 않아 마음에 든다. 해발 300m가 조금 안 되는 안산은 등산이라기보다 트레킹에 가까운 완만한 코스로 이어져 있다. 특별히 우뚝 솟지도, 새삼스레 화려하지도 않은 산. 마음먹고 가는 특별함이 아닌,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함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안산을 빙 둘러 데크길로 만들어진 자락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 산을 한 바퀴 돌면 대강 2시간 남짓의 시간이 소요된다. 계절마다, 지점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자락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단연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서대문구청 뒤편에 위치한 안산 자락길에서 무악동 봉수대 방면으로 걷다 보면 나타나는 빽빽한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하늘을 향해 길게 자라난 모습을 보면 어쩐지 속이 시원해진다. 막힘 없이 곧게 뻗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풍경은 자연스레 걸음의 속도를 줄이게 만든다. 

“기자님, 다음 달부터 잡지가 폐간하게 되었어요.” 

몇 년간 해 오던 밥벌이가 끊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던 날에도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었었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갑작스레 내 던져진 상황.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떻게 먹고살지, 모아놓은 돈은 얼마나 되더라로 시작된 질문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왜 대학 시절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할 생각을 안 했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자아비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위태롭게 지켜오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던 날, 사람이 미워지던 날, 그리고 나 자신이 한심하던 날, 한 없이 침잠하는 기분을 안고 숲으로 도망쳤다.    

내 안의 전원을 잠시 꺼두고 

메타세쿼이아 숲길 한 편에 앉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데크길을 살짝 벗어나 숲의 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잔뜩 부풀어올라 머릿속을 빈틈없이 채운 나쁜 생각들이 누그러들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몇 분에 한 번씩 습관적으로 확인하던 스마트폰을 꺼두고, 속상한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그 미움, 분노, 절망, 좌절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것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순간이 문득 찾아온다. 그러고 나면 극적인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장의 막막함은 조금 덜해진다. 기쁨과 슬픔, 당혹스러움과 안정, 분노와 이해, 상반된 두 감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존재하기에 하나를 지나 보내면 다른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찾은 지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는데, 나무는 한 해도, 한 달도, 하루도 게을렀던 적이 없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순이 돋고, 푸르러지고, 단풍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기어이 해내고 만다. 그 성실함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기운이 난다.   

그래서일까, 숲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조금 더 씩씩해진다. 다시는 도망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도망쳐야지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지, 그렇게 마음먹으면 약간은 가벼워진다. 언제 또 도망치게 될지는 몰라도, 어디로 도망칠지는 정해져 있으니까 마음이 든든하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새어 든 빛이 얼굴 위로 스며든다. 여전히 자라고도, 잘하고도 싶다. 


* 이 글은 빅이슈 259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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