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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n 17. 2016

여행 속 찰나의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청춘여행소, 열세 번째 이야기


현상


여행을 떠나면 가장 바쁜 신체기관이 어딜까? 

의심의 여지없이 일 것 같다. ‘예쁘다! 아름답다! 멋있다! 황홀하다!’ 등 내가 가진 표현으론 설명하기 부족한 새로움이 끊임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하나라도 놓칠세라 우리는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기 바쁘다. 

눈 다음으로 바쁜 건 아마 일 듯하다. 혀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떫은맛이라는데 세계 음식들을 접하다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 더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이 얼마나 더 많을까 하는 기대를 알기라도 하듯 수많은 여행사에선 '눈과 입이 즐거운 여행'으로 우리의 감각을 강하게 자극하며 손짓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에서의 순간적인 감동은 생각보다 쉽게 잊혀진다. 몇 년 전 찍었던 여행 사진을 다시 보지만 처음 봤을 때의 그 감동을 그대로 느끼기 어렵고,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왠지 여행에서 먹었던 그 맛과 느낌을 생생하게 떠올리긴 힘들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값 비싸고 맛있는 파스타를 먹지만 왠지 이탈리아 피렌체 골목 어딘가, 현지 사람을 따라 들어가 먹었던 6유로짜리 파스타만 하진 못하다고 느낀다. 결국 우리는 여행의 그 순간, 그리고 그때 내가 느꼈던 생생한 감정을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그 순간을 기억하고자 나름의 노력으로 사진도 찍는다. 하지만 오히려 사진을 남겼다는 생각에 시간을 들여 오롯이 그 순간을 느끼지 못하게 될 때도 있다.



본질, 관점


붙잡아두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사진과 영상으로
그 모든 순간을 선명하게 기록할 수도 있지만
최고의 순간에
셔터를 누르지 않는 사진가처럼
우리는 때로 사진을 찍지 않고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다.

마음으로 기억하고
각인하기 위해서.

더 깊고 달콤한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길 원한다면.

-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중

 

멋진 여행지에서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어떻게 하면 이 순간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 도쿄에서 일몰을 가장 잘 볼 수 있다고 호스텔 아저씨가 추천해 준 뒷동산을 향해 뛰어 올라가던 그 날이었던 것 같다. 일몰을 보는 내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하는 부질없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 순간을 기억해두었다가 때때로 지금 이 감정 그대로 떠오르게 할 순 없을까? 일상으로 돌아가 살면서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회귀 장치를 하나 둘 만들어 놓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맨몸으로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바로 온몸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아이디어

눈을 감고 귀를 열기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지금까지의 여행지에서와는 다르게 가장 바빴던 눈을 쉬게 하는 일이었다. 눈을 감으니 귀가 예민해짐을 느꼈다. 옆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고, 저 멀리 카랑카랑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뭇잎 사이를 틈타고 다니는 바람소리도 들렸다. 도쿄의 소리였다. 도쿄타워가 있고,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기에 도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쿄의 소리를 듣고 있기에 내가 도쿄에 있음이 인지되었다. 도쿄의 모든 소리가 나의 그 순간을 함께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선 골목마다 프리마 돈나가 노래를 한다. 이름 모를 클럽마다 라디오헤드가 연주를 한다. 나뭇잎까지도 사각사각 잊지 못할 소리를 들려준다.
햇빛은 또 어떻고, 들어본 적 없는 음악들로 세상이 넘쳐난다. 
그 왜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늘도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 미세한 음악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귀가 열린, 마음이 열린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꿈꾼다.
- <모든 요일의 기록> 중


그곳의 향기

 

 눈을 감은 채 있는 힘껏 공기를 마셨다. 맛있는 냄새에 자극만 되던 코인데 자꾸 도쿄의 냄새를 코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냄새에 이어 습한 7월의 도쿄 공기가 코를 파고들었다. 몇 번의 느리고 깊은 심호흡을 하고 나니 도쿄의 공기가 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마치 이전에 내 몸에 있는 공기가 모두 빠지고 도쿄의 공기로 다시 가득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곧 나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내가 도쿄의 소리와 냄새로 가득 차 있음을 인지한 후, 처음으로 여행자로서의 이방인이 아닌 그 나라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순간들이 안으로 스며들면서 깊이 느끼게 되었고 자연스레 모든 경험들이 더 오래 기억되기 시작했다. 


"냄새는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다.
과일 향기는 나를 남부의 고향으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장난치던 어린 시절로 둥실둥실 띄워 보낸다.
슬며시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냄새들은 내 마음을 기쁨에 녹아내리게도 하고 슬픈 기억에 움츠러들게도 한다. 지금 냄새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내 코는 가버린 여름과 멀리서 익어가는 곡식의 달콤한 기억을 일깨우는 향기로 가득 찬다."  -헬렌 켈러


  여행은 잠들고 있던 새로운 우리의 오감을 흔들어 깨운다. 깨어난 오감이 새로운 것을 만나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감동은 이전 여행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또 다른 기쁨과 전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리고 우연히 삶에서 마주하는 여행의 조각들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를 그곳으로 다시 데려다준다. 그것이 특정한 향이 되었든, 특별한 소리가 되었든 말이다. 이후 나의 모든 여행지는 냄새와 소리로도 함께 기억된다. 에펠탑으로 기억되는 파리가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가진 올리브색과 오래된 책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로 기억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의 여행이 모두 다르고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가 아닐까? 특정한 장비도 필요없다. 단지 모든 오감을 열어 그 순간을 느끼고 즐기는 것, 가장 기본적이고도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일지도 모른다.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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