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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11. 2016

먹기 위해 살 듯, 먹기 위한 여행?

청춘여행소, 열여섯 번째 이야기


현상

언제부터였을까? 우리의 입이 침으로 마를 틈 없게 된 때가.

채널만 돌리면 방송에선 쉽게 접할 수 있다. 음식의 엄청난 비주얼과 굽고 튀기는 등의 고통스러운 사운드, 그리고 입이 아닌 표정으로 먹는 듯한 연예인들의 클로즈업된 모습과 세상을 다가진 듯한 리액션까지. 

아. 맛있겠다. 

한마디가 무의식적으로 툭 나온다.

방송에 한번 떴다! 하면 '맛집'으로 인정받아 삽시간에 매스컴을 타고 어마어마한 인파를 줄 세우는 그 열풍.

끊임없이 새로운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는 한편, 먹는 것으로 고민을 풀어놓는 방송도 심심찮게 보인다. 딸이 너무 많이 먹어서. 음식을 짜고, 맵고, 달게 먹어서 등 갖가지 이유를 달고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방송에서 유명한, 일명 먹방 BJ들은 엄청난 양의 음식을 '살인적'으로 먹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 먹는 모습을 보며 좋아한다. 많이 먹는 것이 어느덧 재능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해병대에선 후임병에 '음식 고문'을 했다는 기사까지 들린다. '먹방 요정들의 대결'이라는 '푸드 포르노'성 프로그램이 등장했다가 조기 폐지되기도 했다. 


 이런 방송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먹는 즐거움을 잘 안다. 음식에 대한 토론에선 누구보다 열성적이다. 그런데 결말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무엇과 무엇을 같이 먹으면 (결국) 맛있다(=더 자극적이다).' 혹은 '(결국) 맛있게 먹는 순서'에 대한 내용 등으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여행이라고 해서 다를까.  

먹어야 하는 국가 음식별 유명한 식당은 블로그와 가이드북을 통해 이미 정해졌다. 보는 것, 먹는 것에 실패하고 싶지 않은 여행자들은 검증된 맛집을 향한다. 여행지에서 검증된 맛집이란 이미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발을 딛었던 곳으로, 한국어 메뉴판은 물론 웨이터들도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심지어 한국 사람인 것이 확인되면 내가 무엇을 주문할지도 알고 있다. 역시나 실패하진 않는다. 그리고 검증된 맛집을 나온 여행자들은 미션 수행의 기쁨을 누린다. 사진까지 찍었으니 완벽한 미션 클리어인 셈이다. 


여행에 돌아온 뒤 하는 말은 비슷하다. 

"독일 갔다 왔어"

"크- 독일 하면 흑맥주에 학세이지. 학세 진짜 맛있지 않냐?"

독일의 돼지고기 요리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우리나라 족발과 비슷해 보이지만 발 끝이 아닌 돼지 발 목 윗 부분을 요리한다. 겉이 매우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본질

 나는 서정적인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양과자점 코안도르> <리틀 포레스트> <카모메 식당>과 같은 음식 관련 영화를 참 좋아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먹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도리어 신기하게 반성할 떄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 방송처럼 자극적인 색감이 들어가지도 않은데도 이런 음식 영화가 끌리는 이유는 먹는 것이 곧 삶인 인간의 모습과 더불어 음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요리에 빠져 집에서 주방을 벗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장작 2시간에 걸리던 땀과 노력의 요리가 30분 만에 가족들 뱃속으로 들어갈 때의 허무함, 신경 썼던 요리가 처참한 비주얼로 마무리됐을 때 솟아오르는 분노, 가족들의 평가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그 기분.  음식에 대한 관심이 여행으로 이어지게 되니 자연스레 그 나라 사람들의 음식 문화가 궁금해졌고, 음식을 이루는 재료와 그 나라의 특이한 조리방법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국 여행을 가면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구경하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싸고 다양한 치즈 앞에서, 다양한 향신료들과 소스 앞에서 '트렁크에 넣어갈 수만 있다면..' 아쉬워한 때가 참 많았다. 


관점

미국의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먹는 것이야 말로 사랑을 나누는 것 외에 유일하게 오감을 모두 사용하는 일이다


즐거움에 먹는 우리들이지만 어쩌면 실제로 먹는 것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기 전 충분히 눈으로 보고, 입으로 느끼고 음식의 본연의 맛과 재료를 생각하면서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한 끼를 배불리 먹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 다른 사람이 꼭 먹으라 했던 메뉴를 먹었다는 만족감에서 그쳐버릴 뿐이다.


