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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Dec 09. 2020

엉덩이가 처지는데  
스쿼트는 하기 싫다

이렇게 망가지는 건가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많이 나이 들어 보여서. 아참,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이가 들어버린 거지. 그래서 자주 거울을 보지 않게 됐다는 슬픈 이야기는 프롤로그.



십 년도 넘게 전이었나, 소위 "몸짱 아줌마"라는 사람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 아줌마는 얼굴도 예쁜 편이기는 했지만, 날씬한 것을 떠나서 온몸이 근육질. 탄탄하고 잘 갈라진 화려한 근육들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특히 애플힙이라고 불리기에 딱 적당하게 업된 힙은 다리를 길어 보이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제 나이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제 나이로 보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42살 정도였던 그 아줌마는 일약 스타덤(?)에 올라섰고 한동안 tv 프로그램과 잡지와 광고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몸짱 아줌마는 전문적으로 헬스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살림을 하는 중에 틈틈이 몸을 관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큰 화제가 됐다. 예를 들면 설거지를 하면서 힙업에 도움을 주는 다리 동작을 하고, 걸레질을 할 때는 이렇게, tv를 볼 때는 저렇게. 일상의 모든 순간에 버리는 시간 없이 알뜰하게 시간을 근육으로 환산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렸고, 결혼 전이었고, 애도 없었다. 40대가 마냥 멀게 느껴졌고, 엉덩이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무방비 상태로 나이를 먹다가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엉덩이가 한없이 중력을 따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엉덩이야,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우리가 갈 곳은 저 위라고. 너는 옆구리와 한 팀이지 무릎과 같은 편이 아니야.........


엉덩이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고, 나는 조금 슬픈 기분이 들었다.




어린날엔 학업이 중요했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직업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간절한 것은 힙업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힙업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엉덩이 심폐소생술로 소개되는 스쿼트나 런지, 그런 동작을 제대로 하는 방법과 효과적인 팁, 그리고 더 심화된 힙업 운동법에 대한 소개가 줄을 잇는다. 좋았어, 이제 날마다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널리고 널린 정말 좋은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몸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함께 일하던 동료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평생 안 하던 헬스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원래 키도 크고 몸도 나쁘지 않았지만, 복부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기분이 든다면서 이제야 비로소 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면서 운동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일주일에 두세 번 헬스장을 다녀오면서 몸이 조금씩 변해감을 느낀다면서 스스로에 대한 감탄과 대견함을 공유했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왜 이렇게 죽어라고 운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정말 힘든데, 마지막 세트를 죽을힘을 다 해서 하고 나면 얻게 될 초콜릿 복근이라던가 식스팩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얻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얻어서 뭘 할 건데 싶어 진다는 것이다.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는 둘이고, 회사는 바빠서 여름휴가도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정말 죽기 직전의 괴로움을 극복해가면서 운동을 하고 얻은 그 빛나는 복근. 어따 쓰지?


맞는 말이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초콜릿 복근이 생겼다고 회사에서 배꼽티를 입고 다닐 것도 아니고, 그냥 티셔츠 안에 조용히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그걸 얻기까지의 과정이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것이 자꾸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는 핑계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것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을 보면 늘 경외심이 들고 부럽고 본받고 싶다. 살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자기 관리일 텐데. 자기 관리로 유명한 배우 김희애 님은 평생 단 한 번도 초코파이를 다 먹은 적이 없었다는 말이 최근 화제가 됐다. 44 사이즈에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 관리란 그런 것이구나, 너도 나도 대단하다며 감탄이 이어졌다. 소녀시대 식단이라는 것도 있었다. 저렇게 예쁜데도 그 예쁜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하고 있다는 걸로 많은 사람들의 다이어트 욕구를 자극했다. 먹고 싶지만 참고, 힘들지만 스쿼트를 하는 것이다. 졸리지만 팩을 붙이고서.



다만, 다 아는데도 모르는 게 아닌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냥 좀 흐트러지면 어때 싶나 보다. 조금 뚱뚱하면 어때, 못생기면 어때, 엉덩이 좀 쳐지면 어때, 피부 좀 칙칙하면 그게 뭐 어때.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가끔씩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을 바라보는 나 스스로의 시선이 무서웠다. 그래서 긴장하고 팩도 하고 운동도 했다. 그런데도 나이는 들고, 주름은 깊어지고 그리고 마침내 엉덩이가 축 처지기 시작한다.



얼마 후 새해가 밝으면 또다시 몸짱 아줌마 같은 것이 되고 싶다고 필라테스 등록을 서두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중력에 패배한 나의 엉덩이에 대한 신경을 끄고 살고 싶다. 엉덩이 좀 쳐지면 어때 정도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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