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기도, arti puja

형식으로 전하는 믿음이란

by 조작가

힌두식 예배 뿌자를 보았습니다 : 형식으로 전하는 믿음이란


여기, 바라나시의 강가에선 밤마다(?) 전통적인 힌두 의식이 진행된다. 아르티(arti-불火) 푸자(Puja-예배)라는 명칭만으로도 '불 쇼'를 연상하게 하는 이 힌두식 예배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그동안 홀로 다니는 밤거리가 낯설어 시도하지 못했지만, 보트 투어를 같이 했던 친구들을 만나 함께 하게되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 마실에 나서게 되었다. 저녁 6시, 어둑한 밤의 강가, 의식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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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진행하는 브라만 사제들은 카스트 제도에서 최상 계층에 위치하는 계급의 사람들이다. 민족이나 인종과는 별개의 구분이기에 사실 계급이 다르다고 겉모습으로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이들 건장한 남성 사제들은 시장이나 거리에서 보던 인도인들과 확실히 구별되었다. 멀끔함과 잘 차려입은 행색이 일차적으로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겠지만, 실은 그것보다 그들이 가진 태도와 눈빛에서 ‘다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꼿꼿한 자세와 엄숙하고도 진지한 표정, 눈빛만으로도 그들이 스스로 높은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랄까.

강물과 맞닿은 가트에는 금빛 천을 두른 여러 개의 테이블이 도열했다. 꽃, 종과 같은 영문 모를 도구(마치 우리의 무당굿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들이 잘 차려져 있고, 남성 사제들이 순서대로 나와 정해진 노랫가락과 함께 각종 몸짓으로 알 수 없는 행위를 했다. 기도 같기도, 주술 같기도, 무언가를 뿌리기도 하고 털기도 하며 불을 붙이기도 불을 돌리기도 술잔을 따르고, 또 마시고, 다시 불을 끄고, 연기를 돌리고 춤을 추고 절을 한다.



유일신을 믿는 다른 종교와 달리 힌두교도들은 다양한 숭배 대상을 가져왔는데 그중에서도 꽃, 과일, 나뭇잎. 심지어 손에 담은 물도 신이 받아들이는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거친 뒷골목에도, 길거리에도 어디든 살포시 얹힌 ‘경건한 꽃과 물건’들은 발에 차일 정도다. 한두 송이 꽃 제단으로 만들어낸 소박한 믿음이 힌두교의 한쪽 얼굴이라면, 이렇듯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몸짓과 큰 소리 역시 또 다른 얼굴인 셈이었다. 집 안에 제단을 두고 소소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도, 이렇게 특별한 승려들이 푸자를 행하는 사원을 찾는 행위도 그들에겐 중요한 믿음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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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믿는 대상의 형체가 대체 무언지 고민하며 각종 알 수 없는 사물들이 사제들의 손에 쥐어졌다 던져지는 공연 같은 의식을 바라보았다. 노랫가락 같은 주문도 있었고, 사제들의 선창에 따라 그 자리, 모두가 익숙한 듯 그에 따르는 제창도 있었다. 1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의식이 끝날 무렵, 사람들이 꽃이 뿌려진 쟁반을 돌린다. 어느새 쟁반은 동전과 지폐로 수북이 쌓이고 지켜보던 인도인(아마도 힌두교인)들은 그간의 엄숙한 태도와 대조적인 환호와 박수로 마무리를 함께 한다. 강가에는 음악이 흘러나오며 의식이 끝남을 알렸다.


모든 종교에는 형식이 존재한다.
신을 증명하는, 혹은 존재를 설명하는 방법은, 대개 ‘인간’의 감각을 어디론가 홀려가는 여흥(amusement)으로 펼치곤 한다. 마치 춤추는 굿판처럼. 이토록 화려한 볼거리와 갖추어진 의상과 행위는 예술이라 해도 무방할 것인데, 이런 행위들을 볼 때면, 예술과 종교가 하나였던 과거 속의 한 장면처럼 여겨진다. 무지의 인간들에겐 맹목적 믿음(信)으로 신(神)을 보여주어야 했을 텐데. 힘 있는 자들이 <신>을 <믿음>으로 대치하기 위해 감히 넘볼 수 없는 ‘형식’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스스로 고귀한 신(神)이 되어온 역사를 종교라 부르는 것 일까. 종교라는 형식이 이렇게 예술을 갖춰 힘을 갖게 된 것일지, 예술이 종교의 덕으로 고귀한 형식을 갖게 된 것일지, 어느 쪽이 더 센 놈일까?




중앙에 피워 둔 불이 사그라지니 온 세상이 어두컴컴해졌다. 불이 꺼졌다. 조명이 없어지니 의식을 보기 위해서 캄캄한 밤의 강에 보트까지 타고 나갔던 사람들, 신실한 현지인들의 즐거운 표정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함께 하던 일행들이 어둠을 우려해 감사하게도 조금 먼 내 숙소까지 동행해주었다. 가트 주변에는 빈디를 찍어주려는 사람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푸자의 마지막 단계는 쿰쿰(kumkum)이라는 빨간 가루를 손에 묻혀 이마나 가르마 쪽에 빈디(bindi)라는 점을 찍는단다. 빨간(혹은 주황) 가루를 들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몰려왔는데, 밤이 깊어 어둑하고 이것이 상술 일지 순수한 의식 일지 모호하여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지 못했다. 다시 속세다. 장삿속인지 신실한 마음인지 분간하기 힘든, 어려운 세상의 모습이 이 캄캄한 밤까지도 계속된다. 그들의 신성한 색이 나를 지켜주리라 믿지 않는, 믿지 않으려는 ‘순수하지 않은’ 나에게는 아직도 어려운 캄캄한 세상의 어둠의 색에 두려움을 더 갖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속세의 마음으로 경계했음에도, 눈동자 사이에 빛나는 그들의 빨강이 그 어디에서 본 빨강보다 신비롭고 강렬하게 보이는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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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anasi-193.jpg 의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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