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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Jun 28. 2023

[도쿄텐텐 6] 다시, 혼자의 산책  

함께 도쿄를 거닐던 친구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다시 혼자 남았다.

친구보다 먼저 도착한 도쿄에서 혼자였을 때는, 곧 누군가 온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만 했었는데

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도쿄는, 애초에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더 적적하다.



도쿄역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친구를 배웅한 후, 무작정 걷다가 만난 예쁜 테라스 카페.

친구가 이런 델 가고 싶다고 했는데... 가려고 할 땐 보이지 않아 가지 못한 곳. 하필 딱 헤어진 순간에 보일 게 뭐람, 싶어 진다.    

찾았을 때는 절대 찾아지지 않는 것들, 마음을 접었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인형 뽑기 가게를 어슬렁거리다가

재미 삼아 도전해 본 기계에서 커다란 커비 인형을 뽑았다.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잔뜩 높아진 기분으로 다시 산책을 시작한다.

혼자 걷는 적적함을 커비의 존재감이 채워준다.

"반가워, 커비"



골목을 가로질러 달리는 전철 소리에 몽글몽글한 일본 영화 한 장면이 떠오르고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은 이렇게 좋았나 싶게 아름답게 들려온다.

다정하게 내리쬐는 햇살, 적당히 부는 바람,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노래

혼자만의 산책이 조금씩 평화를 찾기 시작한다.



가이드북 한편에서 발견한 재즈 커피숍, 도나토로 향한다.

카페나 식당 같은 가게가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도나토,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공간을 빽빽이 채우는 커다란 음악 소리가 나를 감싼다.

오기 전에 읽었던 주의사항.

이곳에서는 절대 수다를 떨거나 불필요한 소음을 내지 말고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것!

프라이드 높은 주인의 까다로운 서비스를 감내해야 하는 곳은 아닌가 싶어 약간 겁먹기도 했지만, 수다 떨 일 없는 혼자이기에 도전해 본 새로운 공간.  나처럼 혼자 온 손님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다.



나폴리탄과 아이스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이름 모를 재즈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이곳에서 왜 대화는 금지하는지 금세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악이 주인공인 공간.  쾅쾅 울리는 음악 덕에 어쩐지 사람들 사이에 각각의 방이 세워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방이 열려 있지만 확실히 닫힌 각자의 공간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혼자인 사람들. 내향적인 주인장, 내향적인 사람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양해하는 공간, 마치 여러 번 이을 찾았던 듯한 편안한 기분이 든다.

재즈는 몰라도 충분하다. 좋은 음악은 장르와 상관없이 마음을 가득 채우니까.



먼저 서울로 향한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얼마 후에 서울서 만날 수 있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 카톡으로 전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낭만이 없으니까. 우리보다 한 발 늦게 도쿄에서 도착할 편지로 인사를 전하고 싶다.

혼자여도 떠날 수 있지만 굳이 혼자서는 나서고 싶지 않았던 길. 둘이 되어 주어서 가능했던 시간, 마음, 공간, 산책에 대한 감사를 담아서

말로는, 카톡으로는, 전하기 힘든 단어를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부친다.


"도쿄 탓인지, 재즈 탓인지,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사실 가장 바랐던 게 이런 마음인지도 모르겠어. 뭐라도 해보고 싶어지는 마음, 용기, 체력, 그런 것들... 이번 여행이 너에게도 '처음'의 생기를 불어넣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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