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 푸르에서 우다이푸르로 가는 길 : 인도 버스를 타고 라자스탄으로
인도 버스를 타고 우다이푸르로
조드푸르에서의 꽉 찬 하루를 끝내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버스를 예약해 두었다. 대부분 숙소는 이런 도시별 연계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약간의 수수료를 받겠지만, 이러저러한 품이 드는 것보다 경제적일 때가 많다. 버스 정류소까지는 거리가 좀 있는 편. 릭샤로 10~15분이니, 7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어야 했다. 아침에 나가야 하는 투숙객 때문이었는지 주인아저씨는 숙소 로비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미안했지만 미리 오토 릭샤를 요청했었더라, 잠을 깨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다가오는데 릭샤는 올 생각을 않는다.
"언제 오나요?"
"곧 와요."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짜이나 한 잔 마시고 있어요."
”.... “
주인아저씨의 어머니가 나타나 뜨끈한 짜이를 한 잔 내온다. 몇 분이 더 지나고 초조해진 나는 또 묻는다.
"언제 오나요?"
"곧. 버스 못 타면 내가 책임질게, 걱정하지 마."
"정말이죠?"
이런 세트의 그렇게 반복되는 질문과 답을 몇 분 간격으로 서너 번 더했던 것 같다. 그래도 도시를 이동하는 일정엔 최소한 30~40분은 먼저 준비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는데, 달랑 20분 전이 돼서야, 릭샤 꾼이 도착했다. 버스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불안했던 캄캄한 마음이 부릉거리는 릭샤 엔진음을 듣고는 금세 안정을 찾았다. 짧은 감사 인사를 마치고, 안도와 함께, 파란 도시를 미련 없이 떠났다.
우다이푸르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행객들은 어스름한 새벽의 어느 여행사 사무소에 모였다. 8시간 이상을 예상하는 장거리 로컬 버스는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처음 타보는 로컬 버스다. 생각보다는 외관은 평범했고, 우려했던 것만큼 낡거나 걱정스럽지 않은 버스가 사무실에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도착했다. 졸린 눈을 하고 버스 바우처를 손에 꼭 쥔 채 버스에 올랐는데, 이것 참. 생전 처음 보는 공간배치다. 왼쪽은 평범한 좌석버스처럼 2명씩 앞을 보는 구조다른 한쪽은 지하철처럼 벽에 붙은 좌석, 그러나 2층으로 상하 구획이 나뉘어있다. 마치 긴 좌석처럼 보이지만, 짐칸 같은 역할을 하는 구조였다. 오른편의 ‘일반 좌석칸’에는 대부분 외국인이 자리를 잡았다. 새벽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출발지에서는 현지인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장거리 버스라 이만하기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특별함이 있었지! 창틀에 머리를 콩콩 박으며 잠에 빠져들었기에 언제부터 어떻게 그렇게 버스가 헬게이트의 모습으로 전환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오른쪽 좌석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사람이 서 있을 틈이 없었다. ‘이층 침대 같다’라고 생각했던 금속 구조물의 왼편 짐칸엔 출퇴근 시간 신도림역의 지하철처럼 탑승객들이 끼어 올라탔다. 다른 점은 2층의 짐칸에 먼저 올라 누워버린 승객들, 그 옆에 끼어 올라 보따리를 안고 쭈그려 탄 아저씨들의 먹먹한 표정들을 비몽사몽 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물밀 듯이 승객들이 더해지고, 그들끼리 긴긴 시간을 ‘견디며’ 가는 그야말로 짐칸이었다. 간이 휴게소에 잠시 들러 용변을 해결하는 짧은 시간 외에는 정식 정류소에 정차한 적도 없었다.
시내에 접근할 때는 심지어 버스 승하차 문을 열고(!) 달린다. 언제 어느 때고 버스가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면, 승객들이 알아서 오르거나 내리고 있었다. 외국인들끼리 그 "opened door"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동시에 현지인들은 꽉 다문 무표정한 얼굴로 고단한 짐을 짊어지고 재빨리 버스에 오르내리고, 혹은 정차 시에는 열린 문짝 사이로 또 잽싸게 간식을 사거나, 각종 볼일을 해결했다.
이쯤에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https://youtu.be/lFe9 Qpz2 zHU
<럭셔리 버스>_ 정지찬
찌는 듯한 어느 여름 남인도에서
내가 애써 예약해 놓은 멋진 럭셔리 버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 내가 만난 건
사람 염소 닭이 같이 타는 낡아빠진 시골버스
나의 황당한 표정 화가 난 모습 뒤로
어느 인도 할머니는 돈이 없어 내려야 했어
누군가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누군가에게 럭셔리함
그래 내가 탄 버스 럭셔리 버스 맞았어
럭셔리 버스 럭셔리 버스 부우웅~
우리가 함께 타고 가는 멋진 순간들
럭셔리 버스 럭셔리 버스 부우웅~
힘든 인생은 없어 럭셔리한 경험만 있을 뿐...
