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화를 배우다 :
예술의 도시 우다이푸르에서 세밀화를 배우다.
여행 준비 중 이곳의 공방에서 일일 강좌를 열고 있다는 정보를 메모해 두었던 터라 체험해보기로 했다. ‘문화 체험 및 교과 연구를 위한 자율 연수’라는 공식적 명칭에 어울리는 코스이기도 했고.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울 때부터 과하게 (세밀화처럼) 묘사하는 버릇을 잘 고치지 못해 지적받은 적이 많았다. 미술학원에선, 사물에 대한 묘사를 파고 들어가는 버릇은 ‘입시 그림’으로는 나쁜 그림이라 여겨졌다. 한정된 시간에 그림을 완성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입시용 그림>에 세뇌된 나는 스스로 아니라 여기면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종종 답답하곤 했었다. 왜 마음대로 그리게 내버려 두지 않았던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입시의 문턱만 넘으면, 예술에 있던 정답이 갑자기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다. 그나마 대학에서 자유로운/ 다양한 개성의 친구들 덕에 그 세계의 다채로움을 엿보긴 했지만, 다른 문화, 다른 시대의 그림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끝없이 무한 장식으로 촘촘히 채워가는 세밀화 스타일에서 (은근히) 취향의 동질성을 발견한 것만 같은, 설렘도 있었다.
첫날 아침 일찍부터 작은 수공예 공방들을 몇 군데 둘러보았다. 눈에 띄던 사람 많은 중심 거리의 공방보다 뒷골목의 젊은 화공의 공방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저기 흥정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했고, 손님 없고 한적한 뒷골목에서 조용히 '작업'에 매진하고 싶기도 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틀간 배운 작은 공방의 화공 사부께서는 너무 과묵하셨다. 뭔가를 물어보면 자세한 설명 대신 시범을 보여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는 방식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틀 동안 레슨을 받고, 다음 날 오후에 한국 대학생들을 만나 공방을 옮기기로 했다. 심심하던 차에 명랑한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나 보다. 외로움이 좀 가셨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남은 3일은 어린 여행 친구들과 번화한 공방에서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 인도식 전통 세밀화는 이렇게 제작됩니다.
1. 합판에 흰색 실크를 물풀로 붙인 뒤 바탕칠을 하고 말린다. : 실크에 색을 바로 입히면 번지기 때문에 아교 성분의 물로 바탕칠을 잘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채색화 그리는 방식과 흡사했다. 바람 좋고 햇볕 좋은 이곳은, 실크에 밑칠을 하고 널어놓으면 금세 마른다.
2. 윤곽선만 연필로 약하게 스케치한다.
3. 색면 구분에 따라 번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채색에 들어간다.
4. 무한 장식에 돌입 : 색면이 지루해질 틈이 없이, 선을 긋고, 점을 찍고, 선과 선으로 나누어진 공간에 또 점이나 패턴을 찍고, 그래도 심심하면 문양을 반복해서 그려주고, 반복된 문양이 또 지루해지면 남는 공간에 또 점이나 다른 패턴을 그려 넣고, 기하 문양, 식물 문양, 기타 등등 맘대로 문양을 차곡차곡 빼곡히 넣어준다.
5. 그라데이션 작업 추가: 색면이 주는 평면성에 변화를 주기 위해 면의 일부에 다른 색을 입혀 그라데이션 효과를 살짝 가미한다.
6. 다시 세부 묘사를 하고 장식을 추가한다.
7. 마른 뒤, 바탕 판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내면 완성~!
(*) 첫 번째 작품 파란 코끼리 한 마리
(*) 두 번째 작품 금색 코끼리!
(*) 세 번째 작품 귀염둥이 낙타!
그룹 레슨을 받던 공방은 여행자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있었는데, 작업실을 겸비한 공방이라 할 것도 없이 근처의 길모퉁이, 계단, 공터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창문은 없어도 방이 있던 지난번 뒷골목의 강습소는 양반이었다. 길바닥에 앉아 집중해서 붓질을 하고 있으면 오가던 여행객들이 지켜본 뒤 "A+!"라고 엄지를 치켜들고 구경하고 지나간다. 한국사람들의 길거리 '페인팅 쇼?'를 신기한 듯 보고 가는 서양인들은 절대 붓을 잡으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주인장의 그림을 구매하는 편.
주로 한국 사람들만 왜 이 ‘노동’을 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던 우리는, 한국인의 예술에 대한 조예와 능력 때문인 걸로 결론짓고 으쓱하기로 했다. 어쩌면 현지인들은 이런 우리의 취향을 상업적으로 잘 이용하고 있던 셈이다. 화구도, 공간도, 테이블도 갖추어지지 않은 가게 앞 길바닥에서 몇백 년 전의 그림을 모사하는 수업을 받다니. 나름대로는 전문 예술 교육을 받았음을 자부하며 지내던 때가 있었건만. 이 시골 마을 길바닥에서 심지어 비용까지 지불하고 그리는 그림이 이렇게 천진난만 즐거울까. 반면에 내 과거의 작업들 속에 ‘유희’의 감정이 얼마나 있었던가를 돌아보며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업 자체를 즐기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자신을 위한, 혹은 내 감정의 표현을 맘껏 펼쳤던 적이 있었을까. 즐거움 외에 어느 정도의 목표, 다른 목적에 가려져 있던 그동안의 내 작업의 시간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합격을 위한 그림, 과제에서 A+를 받아야 하는데, 전시에서 내 작업이 돋보일 수 있을까. 그 모든 과정 중에서 나 자신을 위한 창작의 과정이 있었던지 쉬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안타까움과 후회의 감정이 슬쩍 넘어왔다.
순수하게 내 시간을 온통 풀어놓으며 오롯이 나를 드러내는 창작을 과연 언제쯤 해봤을까. ‘표현’하는 일을 전공했다는 자였지만, 오히려 전공자로 그 기술을 배운 후부터 진정한 ‘즐거움에 대한 맹목적 접근’을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시간이 제법 흘렀고, 슬며시 창작이라는 본업이 아닌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면서 훨씬 더 감추며, 그 기회를 아이들에게만 강요했던 것 같다. 혹자는 그런 열정 부족의 마음 상태를 정신과 물질이 잘 조합된 '여유‘ 혹은 ’ 결핍이 없음'에 그 이유가 있다고도 말했다. 나는 내 열정이자 원동력의 부족을 창작의 고통과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의 인식 등으로 대충 정당화하고, 직면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었으며, 타인의 열정과 용기를 respect 하는 정도의 적절한 솔직함으로 비켜나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20년 만에 초보인 양 모른 척, 선 긋기, 채색을 배우며, 그림과 작업을 시작했던 어린 시절의 호기로웠던 열정을 기억해보려 애썼다. 오랜만에 가까이 맡아보는 쿰쿰한 작업 방에 배인 물감 냄새가, 바싹 마른 실크 천에 보드랍게 앉혀진 푸른색, 붉은색, 반짝이는 금색의 안료들이 안부를 물어 주는 듯 반가웠다. 매일 오후, 서너 시간 이렇게 고향 같은 물감 냄새를 다시 맡으며 어깨가 뻐근할 정도로 쉼 없이 무한 반복의 패턴 장식을 그려 넣었다. 젠탱글이나 만다라 작업에서 느끼곤 하는 마음 수련의 희열을 고스란히 몸으로 가져왔다. 고작 하루에 몇천 원의 수업료였지만 일상의 충만함과 초심을 일깨운, 귀한 붓질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