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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Sep 17. 2020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이 시대의 사랑은 어쩌면 삼시 세끼를 챙겨 먹이는 것인지도 몰라






지난겨울 방학이 시작할 무렵만 해도 방학이 그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역사상 가장 긴 겨울방학이 이어지고, 온라인 개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등교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여름방학은 여름방학이라기보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방학의 연속인 것 같았고, 지금 다시 개학은 했지만 학교는 여전히 못 가는 상황이다. 이제 2학년이 된 아들의 학교생활이 있었던 것도 없었던 것도 아닌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지금 이렇게 정상에서 벗어난 일상은 "코로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쉽게 떠나던 해외여행이 처음으로 우리를 떠나버렸다. 조금만 과장을 보태면 부산 가듯 다니던 유럽여행이었는데 우리가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상태. 옛날엔 다들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들며 여행을 다녔대,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을 경우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 자연스레 마스크는 제2의 피부가 되어버렸고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는 게 당연한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면서 재택근무를 권장해서 종종 재택근무를 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재택근무라는 게 쉽지 않네, 를 깨닫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근무를 하면서 동시에 집안일도 해야 한다. 밥도 제때 챙겨 먹여야 하고, 실시간으로 지저분해지는 집을 정리해야 하는 것 또한 재택근무에 포함되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곤란했던 것은 아무래도 아이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었다. 당연히 학교에서 먹고 오던 점심을 집에서 먹는다니, 별일 아닌데 별일이다.


요리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주부 역할을 맡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요리의 빈도수가 크게 높아졌다. 가끔 해야 요리인데(내 기준에서), 학교나 유치원에서 점심을 먹고 오던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회사에서 밥을 먹고 오던 남편이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삼시세끼 식구들의 먹을 식 입구에 들어갈 끼니를 고민하다 보면 어떤 연유로 인간이 하루에 세 차례씩이나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사유가 깊어진다. 영양가 높은 식단을 예쁘게 차려야지 하는 마음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뭘로 대충 때울 수 있을까, 날마다의 메뉴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몇 첩 반상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가장 간단한 한 그릇 메뉴로 후다닥 먹고 치워버리는 것을 (내가) 선호하는 요즘 우리 집.


나는 내가 요리를 잘하는 줄 알았다. 아침, 혹은 저녁으로 하루에 한 번 정도 요리를 해야 하는 일상에서는 아기자기하게 요리해서 예쁜 그릇에 담고 사진을 찍는 일이 즐거웠고, 제법 요리를 한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코로나 시대를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재택근무를 하며 외식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루에 세 번 밥상을 차리려면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솟아나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우리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자아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게 된다.


아침은 대충 계란후라이와 소시지 등을 구워서 아이들 공복을 달랜다. 야채가 빠지면 죄책감이 들었지만 모르는 척해야 나도 살 수 있다. 점심은 본격적으로 먹어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침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뭔가 거창한 음식을 먹기도 애매한 것 같다. 물론 남편으로부터 계속 배고프다는 신호가 이어진다. 일전에 쓴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남편은 초등학생 입맛이고 햄버거를 시켜먹는 것을 일상에서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햄버거에 대한 열린 태도로 일주일에 한두 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다행이지, 배달음식을 최대한 활용해서 점심을 때워본다. 그렇게 얼추 점심을 해결하고 나면 또 금세 저녁시간. 저녁은 밥을 먹어야지. 아이들을 위해 낮에 안 먹었던 생선을 굽고, 도통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남편을 위해 메뉴를 준비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그래, 고기를 구워서 먹기로 한다.


고작 하루의 식단을 위한 고민이 이만큼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몇 달째 지속되다 보니 밥상을 차리는 것에 대한 포비아라도 생길 것만 같았다. 그나마 재택근무가 아닌 출근하는 날에는 집밥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기분마저 들었는데 주변에 주부로 살아가는 지인들은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고난이 삼시 세 끼라고 암암리에 동의하고 있다.



아이들은 사랑만 먹고 자라지 않는다. 충분한 영양섭취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들 식단에 열을 올리는 것이겠지. 코로나 시대이고,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한다고 해서 밥을 띄엄띄엄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아홉 살이 되면서 눈에 띄게 음식 섭취량이 늘어난 아들은 지금 폭풍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이고 그만큼 잘 먹여야지 생각이 들지만 삼시 세 끼와 간식을 제대로 챙겨 먹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사를 하시던 엄마가 냉장고에 항상 밑반찬을 가득 가득 챙겨두셨던 것, 언제나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가득했던 아 어쩌면 그런 게 사랑인가.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겉멋이 들어서 유행하는 식재료를 사고 사진발이 잘 받는 예쁜 음식을 만드는 것은 요리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날마다 누군가의 끼니를 반드시 챙겨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부여된 규칙적인 행동으로써의 요리. 사랑은 어쩌면 그런 것에 가까운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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