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나란히 카페에 앉아서 오늘은 어디로 갈까,에 대한 심도 얕은 대화를 나눈다.
짧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걸을까?"
간다역 근처에 위치한 숙소에서부터 얼마간 걷다 보니 간다 강을 만나게 된다. 오차노미즈와 아키하바라 사이의 어디쯤. 전철과 전철, 강 줄기와 사람이 교차하며 흐르고 있는 풍경이 낯설어서 마음에 든다.
모르는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뜻밖의 설렘.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마음이 들뜬다.
아시따모 오겡끼데!
내일도 건강하시기를!
간단하지만 심오하게 마음에 박히는 한 마디. 우리 모두 건강하기를, 아무도 아프지 않기를, 아파도 나을 수 있을 만큼만 아프기를.
작은 낚시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가 간다 강을 그리고 있다.
이보다 멋진 일요일 아침의 일과가 있을까, 싶어지는 모습에 존경심이 피어난다.
어쩌면 좋아하는 일로 가득 찬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간다묘진과 유시마텐만궁.
근처에 위치한 두 곳의 신사를 순례하듯 산책한다.
전통 혼례를 올리는 어린 커플들, 주변을 울리는 방울 소리, 간절하게 모은 두 손, 그 모든 풍경을 감싸 안은 어떤 성스러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의 가호. 구하려 한 적이 없기에 얻은 것도 없다 해도, 구하지 않았음에도 얻어지는 행운이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버릴 수 없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를 조심스레 붙이며 소원을 빌어본다. 입으로 꺼내기엔 어쩐지 쑥스러운 비밀스러운 마음을 내 안에서 되뇌며 어느 자비로운 신이 알아채 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품은 채, 이국의 신사를 거닌다.
걷다 보니 우에노, 다시 시부야를 지나 다시 도쿄역.
해가 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잠시 앉아 쉬고, 너무 북적이는 곳이 나오면 눈치껏 피해 가면서...
도쿄를 유영한다.
내일은 친구가 먼저 서울로 돌아가는 날.
밤은 짧고 아쉬움은 길어서, 우리의 산책은 쉽사리 끝나지 못한다.
우리가 함께 거닌 도쿄의 마지막 날에 빛나는 도쿄역. 빛나는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