언니와의 배낭여행,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당에서 주문한 샐러드를 먹고 있는데 샐러드 가장 위에 유독 '치즈'처럼 슬라이스 되어 있는 무언가가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맛과 특이한 질감이었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치즈려니' 싶었다. 지나가던 웨이터를 붙잡고 이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유창한 불어의 대답이라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고, 궁금한 마음에 종이를 펴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
뭐라 적은 거지? 상세하게 영어로 설명해주는데도 도통 알아듣기가 어려워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고 마저 샐러드를 해치웠다.
그날 밤 숙소에 돌아와 오늘 먹었던, 그 치즈 같던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적힌 종이를 보며 검색해보았다.
푸아그라!
그 말로만 듣던, 그 푸아그라였다. 보신탕과 어깨를 나란히 한 프랑스인들의 잔인한 모습이라던 그 푸아그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정말 치즈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내 생에 유일무이하게 푸아그라를 만난 그날이었다. 세상에 그 푸아그라가 내 입맛에 딱이었다니.
내 평생 처음 마주한 잊을 수 없는 푸아그라. 맛, 냄새, 질감은 그 어떤 말로 표현 불가. (달팽이 요리는 기억에 남지도 않음)

아이디어

1. '맛집'은 가이드북에 있고 '멋진 음식'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 관광객을 사로잡는 음식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일상적인 음식은 차이가 크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음식은 정말 맛있을 뿐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문화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맛집이 아닌 다른 곳을 가야 한다. 그 정보는 가이드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지 사람에게 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는 현지 호스텔 주인에게 지도를 가져가 이렇게 묻는다.

'나와 같은 여행객이 먹고 가지 않으면 여기에 온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을 추천해줘'

'네가 마지막으로 딱 한 끼만 먹을 수 있다면 오늘 저녁 어디서 먹을래?' 

오랜 기간 그곳에 살았던 사람이 추천하는 식당은 관광지에서 떨어져 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도 없다(나를 보고 신기해한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만을 먹는 것 그 이상이다. 소박한 음식에서 그 나라를 배우고, 주변 테이블의 사람들에게서 그 나라 음식 문화를 배운다. 그리고 그 가게를 나오면서 생각한다. 

'여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곳 사람들은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한다. 그래서 밥 먹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고 어떤 식으로 조리를 하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외식 문화에 젖어 '스스로 먹는 것'에 관대해지고 있다. 
생명, 질병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음식에 무지해져 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를 가져 올 것이다. 
한국엔 없는 요리가 없다고 하지만 전통과 뼈대를 지켜가며 요리법을 고수하고, 하나하나 재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요리에 대한 태도는 요리사가 아닌 우리도 배워야 할지 싶다. 
단지 '맛있다', '맛없다'가 음식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2016.1 바르셀로나 여행일기 중)


2.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실패한 음식이다. 

  구리구리한 발꼬락 내가 나던 치즈 퐁듀를 언니는 지금도 기억한다. 현지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서 먹었던 치즈 퐁듀가 언니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냄새에서 한번 '웩', 맛에서 또 한번 '웩'. 그 날 치즈 퐁듀는 내 뱃속에만 가득 담겼다. 그 뒤 스위스 여행을 하면서 치즈 퐁듀는 한동안 우리의 대화의 중심 화제였다. 융프라우를 향하는 기차 안에서 언니는 당시 느꼈던 치즈 퐁듀의 역겨웠던 맛을 이전 경험들과 온 어휘력을 동원해 표현했고 우리는 한참 배꼽을 잡은 채 웃었다. 반면 맛있었던 음식들은 사진 속에서만 간간히 기억할 뿐이며 오히려 음식의 '맛'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음 기억은 잘 안나. 그냥... 맛있었어.'


 잘 읽지 못하는 메뉴판을 보고 나름 추리해서 골랐는데 웨이터가 들고 오는 것을 보고 기겁했던 기억, 그런데 또 막상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있어서 두 번 놀랐던 추억. 이런 사소한 것에 도전해보고 결과를 즐기는 것이 실패마저도 추억이 되는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니겠는가!


먹고살기 힘든 때일수록 식욕과 성욕 같은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어쩌면 대한민국에 음식 관련한 프로그램이 끝없이 많아지는 것은 너무도 살기 힘든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우리가 언제 이 말을 했었는지 기억해보자.

부디 음식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길.

어쩌면 우린 행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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