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의 맛에 중독되다.
인도의 맛, 짜이 chai
사실, 인도 여행에서 가장 먼저 해결할 과제 중 하나는 식사보다는 '카페인'이었다. 꼬꼬마 중학생일 때부터 커피 맛을 들인 나는 중-고-대학교에 다니며 자판기 커피믹스로 심신을 달래고, 최근엔 커피믹스의 설탕 맛보다 원두의 고소함과 쌉싸래함으로 아침의 뇌를 깨워야만 하는 카페인 중독의 지경에 이르렀다. 여행을 위한 짐을 꾸릴 때도 적당량의 커피를 싸 오기는 했지만 부족했다. 몇몇 식당과 숙소에서 커피를 주문하여 보았으나, 다소 밍밍하거나, 한국에서 즐겨 마시던 찐득한 카페인의 용량을 채우기엔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끔 아쉬운 마음에, 녹지 않아 둥둥 뜬 커피 알갱이를 잘근 씹어먹기도 했다. 숙소나 식당에서 '핫 워터'를 요청한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핫'이었던 적도 없었다. 대체 어떤 물을 주는 건지, 끓여주는 건 맞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1일치의 커피믹스 적당량을 기본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신경이 풀어진 듯 몽롱한 커피 중독자에게 ‘마음 놓고’ 끓인 물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더운 나라에선 얼음물을 얻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뜨거운 물을 구하는 일이라 대비를 했어야 했다. (이 여행 이후로 나는 반드시 여행용 미니 포트를 제일 먼저 챙겨 넣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생물체의 적응력이란 놀랍다. 커피믹스를 말끔히 잊게 해 준 대체재를 찾았으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을 짜이와 함께 시작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인도짜이의 매력에 홀딱 반해버렸다. 믹스커피 대신, 짜이로 100% 대체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얕은 감기 기운으로 오슬 거림을 느낄 때, 카페인 부족으로 찌근한 두통이 올 때, 요기가 필요할 때도, 짜이는 만병통치약처럼 저렴하고도 따뜻하게 속을 달래주었다. 이후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여러 종류의 유사한 (혹은 영국식의) 밀크티를 찾아 시도해봤지만, 인도식 짜이와 비교할 수 없는 밍밍함, 아쉬움 뿐이었다.
인도 요리에 들어가는 ‘각종’ 향신료를 인도에서는 마살라(=이것저것 섞은 인도식 향신료 혼합)라 하는데, 인도식 짜이는, 이 마살라, 홍차, 그리고 우유와의 배합이 중요한 것 같다.
터키식 차이는 홍차 잎을 우려서 설탕으로 달콤하게 마시는 경우가 많고, 이 홍차 잎에 ‘향’을 더해 변주하는 식이다. 예를들면 애플 티, 장미 티 등. 향으로 마시는 느낌이랄까. 모로코엘 갔더니 또다른 차를 즐겼는데, 이들은 티에 민트 잎을 왕창 넣어 – 상큼한 민트 맛을 즐긴다. 인도에서 차이를 처음 만났을 땐, 영국식 밀크티와는 태생이 다른, 마치 오리지날 드립 커피와 자판기 밀크커피의 차이, 찐득함의 차이랄까? 여하튼, 돌아와 이 맛을 재현해보고자 조사 및 실험을 몇 차례 해보고, <나만의 짜이 레시피>를 정리해보았다.
* 재료 : 우유, TEA(홍차 가루 혹은 ‘차이’로 시판되는 티백 여러 개), 설탕, 카르다몬(정향), 생강 몇 조각, 계피 (외국 식료품 수입점에서 마살라 향신료를 아예 팔기도 함)
1. 카르다몬, 정향, 생강, 계피 등의 향신료들과 물(3컵)을 넣고 팔팔 끓인 물에 홍차 가루를 세 스푼 가량 넣고 좀 더 가열하여 우려낸다. (홍차 가루가 없다면 차이 티 티백을 여러 개 넣고 우릴 것)
2. 홍차 색이 진하게 나오면 우유를 2컵 정도 넣고 5분 정도 데운다. (우유 단백질이 응고되지 않도록 온도조절을 할 것)
3. 기호에 맞게 설탕을 넣고 건더기를 걸러 마신다.
인터넷의 정보들을 조합하고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정련한 레시피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장소, 그 시간, 그 컴컴한 새벽기차를 기다리며 마시던 짜이의 깊고 구수하며 영혼을 달래주는 듯 뒤에 남는 아련한 맛인지는 100% 장담하긴 힘들다. 어쩌면 그들에겐 비법의 가루를 대대손손 물려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 그 순간을 재현하려면 그들이 몇 대째 사용해 온 듯한 도구들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거리에서 오랫동안 끓이느라 꾀죄죄한 몰골의, 씻지 않아 눌어붙은 찌꺼기를 고아내는 골동품 같은 원조의 ‘양은 주전자’가 그 마법의 비밀일 거라, 우스갯소리를 나눴고. 우유를 담아오는 정체모를 얇은 비닐포장이나, 뜨끈한 차를 비닐만큼 얇은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담아주던 것조차 황당했지만.
둔해지고 밍밍해진 신경과 감각을 깨우고 싶은 순간들, 쌀쌀한 공기에 온몸이 움츠려지는 축축한 어느 날이면, 그 정체모를 마살라의 기억이 그리워진다. 싸한 겨울 공기의 거리에서 파는 5루피(100원) 짜리 짜이에서 느꼈던 힐링의 기억. 숙소 옥상에서 아침 식사 겸 한 찻주전자 통째로 주문하고 세상에서 가진 것이 시간뿐인 사람처럼 가슴을 열고 여유롭게 그 향기로운 맛살라의 향내를 즐겨주면 되었다.
호스텔이나 가게에서 틈만 나면 먼저 건네어 주어 마시는 짜이. 따스한 '대접'의 상징, 짜이와 얽힌 그림들은 인도에 대한 그 어떤 기억보다도 짠하게 사무치는 기억들이다. 둔해지고 밍밍해진 신경과 감각을 깨우고 싶은 어느 순간, 쌀쌀한 공기에 온몸이 움츠려 드는 듯한 어느 순간, 그때 그 짜이 한 주전자를 여기로 다시 주문하여 그 공기와 함께 소환해야 할 것만 같다.
잊을 수 없는 오감의 기억은,
인도에서 만난 그 어떤 이미지보다 생생하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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