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물었다.
“스승님, 반야심경은 모든 것이 공(空)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너무 차가운 말 같아요.
세상에 고통이 이렇게 많은데, 비어 있다면 자비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스승이 미소 지었다.
“좋은 질문이구나. 많은 이가 처음엔 그렇게 느낀단다.
하지만 진정한 공은 차가움이 아니라 따뜻함의 시작이지.
공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는 뜻이다.
이해하면, 그 안에서 자비가 피어난다.”
소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자비는 공에서 나오는 건가요?”
스승은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지혜와 자비의 결합’이 바로 반야심경의 핵심이라고 하셨지.
지혜가 공의 실상을 보는 눈이라면, 자비는 그 눈으로 세상을 품는 마음이야.
지혜 없는 자비는 방향을 잃고, 자비 없는 지혜는 메말라 버린다.”
소년이 다시 물었다.
“틱낫한 스님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어요.
그게 자비와도 관련이 있나요?”
스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상호 존재(interbeing)’라 불렀지.
우리 몸과 마음, 구름과 바람, 부모와 자식, 모두는 하나의 흐름 안에 있어.
그걸 깨닫는 순간, 남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되고,
남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지.
그게 바로 자비야. 분리되지 않은 마음의 따뜻함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자비는 단지 느끼는 마음인가요?”
스승은 고요히 웃으며 답했다.
“아니란다. 자비는 행동이야.
달라이 라마께서는 ‘타인의 고통을 덜기 위해 기꺼이 움직이는 것’이 참된 자비라고 하셨다.
자기만의 평화를 지키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지.
그건 곧 ‘공의 따뜻한 현현’이야.
비어 있음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고,
그 사랑이 세상을 다시 태어나게 하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비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품는 마음이군요.”
스승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게 바로 반야심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일이지.
공은 끝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다시 이어지는 시작이다.
그곳에서 피어나는 자비는 세상을 조용히 따뜻하게 만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