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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Jun 02. 2022

붕대감기

윤이형 

+ '멋언니' 인터뷰를 읽다가 김보라 영화감독이 언급한 소설이 궁금해서 빌려보게 되었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독서가 좋다.

+ 소설 초반부를 읽다가 멀어진 친구들이 떠올랐는데, 바로 다음 장에 멀어진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어 신기했다. 생각의 결이 비슷하게 흐른걸까? 나는 나대로 그 쪽에 서운한 게 있었지만, 서로의 이유는 다를 수 있겠지. 영영 알 수 없겠구나 생각하다보니 쓸쓸해졌다.

오늘은 남편과 정치얘기를 하다가 기분이 상해버렸다. 크게 보면 정치색이 같은데도 작은 틈에서 의견이 갈려 종종 다투게 된다. 어느덧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게 되었는데 오늘이 선거일이다보니 얘기가 튀어나와 버렸지. 남편과 대화가 단절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일상적인 이야기는 나누지만 나는 그런 대화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나의 깊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다. 그게 가로막히니 이 관계는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꼭 남편뿐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 오래된 친구들이지만 그저 가벼운 일상을 나누고, 가끔은 남 흉을 보고, 연예인 얘기로 시간을 채우다보면 공허해진다. 이런 마음들이 소설에 그대로 담겨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어떤 이슈들에 대해 예전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과정 속에 보편적으로 가지게 되는 감정인가 싶다. 

+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나는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더 중요한가, 나의 신념이 더 중요한가. 다른 여자들을 쉽게 미워하고 멀리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뭐라고.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변할 수는 없다는 것. 




- 얻을 것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만나 웃어 보이는 일은 회사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으므로, 아이 엄마들하고까지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건 공교육의 실패일 테고 은정은 그 실패에서 비롯되는 부차적인 노력을 떠맡고 싶지 않았다. 

=> 내가 매일 하는 이야기. 초등학교 입학하면 매일 픽업가야해서 휴직기간을 남겨둬야해~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등하교길이 위험하고 방과후에 아이들은 갈 곳이 없고, 학원 라이드며 심지어는 친구들과의 만남도 엄마가 어레인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한 등하굣길을 만들고 방과 후에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 될 일이다. 시스템을 보완하지 않고 언제까지 부모만 갈아넣어져요?


- 모두가 자신의 표정을 신경쓰며 조심하는 분위기 속에서 은정은 미워할 사람을 찾아헤맸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손님을 평가하지마. 절대로. 머릿결이 상하셨네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여기 목 뒤에 피부가 안 좋으시네요. 이런 말 절대 하지 마. 손님들이 자기 상태를 모를 것 같니? 다 아는데 좀 나아지게 하려고,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고 미용실에 오는 거잖아. 그런데 머리하러 와서까지 그런 말을 들어야겠니? 그렇게 무신경할 거면 이 일 하지 마. 아예.

=> 정말 100% 공감. 미용실, 스파, 목욕탕에서까지 매번 등 피부가 어떻네 소리를 듣는다. 이제 그냥 수백 써봐도 안되더라고요. 하고 치우는데 정말 스트레스. 제가 모르겠냐고요? 등에 대해 일절 언급 안하고 본인 할 일만 하는 분을 보면 이게 프로지 싶다.


- 그러나 나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물어보았다.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종종 장미가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게 되므로.

=> 누군가 나에게 다정해주기를 바라는 날들이 있다. 나의 다정함도 숨기지 말아야지. 


-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중략)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미워하지 말자.


- 우리가 현실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데요? 다음 수업 시간 교재는 어디에 있습니다, 여섯 개 짜리 세제 묶을을 어디서 사면 싸요, 오늘 저녁은 먹고 들어갈게, (중략) 그 새끼 정말 미친놈이라니까. 그런 말들 이상의 말을 얼굴을 보며 할 수 있어요? 그런 말들만 하며 사는 게 삶이에요? 저는 오늘 아침 방 한구석에서 발견한 거미줄을 보고 왜 눈물이 났는지, 왜 내가 재주보다 포크를 일곱 배쯤 좋아하는지, 무조건이라는 말을 들으면 왜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말할 사람이 필요해요. 그 정도도 원하면 안되는 거에요?


- 하지만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이잖아, 채이는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걸까? (중략) 언제까지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면 어떻게 발전을 하지? (중략) 우리가 가진 공통점은 왜 중요하지 않아? (중략) 아무리 어렵고 어색하더라도 서로를 마주 보고, 이름을 말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것들을 내눠 갖기 시작할 수 있을까, 채이는 생각했다. 


- 여성은 여성에게 너무 쉽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해요. 서로를 그렇게 적대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중략) 젊은 여성들은 세연보다 훨씬 정치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그들에게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친분 관계만큼이나 입장과 노선, 공유할 수 있는 목표가 중요한 것 같았다. 그 입장과 노선, 목표에 따라 인간관계가 새로운 방식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다. (중략) 하지만 작은 회색 노트에 둘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 넣고, 여기에 번갈아서 일기를 쓰자, 말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진경은 세연과 무엇가 공유할 만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했을까? 그들 사이에 공통점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너는 가끔 사람들의 눈앞에서 문을 꽝꽝 소리 나게 닫아 버리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떄문에 말이야. 그럴 때마다 말하고 싶었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좀 기다려 줄 순 없는 거니? 모두가 애써서 살고 있잖아.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 다 잘못된 거야? (중략)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중략)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어지러운 거겠지. 방향 하나하나, 신호 하나하나, 승객들 한 명 한 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 (중략) 나는 단지, 표를 사는 법을 몰라서, 멀미가 너무 심해서,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아니면 그냥 길을 잃어서, 멍한 얼굴로 읽을 수 없는 노션표를 들여다보며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떄문에 무섭고 외로워서 그 사람들이 울고 있을 때, 다가가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 거야. 그 사람들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 나도 과묵해지고, 멋있어지고 싶어. 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내가 싫지만, 미움받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거나, 이리저리 단어를 검열하는 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져. 나는 바보 같은 말을 하며 견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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