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T(5,000km미국종단) 준비中>
벌써 2월29일, 출근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전에는 그만두기 전에 꼭 마무리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오후에는 그동안 디자인 작업한 파일들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정리를 하면서 오래된 파일들을 한번씩 들춰보니
'이런 일도 했었지' 하면서 머릿속에 흐릿하게 남아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1년 3개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아주 조금 또 성장했을 것이라고 믿고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오니
책상위에 편지와 선물이 놓여있다.
정말 기분좋은 말이 쓰여있었다.
'말보다 이미지로 표현하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일하면서 그런 편견이 없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감사했다.
사실 대학생 내내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너무 싫었다.
"예체능이니까"
"미술하는 애들은"
이런 말들.
처음부터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싫었고, 그런 편견을 깨고싶었다.
교양 수업을 들을 때, 학점 따기 쉬운 수업보다는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이 우선이었다.
재수, 삼수를 하며 생각했던 것이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는, 등록금이 아까우니까!
그런데 가끔 개강 첫날부터 교수님께서
'학점따기 어려운 수업'이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몇몇 있었다.
덧붙여 "예체능 학생들은 따라오기 힘들 거예요."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도 가끔 계셨다.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오기가 생겼고, 그 생각을 조금이라도 깨고 싶었다.
건축공학과 수업을 처음 들을 때였다.
교수님께서 수업 첫 날, OT를 시작하기 전에 나를 부르셨다.
"여기 서양화과 학생이 누군가. 잠깐 이리 와보세요"
전공필수 과목이라서 따라오기 힘들다. 미대만큼 과제가 많아서 둘다 하기 힘들다. 다른 학과 학생들이 끝까지 따라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며 수강을 취소하라고 설득하셨다. 수업 시작도 하기 전에... :'(
(서양화과도, 건축학과도 과제가 많으니 걱정하시는 부분이 당연히 이해는 되지만..ㅠ_ㅠ)
사실, 건축학과를 가고싶어서 이과를 선택했다가 좋아하는 것을 살려 미대를 진학하는 것이 어떠냐고 부모님께서 제안해주셨고, 공간 디자인쪽으로 가기위해 미술쪽으로 방향을 살짝 바꾼 것이었다.
하지만 공간, 건축을 공부하기에는 예술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졌고, 그런 생각때문에 건축공학과 수업을 듣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수강을 취소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그래도 듣겠다고 말씀드리고, 어느 때보다도 바쁜 학기였지만 가장 열심히 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었다.
그 수업을 시작으로 건축공학과의 다른 수업을 계속 듣게 됐고,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건축공학과 졸업전시에 함께 작품을 출품하여 전시하는 기회를 얻게되었다.
그렇다고 그 분야와 관련된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그 분야에 뛰어난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생겼고,
그래서 그 경험이 나한테는 엄청 소중하다.
앞으로도 계속
편견을 깨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 편견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천천히 하나씩!
-2016.02.29.월-
D-49 (4/18 CDT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