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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22. 2016

여행에서의 모습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청춘여행소, 열일곱 번째 이야기


현상

 언니와 떠난 첫 유럽여행에서 우린 처음으로 서로가 무척이나 다름을 알게 되었다. 자매라지만 식성부터 성격까지 같은 부모님을 두고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언니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여행 계획부터 하루하루가 일사천리였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방향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여행에서 쓸데없는 곳에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정확하고 완벽한 언니에 비해 나는 구멍 덩어리였다. 길을 찾을 때는 손에다 침만 뱉지 않았을 뿐이지 '감'을 믿었다. 왠지 사람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가면 뭐가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움직였다가 잘못 길에 들어 언니에게 혼 줄이 난적도 있다. 언니는 사진마저 잘 찍었다. 언니가 먼저 시범으로 찍어준 사진 속 내 모습을 확인하곤 똑같은 사진으로 언니를 찍어주고 싶었지만 고퀄리티는 내 손에서 이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때 맞춰 관광객들이 카메라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불청객, 내 손가락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진은 타이밍인 거야!" 

그런 우리가 80일간 유럽여행을 통해 배운 것은 완벽한 여행자는 있을지 몰라도 완벽한 여행은 없다는 것이었다. 언니는 완벽한 여행자였지만, 우리의 여행은 완벽하지 않았다. 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건지, 수많은 변수 속에 기운이 빠진 건지 우리의 여행 계획은 배낭여행의 중반, 그리고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엄청난 유동성을 갖기 시작했다. 언니는 여행 속에서 배운 지혜로 점차 틀어지는 여행 속에서도 실망이나 좌절보단 그 상황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옷이 젖어도, 음식이 생각보다 맛이 없어도, 예상보다 통장의 잔고가 없어도 언니는 즐거워했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 이야기는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본질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오는 분노와 허탈감은 참 모질다. 그 계획에 나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금이 걸렸다면 그 분노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행에서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화가 날 때가 있다. "왜 하필!" 오랜만에 휴가를 받아 떠난 여행에서 내내 비만 내린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여행이 가진 본질 중 가장 큰 특징이 '예측 불가능'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예측 불가능이다. 때문에 어쩌면 여행에서의 모습은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짜증과 분노만으로 여행을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삶을 여행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오랜 여행을 통해 배운 '감사'를 삶 속에서도 이뤄낸다.

내가 어디를 가든, 어느 곳을 향하든 내 움직임과 나의 모든 생각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그것은 결코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들임을 깨달았다.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몸짓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움직여 몸짓을 그려내야 한다. 아프더라도, 길을 알지 못해도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은 살아있다는 가장 명백하고도 아름다운 증거니까. 그렇게 나의 이야기는 생명력 있게 써질 테니 말이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중


관점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하던 중 리도라는 작은 섬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 우리는 선착장을 향했다. 선착장으로 향하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언니를 뒤로한 채, 빨리 가서 줄을 서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했고 가장 앞자리에 서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뒤를 돌아 언니를 살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선착장으로 모여들어 작은 선착장은 금세 시장통이 되었고 난 휩쓸리다시피 배에 올랐다. 언니를 불렀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배는 출발했고, 그렇게 10분 뒤 도착한 리도섬에 내려 나는 배에서 내리는 모든 사람을 살폈다. 언니가 없었다. 순간 새하얘진 머릿속을 인지할 새도 없이 짱구를 돌리며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10분마다 운행하는 배, 내가 다시 베네치아 본 섬에 갔을 때 언니와 엇갈릴 확률, 여기서 기다릴 때 언니가 리도 섬으로 올 확률... 결국 한 시간 반 만에 우리는 베네치아 본 섬에서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사진을 찍고 사라진 나를 보고 놀라 경찰에게 신고한 언니는 내가 리도에 갔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경찰들과 베네치아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 그날로 대역죄인이 되었고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 말없이 언니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이보다 더 뭉그러진 여행 계획이 있을까? 그러나 우린 아직도 유럽 여행하면 <베네치아에서 이산가족 상봉> 에피소드를 탑으로 꼽는다. 우린 이 경험을 통해 완전하지 못한 여행, 그리고 완전하지 못한 삶에서 서로의 존재에 '감사' 할 수 있음을 배운 것이다.


완벽한 여행자의 상징, 우리 언니. (소심하게 뒷모습 사진으로) 많이 싸우고, 또 싸우고, 또 싸웠지만 그래서 재밌었던 우리의 여행


아이디어

"엘리지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빨강머리 앤>

여행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겪으면 고생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행에서 계획대로만 되면 고생할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다. 집을 떠나온 순간부터가 그렇다. 여행(travel)의 어원이 고통, 고난(travail)이라는 것을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행은 고진감래다. 여행의 고생 뒤에 오는 낙, 그것이 내가 유럽여행을 통해 언니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끈끈함이든,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든, 로맨스든. 그 여행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달콤함이 있기에 또다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며 여행을 하는 것 아닐까?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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