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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Jul 10. 2023

[도쿄텐텐 8] 안녕, 도쿄

도쿄 여행의 마지막 날.

마음 놓고 풀어 두었던 캐리어를 다시 여미고 빼놓은 것은 없는지 숙소를 살피며 나서는 순간은 언제나 개운치가 않다. 무엇 하나 남기고 떠나는 것이 없어도 무언가 잊은 듯한 쓸쓸함. 이 정도면 충분하다, 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마음이 뒤섞인다. 연이어 몇 달간은 여파가 남아 있을 카드값, 밀린 업무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들이 서서히 스며들며 살짝 울적해지는 기분.

오늘에 배어 든 서글픔의 기본값은 애써 모른 체 하며 엄마의 선물을 살만한 곳을 찾기 위해 구글 지도를 뒤져 본다. 나에게 주어진 반나절의 시간,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백화점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초행길. 그런데 걷다 보니 문득 느껴지는 익숙함에... 이건 뭐지?

일본 은행, 그리고 그 옆에 위치한 미쓰코시 백화점 본관, 이건 한국은행과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잇는 소공로 일대의 분위기를 꼭 닮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전신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미쓰코시백화점의 경성점이란 점이 떠오른다. 확실한 인과가 있는 기시감이었구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앞섰는지 아침부터 서두른 탓에 오픈 시간 전에 도착한 미쓰코시 백화점.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니혼바시와 미쓰코시백화점, 일본은행 건물의 지난 이야기들을 찾아본다. 빛나던 과거를 자랑스럽게 추억하는 듯한 분위기가 가득한 이곳. 그 빛남을 위해 어둠으로 희생당했던 우리의 과거가 자연스레 떠올라 씁쓸해지는 기분... 어쩐지 복잡한 심정으로 주변을 산책한다.

드디어 오픈 시간, 미쓰코씨 백화점의 상징이라는 라이언 동상과 여신상 등을 순서대로 감상하며 한 층 씩 오른다. 별관과 본관으로 이루어진 백화점, 특히 일본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본관은 거대한 박물관 같다는 느낌도 들 정도로 건물 자체가 고풍스러운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옥상정원이 있다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무작정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본다.

니혼바시 지역의 마천루 속에 위치한 푸른 정원, 한편에는 맥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인데... 친구가 서울로 먼저 돌아가기 전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가 산책의 방향을 조금 틀었더라면, 같이 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좋은 풍경은 그 감상을 나눌 상대가 있을 때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니까.

엄마에게 선물할 스카프 한 장을 고르고 백화점을 나선다. 주변을 가볍게 걷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주황색 토리이. 구글 맵으로 어떤 곳인지 찾아보니 복권 당첨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후쿠토쿠 신사라고 한다.  

빌딩 숲 한가운데 생뚱맞은 듯, 또는 어울리는 듯 자리한 소박한 신사는 아무래도 행운에 특화되어 있는 곳인 듯한데, 도쿄 산책의 마지막에 우연히 만난 장소가 행운 가득한 공간이라는 점에 어쩐지 안심이 되는 기분은 왜일까.  

일상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다시 돌아오고 싶은 일상을 찾기 위해 떠난 곳.

보통의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감행한, 보통의 날들과 다른 날들.

공항에 앉아 서울로 돌아가면 해야 할, 혹은 하고 싶은 몇 가지 일들을 나열해 보며 작게나마 피어오른 생기를 소중히 담는다.

뭐라도 해보자,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마치 끝이 정해진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내일을 살아보기로, 여행이었기에 살아났던 예민한 감각을 되새긴다. 무뎌진 마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가만히 가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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