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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01. 2016

우린 부끄러운 여행자입니다.

청춘여행소, 열다섯 번째 이야기

진정한 여 모습과 여행자로서 태도를 고민하면서 지금까지 다방면의 여행들을 <청춘여행소> 매거진에 담아왔습니다. 이번 글은 여행에서 느꼈던 안타까움보다는 직시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가깝습니다. 글을 쓰면서 잔잔히 퍼지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걱정을 또다시 느꼈습니다. 부디 여행을 앞둔 분이 있다면 여행에서의 또 다른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라오스

 몇 주 전 기숙사 엘리베이터에서 반가운 포스터를 보았다. 방학을 앞둔 학생들을 위해 '여행'을 주제로 한 강연 포스터였다. 강연자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하여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이란 책으로 사랑받아 지금까지 꾸준한 지필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김남희' 여행작가였다.

 작가님의 생동감 넘치고 자연의 웅장함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여행 사진은 청춘들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망을 들끓는데 충분했다. 그러나 강연 내도록 내 마음을 때렸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는 꽃보다 시리즈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아요. 방송에만 나왔다 하면 모든 한국 관광객들이 너도 나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든요. 10년 전쯤인가.. 그때 방문했던 라오스를 '꽃보다 청춘' 촬영이 있고 난 후 다시 방문하게 되었어요. 처음 방문했던 라오스는 어땠냐면..  새벽에 스님들이 옷을 갖춰 입고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해요. 온 마을에 스님들의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죠. 그런데 두 번째 방문했던 라오스에선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대신 관광객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죠. 늦은 밤까지 온 마을에 퍼졌던 웃음소리의 주인공인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중국과 우리나라였어요. 스님들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기 바쁘더라고요. 자기들끼리 신나서요."


우리의 모습

 강연을 듣고 있는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런 이야기가 아주 '흔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여행이라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그들의 문화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여행지에선 우리가 갑이요.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을인 것처럼 행동하며 말이다. 왜? 우리가 돈을 지불하는 관광객이니까. 이는 실로 자본주의가 팽배해진 현실의 모습이다. 어느덧  여행이 삶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 것도 사실이다. 여행을 못 간 거지, 안 간 거라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여행의 열풍이 부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모든 사람이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이 당연한 삶의 권리인 것처럼 여기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의 본질은 점점 흐려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 간 '손님'이다. 곧 떠날, 그리고 다음에 올 또 다른 손님을 위해야 하는, 말 그대로 '손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을 여행지에서도 실현시키고자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돈을 주었으니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운운하기는 바쁘면서 우리가 그들의 삶에 피해를 주는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라오스는 지금 제 2의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 간판으로 한국 음식점이 식당이 가득 들어차있다고 하는 라오스. 참 아픈 현실이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혹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그들의 문화와 삶을 존중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우리의 편리한 여행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의무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나의 이야기

 문득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너무도 생생하게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도 <꽃보다 누나> 열풍이 한바탕 불고난 후였다. 크로아티아에 형형색 단풍옷의 관광객들이 모이던 그때, 이탈리아에 머물다 귀국 전 크로아티아에 방문했다. 나도 <꽃보다 누나>의 열풍에 휩쓸려 방문한 수많은 여행객  한 명이었다. 드브로브니크에 가면 올드타운의 성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전망대가 있다. 꽤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해서 관광객들을 위한 케이블카도 운행 중이다. 고생을 사서 하는 나는 성격대로 굳이 걸어가는 하이킹 코스를 찾아내었고 케이블카를 타면 10분 만에 올라갈 거리를 두 시간 반 만에 만신창이가 되어 올랐다. 전망대에 카페가 있다고 하니 커피 한잔이면 피곤이 싹 가시겠다는 생각 하나로 오르고 또 올랐다. 오르는 내내 한숨을 돌리며 뒤돌아 볼 때마다 펼쳐지는 두브로브니크 시내의 멋진 장관, 중간중간 마주했던 또 다른 외국 여행객들이 힘겨워하는 나에게 외쳐준 " almost!"에 힘을 내며   올랐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두브로브니크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기분 좋게 카페에 들어섰다.

 

전망대까지 오르고 또 오르던 길. 오른쪽으로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이 보인다.

