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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도동꿀벌 Oct 23. 2021

디저트를 함께 먹는다는 것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지 않을래?”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면 그 누군가는 지금 당신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어느 유튜버의 영상을 봤다. 오랜 세월 술자리에서 쓰여온 작업 멘트라고 한다. 술도 깨고 바람도 쐴 겸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말로 밖으로 불러낸 뒤 단둘이 있기 위한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이 말을 들으면 ‘아, 나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유튜버는 설명했다. 제안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들과 우르르 나가거나 된소리가 나는 비싼 아이스크림을 골라 상대의 작업을 무력화시키라는 조언도 함께였다. (참고로 이 유튜버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작업을 거는 것은 인간적으로 치사한 일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 클래식한 작업 멘트의 성공률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유튜버의 재치로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기야 했지만, 달콤한 것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꽤 로맨틱한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21세기 한국에선 그러지 않기가 어렵다. 한국인의 연애에서 카페를 뺄 수가 있나. 주로 사진 찍기 좋은 예쁜 카페에 가는 것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코스다. 도시에 산다면 모퉁이만 돌아도 크고 작은 카페와 마주치는 이 나라에서, 식후 아메리카노가 당연한 코스인 이 나라에서 그러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연애의 기억 상당 부분은 카페에서 커피에 디저트를 곁들이는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H와의 기억도 디저트로 시작된다. 처음 데이트를 한 날 그는 달랑달랑 들고 온 쇼핑백을 내게 건넸다. 열어보니 종이포장지에 싸인 네모난 펑리수(파인애플 케이크) 너댓 개가 들어있었다. 여동생이 대만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다 준 것인데 맛이 괜찮다더라고, 나도 맛을 보라고 했다. “단 거 안 먹어서 나한테 처리하는 거냐”고 놀리듯 묻자 당황하며 손사래를 치던 H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알고 보니 H는 단 것을 아주 싫어했다. 단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쇼콜라티에가 만든 발렌타인데이 한정판 초콜릿도 ‘단맛 혐오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으음, 맛있네.” 우물우물 한두 조각을 겨우 녹여먹은 H는 초콜릿 박스를 자취방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시 찾지 않았다. 여러 날에 걸쳐 야금야금 초콜릿을 해치운 건 결국 나였다.


 전형적인 술꾼이었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열 번 물으면 H는 열 번 모두 술안주가 될 만한 음식만 말했다. 삼겹살에 소주를 연거푸 마시면서도 쌀밥은 입에 대지 않는 그와 탄수화물 중독자이자 알코올 혐오자인 내가, 어떻게 (적어도 먹는 것으로는 갈등 없이) 연애했는지 돌아보면 신기한 일이다.


 갑자기 H와의 연애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H는 내게 디저트를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권한 최초의 사람이다. 디저트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 무엇이든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주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동시에 내 ‘디저트 탐방’의 적극적인 조력자이기도 했다. 출장지의 명물 디저트를 사 오거나 곳곳의 디저트 맛집을 찾아왔다. 그의 집을 찾는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O 카페의 마카롱이나 케이크를 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의 다정한 기억들은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H와의 연애가 끝난 뒤 한동안 취향에 대해 생각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면 오래 간다던데, 내가 디저트가 아닌 술을 좋아했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H와의 이별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에서였다. 단 것을, 아니 좋아하는 무언가를 함께 즐긴다는 건 취향과 관계없이 근사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H 덕분에 뼈해장국의 맛을 알았다.)


 H와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나서야 이 글을 쓴다. 고민만 하다 시간을 많이도 흘려보냈다. 다정한 제안을 해준 H가 부디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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