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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24. 2016

여행 혼자 오셨어요?

청춘여행소, 열두 번째 이야기



 여행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깨닫게 되는 점들이 몇 있다. 대부분 일이 힘들어 도피하듯 떠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힘든 이유엔 ‘일’ 자체보단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관계가 힘들어 이곳까지 왔는데 또다시 여행에서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일정을 함께 맞춰 여행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등장하고 숙소에서 마음이 맞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여행하며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주로 많이 듣는 질문이 ‘혼자 여행하면 안 위험해?’ 보다 ‘혼자 있으면 안 심심해?’인 것도 마찬가지다. 1인 가구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혼자 밥 먹는 문화가 어색한 한국에서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외로움, 고독, 쓸쓸함을 (어떤 이유에서건) ‘아예 느끼지 못하거나’, ‘이를 이겨내고 즐기는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될지 모르겠다.


 나도 처음 홀로 여행을 갔을 땐 혼자인 것이 어색했다. 다들 가족,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오는 여행지에서 나만 혼자인 것 같다고 느낄 때면 쭈뼛쭈뼛 폰만 만지작 거리기도 했고, 식당에 들어갈 때면 웨이터가 나에게 가져주는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꼭 불쌍한 사람 보는 듯 해, 밥만 먹고 후다닥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고 몇 번의 혼자 여행을 경험하면서 낯간지러운 혼잣말을 잘하는 나를 발견했다.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토닥이는 건 기본이요,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을 의인화시켜 생중계하며 소설을 쓸 때도 있다. 시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시를 읊조리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다반사. 혼자 웃긴 생각에 빵빵 터질 때면 지나가던 사람이 깜짝 놀라 쳐다보기도 한다. 반대로 가끔은 너무 멋진 야경 앞에서 쌓였던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엉엉 울 때도 있었다. 두브로브니크가 그랬다. 낚시하는 아저씨 옆에서 노을을 보며 방해 안 한답시고 조용히 울었지만 코 킁킁거리는 소리에 아저씨가 날 이상한 사람으로 봤더라지. 어쨌든 혼자 여행에서 '혼자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최대한 누리면서 스스로를 알아갈 뿐만 아니라 점점 여행도  풍요로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나에겐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혼자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자기 얘기만 하는 친구의 이야기에 맞장구칠 필요도 없고, 연인에게 양보해 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원하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다. 또한 혼자서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에 따라 세상을 여행하면 자신의 성향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다. 즐겁고 가뿐한 마음으로 본연의 모습을 찾고, 세상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들을 만나 예상 밖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중


위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온전히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작엔 '대화'가 있다.


1. 혼잣말의 효력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어보자.

저녁에 뭐 먹을지, 아까 본 풍경에 대한 감탄, 한국의 가십거리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기 삶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늦은 밤 분위기에 젖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한들 지금 각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직장, 결혼, 진로 등 앞으로의 문제 더미를 한껏 쏟아낸다. 그리곤 술 한잔에 털어내듯 서로 위로하며 무겁다 못해 땅에 붙어버린 분위기를 다시 업 시키려 한다. '이런 얘기는 여행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즐기고 쉬러 온 여행에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 여행을 망쳐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렇게 여행은 가볍고 즐겁고 쉽게 잊혀지는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반대로 혼자 하는 여행에서의 대화는 성향이 다르다. 주로 상대 없는 대화이기에 혼잣말이 많다. 그리고 자문자답을 머릿속에서 하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생각은 좀 더 존재적이고 본질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물론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가진 만큼 생각의 깊이도, 한계도 없다. 생각이 머릿속에서 날아다닌다. 새로운 생각,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2.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 성격에 따른 예견 가능한 활동과 반응 즉, 기존의 삶의 방식의 경계를 넘어 충동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참 짜릿한 일이다. 소위 일탈이라고 하는 이러한 일들을 여행에서는 '즐길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할 때면 우리는 끊임없이 조율한다. 여행지를 선정할 때도, 식당과 메뉴 선택할 때도 매 순간 서로 조금씩 양보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우리는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 정할 문제이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중


 그러나 혼자 떠난 여행에선 내 기분과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아침에 늦잠 자고 싶으면 자고 싶을 때까지 머무를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음 끼니를 당겨와 해결할 수 있고, 너무 좋은 곳이 있으면 예정된 여행지 몇 곳을 취소하고 눌러앉을 수 있고. 이렇게 나를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24시간을 꽉꽉 채워 쓸 수 있는 경험은 우리 삶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매 순간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하는 것도 꼭 필요한 좋은 경험이다. 그 결과가 어떻든 누구의 탓도 없고, 후회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외로움은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연인과 있어도 한쪽 마음이 허할 때가 있다. 가족도 있고, 친구들이 주위에 있음에도 마음이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외로움은 나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릴 때 조급함으로 외로움을 채워줄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여유를 가지고 그 외로움을 마주할 필요도 있다. 


 내가 가득 채워져야 다른 사람에게로 흘려보낼 수 있는 법이다. 외로움을 홀로 마주하고 다시 채울 수 있는 방법을 홀로 떠난 여행에서 배우게 된다면 스스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여유까지 덤으로 얻게 될지 모른다. 홀로 여행을 통해 외로움을 깊이 경험하는 것,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것도 내가 더 단단해지기 위한 훈련이자 능력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하나도 외롭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은, 처음 만난 여자가 예쁘다고 그녀의 주스 잔에 수면제 타는 것과 마찬가지다. 몹시 나쁜 생각이라는 거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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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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