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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ul 07. 2020

태닝이 어울리는 건 이효리 뿐인거 같아

가장 좋은 화이트닝의 방법은, 원래 하얀거






어렸을 때는 노르스름한 피부톤을 갖고 있었다. 백인, 흑인, 황인이라고 피부색을 나누며 한국인에게는 보통 황인에 속하는 피부톤이 주어진다. 학교에 몇 명은 피부 세포에 멜라닌 색소라고는 들어있지 않는 것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하얀 피부가 부러웠다.


1998년인가 핑클이 데뷔했을 때였다. 나도 역시 뽀얀 피부의 성유리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효리더는 매력이 남달랐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그렇게 예쁠 수 있구나를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이효리는 데뷔 이후 한 번도 피부색이 밝아진 적이 없다. 점점 더 태닝 되어가던 이효리로 인해서 태닝이 유행하기도 했다. 트렌디하고 힙한 패션의 중심에 태닝이 자리 잡았었고 태닝샵 10회를 끊어서 피부를 일부러 그을렸지만 생각해보면 아이유도 하얗고, 수지도 하얗다. 예쁜 여자들은 다 하얗다는 공식을 부수고 하얗지 않아도 예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뿜어내어 주는 것 같아서 이효리가 좋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화이트닝 제품을 꼼꼼히 바르고, 화이트닝 팩도 빠뜨리지 않았다. 화이트닝 제품으로 얼굴이 하얘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잡지에서 본 이후로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지만 요즘도 화이트닝 팩을 사서 한다.


나의 남편은 피부가 매우 까만 편이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이에게 바랬던 것은 피부가 좀 하얬으면 하는 것이었다. 유전적인 요인으로는 불가능하니까 뭔가 이변을 기도했던 것이다. 그래서 태명도 별다른 이유 없이 하얀 아기였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두부"라고 지었다. 하지만 까만 아빠와 노란 엄마 사이에서는 햇볕에 취약한 피부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다른 친구들과 같은 시간을 햇볕에서 놀아도 유난히 빨리 피부가 그을려졌다. 선크림을 아무리 잔뜩 발라줘도, 한나절 야외에서 놀고 나면 피부톤이 아주 까매지기 십상이었다. 둘째는 더 심했다. 아빠의 유전자를 심하게 물려받은 듯했다. 집에서 거실에만 있어도 손등이 새까맣게 태닝 됐다. 처음에는 뭐가 묻었나 싶을 정도로 까매서 씻겨봤을 정도다. 태양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멜라닌 색소를 가진 아이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지만, 우리가 가질 수 없는 밝은 피부톤이 더 간절해졌다.


그렇다고 여름에 실내에 있을 수는 없었다.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공원으로 우리는 언제나 밖에 있었다. 아이를 따라다니느라고 내 피부도 많이 그을렸다.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발라도 우리 가족의 멜라닌 색소들은 굉장히 부지런히 진해져 갔다.


주말이 지나고 나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어머 어디 갔다 왔나 봐요? 많이 탔네요.라는 이야기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데도 하와이에서 한 열흘 정도 태닝하고 온 사람들처럼 우리 가족은 이미 까맣다. 그저 동네 공원에서 반나절 놀았을 뿐인데도 모두가 더 이상 까매질 수 없을 것 겉았는데도 스스로의 피부톤을 갱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외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챙기는 것은 아이들 피부에 선크림을 꼼꼼히 발라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안타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말의 죄책감이 들어서 매일매일 선크림에 집착하고 있다. 사실, 눈이 부시게 하얀 애들은 아무리 뙤약볕에 있어도 까매지지 않기도 하고 썬크림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 같지도 않다.


가끔 티비에서 온 몸이 밀가루처럼 하얀 아이유나 제시카 같은 여자 연예인을 보면서 넋을 놓고 바라본다. 온몸이 다 하얗게 되는 나만 모르는 미래지향적인 전신화이트닝 시술 같은게 있는건 아닌지 의심도 해봤다. 결론은 화이트닝에 가장 좋은 비결은 원래 하얀것이라는 사실이다.


살면서,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그 성실한 자세를 부정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많은 것들은 노력에 보답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력으로 안 되는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하얀 피부인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인가. 어쨌든 나는 아직도 하얀 피부가 가장 부럽고, 갖고 싶은데 주말마다 태양을 피하지 못하는 아들 둘과 함께 우리는 모두 까만 피부를 하고 있다.



요즘 놀면 뭐해에서 싹쓰리로 활동 중인 린다지, 이효리는 여전히 까맣다. 예쁘고 참 잘 어울린다.


아 까만 피부가 잘 어울리는 것은 이효리뿐이구나,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면서. 오늘 밤에도 화이트닝 팩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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