(후략)
다소 낭만적인? 정지찬의 <럭셔리 버스>와 달리, 조드푸르-우다이푸르를 오가는 사설 버스의 첫 이미지는 그야말로 '럭셔리' 버스였다. 이 노래 가사의 후렴 부분의 ‘럭셔리’라는 단어가 새롭게 해석되어 짠한 감정이 올라온다. 그래도 <힘든 인생은 없다>라는 단정이, 희망이자 기대를 가질 법도 하지만, 글쎄다.
그렇게 온갖 이방인의 호기심과 삶의 고단함을 함께 실은 버스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목적지인 우다이푸르에 도착했다. 갑자기 물빛과 햇빛으로 밝은 기운을 받으며 시내로 진입했다. 창밖으로 내다본 이 도시는 무언가 달랐다. 바라나시처럼 삶과 죽음의 적나라한 냄새도 없고, 아그라의 타지마할처럼 위압적인 존재감도 뽐내지 않았으며, 조드푸르처럼 인공적으로 뒤덮은 푸른색 대신, 물빛과 흰색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맑음이 잔잔히 내비쳤다. 인도라는 나라가 숨겨놓은 속살을 살포시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도시로 진입하면서부터 보이는 분수가 그랬고, 신식은 아니었지만, 고전적인 고급 호텔의 모습, 맑은 하늘이, 편안했다. 이곳을 지나쳤던 여행자들이 괜히 찬사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인도 사람들에게도 ‘신혼여행지’로 이름난 도시라 했다.
지옥 버스의 장면은 금세 잊고, 내려 역시 함께하던 다국적 아이들과 릭샤를 나누어 타고 여행자 거리로 이동했다. 이름난 좋은 숙소는 만원이었다, 뭐 그리 중요할까, 어딘가 몸 뉠 데 있겠지. no problem.! 어느새 인도인의 여유를 흉내 내고 있었다. 버스로 동행한 한국인 일행들과 ‘수제비’ 간판 앞에서 눈이 맞아 함께 ‘인도 버스’의 여독을 달랬다. 메뉴를 보아하니,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백숙까지 연습한 모양이다. 각 나라의 대표 요리가 있을 법도 한데, 관광객이 많은 로컬 식당마다 어눌한 한국어로 ‘백숙’, ‘수제비’, ‘라면’ 등이 게시된 걸 보면 우리 음식이 특별한 건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한 건지 신기하기도 하다. 홍콩식 딤섬, 베이징 덕 같은 요리는 찾아볼 수 없지. 인도인의 카레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인의 요구일지. 중독성 강하고 간편한 한국요리를 이들이 즐기게 된 건지, 궁금했다. 어쨌거나 어설프게 흉내 낸 인도식 수제비가 또한번 기대되었기에 다시 도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적절한 'MSG'는 우리를 배신하는 법이 없지. 결과는 대만족.
배가 부른 채로 여유 있게 숙소들을 찾아다녔다. 급하지 않으니, 흥정도 한층 여유 있는, ‘갑’의 자세가 나온다. 베란다가 있어 전망까지 좋은 1인실 방을 괜찮은 가격으로 부르며 좀 더 자신만만하게 흥정했다. 인도 여행기 중 <베란다가 있는 풍경>이란 책에서 읽었던 ‘베란다’의 용어가 인도에서 생겨났다는 유래 때문인지 한 번쯤 인도 스타일의 ‘베란다가 있는 풍경’ 속에 놓여보고 싶었다.
우다이푸르는 인도의 휴양을 위한 여행지 중 하나로 호수가 많고, 맑은 공기, 깨끗하고 잘 관리된 옛 왕궁과 호텔들이 호수 주변에 늘어서 있다. 옛 중세에 세력을 떨치며 군림했던 힌두의 전통문화가 잔잔히 남아있어 마을 곳곳, 집안과 현관 주변, 보이는 장소마다 그리고, 장식하고, 또 잘 가꾸고 있었다. 이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이들 덕택에 풍족해지고 있는 이 골목에는 유리공예, 가죽공예, 전통 세밀화, 전통 옷가게 등도 관광객 대상의 장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랜드마크인 멋진 호텔, 왕궁과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편안하게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물’이 주는 여유로움과 함께 예술이 있는 도시. 물을 보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인도에도 이런 맑음이 있었는지 몰랐다. 따지고 보면, 몰랐던 것들이 너무 많다. 볕 좋은 강변을 산책하며 평온해졌다. 게다가 햇빛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베란다가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니, 갑자기 내 집 같은 안락함도 느꼈다. 바라나시에서 건너온 꽃무늬 시트로 보기 좋게 베드메이킹을 하고, 상큼한 오렌지빛 노을을 보았다. 이 촉촉한 도시에서, 일주일 정도의 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