 

 한적한 카페에서 창밖을 보며 노곤해진 몸을 달래고 있는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오신 아주머니들이었다. 늘 그렇듯 대화의 주제는 비슷했다. 아들이나 며느리가 보내준 여행이니만큼 반 자랑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시기 바빴고, 드문드문 남편 흠집을 이야기하며 전우애를 다지셨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들은 빠르게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를 찾아 앉으셨고, 비어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끌어와 함께 다닥다닥 붙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난 그들이 무슨 이야기 하든 상관없었다. 다만 내가 속상했던 건, 그들이 기존에 있던 다른 여행객들을 배려하지 않고 그들의 대화에만 소리 높여 집중했다는 점이었다. 수 십 명의 한국 아주머니들이 카페를 점령한 후 웨이터가 각 테이블에 가서 주문을 받을 그때였다. 네 분이 앉아 계시던 테이블에서 한 아주머니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니 우리 그러지 말고 어차피 네 명이니까 아메리카노 두 잔 시키고 뜨거운 물 좀 달라고 하자." 서툰 영어로 투 아메리카노를 말한 아주머니와 "just two?"로 당황한 듯 재차 확인하는 웨이터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오랜 기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주했던 아주머니의 모습들이었다. 나야 웃으면서 아주머니께 "네 알아서 잘 해드릴게요." 했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지 않은가! 웨이터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아주머니들은 물은 셀프인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 계실까. 혹 tap water를 마시기도 하는 나라는 알고 계까.

 

 그분들의 탓만을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한국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단지 비싼 물가에 더 아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나의 눈은 급히 가이드를 찾고 있었다. 이런 문제에 '가이드'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젊은 남자 가이드였고 청일점으로 아주머니들 틈에서 그들과 함께 무아지경 대화에 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여행을 오신 아주머니들께 여행지의 문화의 이해를 위해 이야하고 여행의 가치를 전하는데 사명감이 있는 가이드라면 어땠을까? 여행객들에게 우선적으로 알려주어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오늘 어디 가고,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를 먼저 말하기 이전에 말이다.


  설상가상. 일행으로 보이는 외국 관광객들 몇몇이 카페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시장통을 연상케 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당황한 듯 입구에서 주춤했다. 그들은 곧 안으로 들어와 빈자리의 앉을 만한 테이블을 찾았다. 이전에 아주머니께서 의자를 빼가신 그 테이블이었다. 의자가 부족했던 그들은 당황하며 이리저리 의자를 찾았고 혼자 있는 내 테이블에서 양해를 구한 뒤 의자를 빼갔다. 그 뒤로도 10분간 계속된 시끄러운 수다로 기가 빨리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선 쉴 수 없을 것 같아 자리를 뜨기로 결심했다. 속으로 고민을 좀 하다가 앞에 앉아있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곧 갈거에요. 내 자리는 풍경이 잘 보이는 창가 쪽이니까. 자리를 저 쪽으로 옮겨서 앉으세요." 그들에게 그 자리를 주고 싶었던 이유는 많다. 그럼에도 가장 큰 이유를 두자면 아주머니들은 전망대의 카페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기 보단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바빴 외국 관광객들은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끝내 한국사람이 아닌척했다. 물론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겠지만. 난 그곳에서 또다시 낯선 외국에서 보는 한국인이 반갑지 만 않다는 것, 도리어 때론 같은 한국인인 것이 부끄러울때도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날 밤 두브로브니크의 야경

내가 마주한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에 내면엔 나의 부끄러움도 있었다.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 몇 해 전 처음 갔던 배낭여행에서 난 그 나라들의 문화를 비난하기 바빴다. 느린 인터넷을 보고 한국처럼 빠르지 않다고 불평했다. 비행기가 연체되어도 손님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서비스 정신을 비판했다. 돈에 관련된 문제라면 더 민감했다. 돈이 없는 가난한 대학생이었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팁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 호스텔에선 아침을 먹을 때 돈을 아낄 만큼 점심을 챙기기 바빴고 다른 여행객들과 내 것을 나누는데 참 인색했다. 그런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에 더 부끄러웠던 것이다. 혹여나 내가 했던 행동이 내가 마주한 사람에게 모든 한국인에 대한 인상으로 남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 뒤에 다녀간 또 다른 한국 여행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잊고 있던 중요한 것

 쉽게, 누구나 갈 수 있는 여행 대중화의 중심에서 이젠 어떻게 여행하는지를 고민할 때임엔 분명하다. 지속 가능한 여행, 공정여행 등 좋은 목적을 둔 여행상품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여행문화와 여행자의 태도는 새로 만들어지는 여행상품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비단 라오스만의 일은 아다. 지금 이대로라면 많은 여행지, 특히 국가의 문화 보존을 중요시 여기는 나라에선 한국인들의 여행을 금지할지도 모른다. 자국의 문화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나라라면 당연히 지켜내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소중한 것을 훼손하면서 얻을 우리의 즐거움과 이익은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들뜬 마음으로 간 여행지에서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소리를 듣었던 나의 경험들이 떠올라 비통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이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연 내내 마음이 아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자'이다. 모든 출발도, 모든 시작도 여행자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관광 열풍이다. 관광산업이 국가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기에 새로운 관광지, 관광상품을 개발하는데 정신없다. 지역을 테마로 한 관광,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관광. 특별한 목적으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청춘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프로그램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었음을 안다. 하지만 관광 상품을 소비하며 떠나는 여행자들이 아니라 한 여행, 한 여행마다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잊고 있던 삶의 가치를 깨닫는, 좀 더 '성숙하고도 숙련된'여행자가 되는 방법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먼저 일 모르겠다.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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