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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n 24. 2016

여행의 또 다른 추억, 기념품

청춘여행소, 열네 번째 이야기


혼자 가든 함께 가든, 에피소드가 있든 없든 간에
여행에서 얻어야 할 소중한 것들을 느끼는 사람은 느끼며,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의 눈에는 여행이 그저 배회이거나 방황일 뿐이지만,
어떤 이에겐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할 값지고 소중한 배움이 된다.

‘비긴 어게인 여행’(이화자) 중에서

현상

 한 때 나의 집이 생긴다면 거실 선반 위, 한쪽을 오랜 여행들의 추억을 전시할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실제로 누군가의 집에서 전리품 같은 아우라를 뽐내며 즐비해 있던 기념품들을 보고 생긴 부러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면 현실은 가난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늘 꽉 차있는 배낭에 큰 부피와 무게를 가진 기념품을 담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난 그런 거에 욕심내지 않아'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나마 만만한 배지와 마그네틱에 눈을 돌려야 했다. 

 

 누구든 특정한 도시를 떠나거나 여행을 마치면서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스스로의 떠남에 아쉬움을 달래는 기념품이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나눌 작은 선물도 고민한다. 참 안타까운 건 언제부턴가 나라와 도시마다 모든 기념품들이 관광 상품처럼 획일화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많은 가이드북에서 '꼭 사야 하는 아이템'이라는 비슷한 이야기들로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어느덧 그 지역의 문화와 정서, 사람들의 가치를 담아야 할 기념품이 특정 브랜드의 명품이나 화장품, 아무 관련 없는 먹거리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질, 관점

 기념품은 단어 의미 그대로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여행지에서 구입한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줄 물건이다. 실제 기념품(souvenir)의 어원도 라틴어 subvenire, ‘특별한 시간과 경험을 불러일으키다’라는 뜻을 담고 있고 한다. 좋은 기념품이라면 분명 그 안에 여행에 관한 추억이 많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나는 곧 여행지에서 떠나오지만 여행의 일부분이 기념품에 깃들어 간직되는 것이다. 여행에서의 추억이 가득 담긴 물건이라면 나에게 최고의 기념품이 될 것이고, 선물하고 싶은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념 선물이 될 것이다. 이렇듯 여행의 한 조각으로 남을 기념품을 어떻게 고를까 하는 질문은 그 의미에 충실할 때 나오는 듯하다.

 나에게

 누군가에겐 몇 시간 기다려봤던 감동적인 오페라나 뮤지컬의 티켓이, 소중한 사람과 찍었던 사진 한 장이, 심지어 너무 맛있어서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아쉬웠던 초콜릿 봉지가 기념품이 될 수도 있다(실제로 도쿄에서 먹었던 초콜릿 봉지는 내 여행노트에 고스란히 붙어있다). 개개인이 어느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남들에게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이 나에겐 소중한 기념품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여행 중에 의미 있는 기념품들이 하루에도 몇 가지씩 나오게 된다. 여행 중 이렇게 나온 기념품들을 나는 마치 선반 위에 올려놓듯 여행노트 구석구석에 위치시킨다. 거창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것들이다.

 너에게

 가까운 친구가 외국 여행을 다녀오고 기념품을 챙겨줄 때 내가 감동하는 부분은 그 물건의 값비싼 정도가 아닌 ‘나를 그곳에서 생각해주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나도 그렇다. 여행 중 가족과 친구들의 선물을 고를 때 선물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가장 어울리는 선물을 찾게 된다. 이 과정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생각보다 즐겁다! 게다가 선물을 줄 때도 선물을 주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받는 사람을 더 기쁘게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타인을 위한 기념 선물도 '내가 특정한 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알리는 물건'으로 전락해버린지 오래다. 이러한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도 결국 좋은 선물이 아닐 수 있다. 파리를 가본 적 없는 친구가 몽쥬 약국에서 받은 핸드크림엔 파리의 향기도 없고, 정서도 없다.  직접 여행을 해본 사람만이 알 것 같은 '생생함이 담긴 추억'을 선물에 고스란히 담긴 어려워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아이디어

 산티아고에서 다리에 무리가 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낀 날,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숙소 앞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앉아 일기를 쓰던 중이었다. 나만 뒤쳐지는 듯한 느낌부터 시작해 산티아고를 시작했던 동기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옆에 내 기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걸.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문득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한참을 생각하다 엽서를 쓰기로 했다. 누구누구에게 써야 하지? 지나오면서 봤던 작은 슈퍼(따바코)에 엽서를 사서 돌아와 커피 한잔과 함께 쓰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열 장, 스무 장… 친구들의 이름을 쓰며 지금 나의 상황과 있었던 일들. 이곳이 왜 좋은지, 지금 나의 기분이 어떤지 등 나의 생각과 느낌을 생생히 담아내기 시작했다(나중에 친구가 글씨체에서 고스란히 나의 고통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세 시간쯤 그 자리에 있었을까. 엽서를 모두 다 쓰고 떨어져 나갈듯한 팔을 털어내며 한 장씩 우표를 붙이고 있으니 옆에 맥주를 홀짝이시던 할아버지가 탁자 가득한 엽서에 기겁하며 물어오셨다. 스페인어였지만 이 많은 걸 다 누구한테 쓰고 있냐고 물으시는 듯했다. 활짝 웃으며 외쳤다. 

아미고!”  (*Amigo 친구)

이 날 나는 51명의 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팔은 고통스러웠지만 친구들에게 행복을 선물해 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몇 주 후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외국 엽서를 처음 받아봤다는 친구부터 고마움과 안부를 물어봐 주는 친구들까지. 엽서를 보고 산티아고를 가고 싶어 졌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초콜릿이나 핸드크림을 사주는 것보다 그곳에서 쓰는 엽서가 나의 마음과 여행을 동시에 담는, 더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P.S.

 남들이 다 사 오는 선물이 아닌 나만의 비밀스러운 기념품과 선물을 찾아내는 것도 여행 중 큰 즐거움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지냈던 3개월 동안 남들은 유명하다던 가죽 시장에서 쇼핑할 때 나는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가이드북에 없던 상점들을 몇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피렌체 전통 문양이 담긴 예쁜 엽서와 바인더를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아끼던 편지지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쓸 때면 쓰는 나도, 받는 친구도 기분 좋은 선물이 된다. 


여러분의 여행 기념품은 무엇인가요?

거기엔 여러분의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나요?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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