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남아있는 많은 밥상이 결국 혼밥으로 수렴되겠지
혼자서 하는 일들이
더 이상 궁상이 아닌 게 됐어요.
혼자라는 것도 트렌드라고 부르더라고요.
외톨이라는 말을 넣어두고
자발적으로 혼자서
혼자의 공간과
혼자의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요즘
혼자 먹는 밥을
자랑할 수도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네요.
혼자서 제법 잘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혼자서는 역시 어렵고 어색한 게 많았다. 예를 들면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이란 몇 번을 반복해도 어쩐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점심 도시락을 학교에서 먹었던 것이 몇 학년 때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삼 학년이었거나 사 학년 무렵이었을 것이고 그때는 급식이 아니라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각자의 도시락을 들고서 약속된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점심 메이트가 결석을 했다거나 뜻밖의 이유로 부재중인 날은 아침부터 초조했다.
"오늘 점심 같이 먹어도 돼?" 차선책의 친구 그룹에게 미리 쪽지를 보내서 혼자 먹지 않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학창 시절, 혼자 밥 먹었던 날이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그렇지만 혼자 먹는다는 건 굉장히 굉장한 일로만 각인되어있었다. 왜 그랬을까.
아침저녁은 가족과 함께였고 점심은 친구와 먹었으니까 혼자 밥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친구들이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경험을 전해 들었을 때 뭔가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한 느낌이 받았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야 진짜 어른이라는 말도 섞어가면서. 너희들은 이제 진짜 어른이구나, 감탄했다.
스물한 살이었나. 겉멋이었는지 뒤늦은 사춘기인지 아무튼 어느 날의 나는 혼자서 소주를 마셔봐야겠다는 다짐을 안고서 종로 3가 포장마차 거리로 향했다. 실연을 했거나, 가정불화 또는 진로 걱정 같은 것으로 인생이 복잡한 것도 아닌 평범한 초여름의 어느 날. 누가 시키지도 않은 미션을 수행하면서 굉장히 진지한 자세로 혼술에 임하는 나는 사뭇 진지했다. 소주 한 병과 오돌뼈를 시켜두고 앉았는데 사람들이 나를 힐끗거리는 것만 같았다. 주위가 의식돼서 이어폰을 꼽고 수첩을 펼쳤다. 별 의미 없는 것들을 끄적여가면서 소주 반 병 정도를 가능한 가장 느린 속도로 마셨지만 한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자리를 뜨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혼자서 소주를 마셔본 사람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입사를 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점심시간에는 보통 선배들이 막내를 챙겨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은 팀장 모임이 있고, 부장님은 부장님대로 약속이 있다며 나가셨다. 바로 위 선배도 동기모임이라 사라졌다. 누군가는 막내를 챙겨서 밥을 먹겠지 했을 텐데 공교롭게도 그날 짠 듯이 모두들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커다란 빌딩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고, 혼자서 구내식당에 갈 엄두가 안 났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버린 타이밍이라 다른 팀 막내인 친구는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 혼자 밥을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킵하는 쪽을 택하려고 하는데 저만치 담배를 태우고 돌아오던 동기 오빠들을 마주쳤다. “밥 먹었어?” 하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그대로 오빠들 손에 연행되어 회사 뒤 순댓국집에 가서 허기를 채웠다.
그 무렵 친구들과 작은 고깃집에 술을 마시러 갔던 날이었다. 우리는 일행이 서너 명 정도 모여 앉았는데, 옆 테이블에는 여자 혼자서 고기와 소주를 시켜놓고 먹고 있었다. 맞은편 자리가 세팅되어 있어서 일행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여자가 소주 두병과 추가한 고기까지 마저 클리어하는 동안에도 일행은 나타나지 않았고, 야무지게 한상을 끝낸 그 여자는 계산을 하고서 유유히 자리를 떴다. 바람맞은 걸까? 그렇다기엔 혼자서 너무 씩씩하게 먹는데? 그 모습이 너무 생경해서 한참 친구들과 이야기했다. 고기나 먹지 남의 일에 관심도 참 많았다. 아무튼 혼자 태연하게 고기를 구워 먹던 그날의 그 여자는 어쩌면 멀지않은 미래에 혼밥의 시대로부터 온 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순풍산부인과라던가 논스톱, 남자 셋 여자 셋. 아직도 기억이 나는 그런 시트콤들은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것이 당연한 시대라서 가능했던 편성이라고 한다. 요즘은 가족끼리 저녁시간을 그렇게 보내지 않기 때문에 가족 프로그램의 편성이 많이 줄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었다. 요즘 우리는 혼자의 시대를 살아가니까.
퇴근 후에 집에 가서 부랴부랴 아이들 저녁을 챙겨 먹이는 날은 정말 정신이 없다. 자연스레 일주일에 몇 번은 근처 사는 친정엄마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곤 했다. 엄마가 피곤해하시는 것 같아서 되도록 우리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 독립에 애써봤다. 한동안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생활과 식사 패턴이 달라졌다. 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해야 하는 사이에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출근도 하게 되었고 긴급 돌봄이기는 하지만 등교, 등원도 시작했다. 퇴근길에 작은 아이가 함미 집에 함미 집에 해서 오랜만에 들른 저녁시간의 친정집. 격일로 일을 하시는 아빠가 안 계신 집에서 엄마가 저녁 채비를 하고 계셨다. 혼자서.
1인분짜리 밀키트라던가 분위기 있는 플레이팅이 아니었다. 트렌디하지도 않고, 대단할 것도 없는 정말 혼자만 먹는 간소하고 조금 쓸쓸한 밥상. 엄마가 혼자서 대충 때우려고 하는 밥상.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반복되어야 하는 그런 밥상. 원하든 원치 않든 혼자서 먹는 끼니를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 거기 있었다.
자식의 출가 이후에 밥상은 어떨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는 엄마의 혼밥에 잠시 동요했다. 늘 북적북적 얘들아 밥 먹어라, 먹을 사람에 비해 많은 양의 음식을 하시고 수북하게 반찬을 놓으시던 엄마가 혼자서 반찬통 몇 가지만 열어놓고서 조용히 밥을 먹는 장면. 가끔은 아빠랑 먹지만, 아빠랑 그렇게 살갑게 지내는 편이 아니라서 같이 있어도 시차를 두고 따로 먹는. 그런 엄마의 혼밥. 누군가의 나이를 대신 먹어줄 방법이 없는 것처럼 매번 밥을 같이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미 몇년동안 반복해서 익숙하진건지 엄마는 누구보다 태연했고, 그 장면이 어색한 건 오직 나뿐이었다.
이렇다할 효녀도 아니고, 살갑게 감정을 표현하는 편도 아닌 무뚝뚝한 딸이라서 이번에도 역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망원시장의 족발을 가끔씩 사와서 함께 나눠 먹는 것 정도. 누구에게나 혼밥의 시기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곱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