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마지막 기억
인도를 떠나오던 날, 깔끔한 식당을 골라 탈리 한 상을 말끔하게 먹어치우고 뉴델리의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부터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언제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점심과 저녁 사이 충분히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물병’에 입을 대는 실수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덕에 공항에 다다랐을 때부터 이미 속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행의 마무리를 차분히 기록하며 아름답게 정리해보리란 애초의 계획은 건너갔을 뿐 아니라, 환승 공항에서조차 지사제를 찾으러 혼비백산 뛰어다니느라 아무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여행 내내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라 할 수 있었다. 뱃속 전쟁은 한국행 기내에서도 민폐를 끼치며 계속되었고, 신기하게도 인천공항에 발을 디딜 즈음 귀신같이 가라앉았다. 마치 떠나는 길을 누가 마술처럼 방해한 듯 지독한 귀향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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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도시를 거쳐오며 곳곳에서 만났던 인도의 힌두 신들의 방해였을까.
창조자 브라마,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변신한다는 비슈누, 플루트를 연주하는 파란 크리슈나 신, 부의 여신 락슈미, 반인 반조 가루다, 신성한 춤을 추는 나타라자-시바. 그리고, 코끼리 머리를 가진 신으로 여행, 사업에 꼭 섬겨야 한다는 가네샤. 한달 여 동안 만났던 이 많은 신들에게, 진심어린 기도를 올리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그저 상상 속의 신의 이미지를 그들의 힘따위는 우습게 여기고 가벼이 취급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들이 신성히 여겼던 소와 꽃과 그 강물에 진정한 경배를 올리지 않았던 탓이었을지도. 마지막 마무리에 큰 시련을 겪으며, 이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의 여행길의 내 모습을 되짚어 올려볼 수 밖에 없었다. 잘못된 것을 개워 올려 온 몸이 뒤집어졌던 것처럼, 필름을 잡아 빼듯 지나온 기록들을 되새김했다.
그 이유 때문이었는지, 돌아온 이후 한동안 그리움에 헤어나지 못해 사진을 보고 또 보고, 그 기록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이제야 기록을 정리하며, 정리하지 못한 마무리의 혹독한 되새김질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 같다. 그렇게, 그 어느 여행보다 진한 기억의 흔적을 남겼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 덕택에 오히려 미련이 남은 셈이다. 게다가 곳곳 마다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던 인도라는 땅은, 가보지 못한 도시들에 대한 궁금증까지도 불러일으키는 희한한 나라다. 그렇게 미처 밟아보지 못한 장소들에 대해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그 리스트만이라도 기록해 두기로. 또 언제 '나의 궤도'가 이상한 꿈에 빠지게 될 지는 모르지만, 나와, 또 누군가를 위해서.
-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배경, 북인도의 절경 "레".
- 인도의 붉은 사막, "자이살메르"
- 충분히 만나지 못한 "델리".
- 지나치기만 한 인도의 민낯, “콜카타”
- 핑크 도시, “자이푸르”
- 다시 밟아야 할, "바라나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 그곳으로 향하는 짐을 싼다고 하면 부러움이 컸던 인도라는 나라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역사와 공간을 가진 생명체 같았다. 불안의 극치와 호기심으로 출발하여 구토와 고열을 일으킬 만큼 호된 마무리였고. 마살라와 같은 강렬하고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는 맛이었다.
언제고 그리움이 다시 차오를 때,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며. 새로운 궤도에서의 삶이라는 여행을 기대해 보려 한다. 세상이, 점점 더 어렵고, 두드릴수록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쏟아내며, 점점 더 내가 몰랐던 깊이와 넓이를 드러내는 고난일지라도. 어쩌면 다른 세계에서 내가 만났던 것들이 지금의 평범한 내 공간에서 별 소용이 없을지라도. 그 드러난 속살을 마주하며 짜릿함을 느끼고, 살아 꿈틀거리는 나와 다른 존재들을 만나는 자극을 쌓아가는 즐거움은 잊고 싶지 않다.
화려하고도 진했던 그 기억이 누군가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