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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May 25. 2022

마음먹기

인사이동

#. 마음먹기     


"사람이 마음을 먹는다고 표현하죠?

왜 마음을 먹는다고 할까요?

나쁜 마음을 먹으면 꼭 탈이 나거든요.

그래서 좋은 마음을 먹으라고

마음을 '먹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법조팀에서 정치부로 인사 발령을 받았고, 대법원 기자실에서 짐을 챙기던 날 모 대법관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17년 기자생활 중 회사보다 더 오랜 시간을 머물며 일했던 곳이 서초동 기자실이었습니다. 법원 말진으로 시작해 서울지검 말진, 서울지검 반장(1진), 대법원 법조팀장까지.. 정말 과분한 자리를 맡으며 많이 배웠던 소중한 출입처를 갑자기 떠나게 되면서 사실 두려움이 컸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중앙지검 1층 기자실 골방에서 기사 마감을 하다 팀장한테 기사 물 먹었다고(낙종) 깨지면 노트북 모니터 앞에서 눈물 뚝뚝 흘리며 취재해서 보고하고, 저녁 8시~9시면 법원 야근자, 대검 야근자도 지검에 모여 모든 언론사 법조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방송 메인뉴스 모니터를 했던 추억. 기자 실장님(용 실장)이 만든 신문 스크랩, 용 일보 1면에 실린 단독 기사를 보면서 그날의 중요 기사를 체크했던 그 시절. 참 많은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 바로 서초동이었습니다.

      

'마음먹기'를 알려준 대법관님도 12년 전 처음 서초동을 출입했을 때부터 뵀던 분이셨습니다.

대장동 사건이 터지고, 사실 취재 환경이 더 어려워졌는데. 늘 한쪽 주머니엔 수첩과 펜을 들고 다녔던 기자여서 그런지, 서초동을 떠나기 전 차 한잔 주시며 덕담을 해주셨습니다.     



#. 여의도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서 생활한 지 벌써 두 달을 향해 갑니다. 첫 달은 멘붕이었고, 오월 들어 조금 업무에 적응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말과 글을 챙기며, 말의 홍수 속에 방향을 잡고 기사를 쓰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서초동은 정말 말이 없는 곳인데, 그곳에서 무언가를 힘들게 확인했을 때의 성취감과는 다른 언어와 문법을 익혀야 했으니까요.     


 아침 출근길 편하게 들었던 라디오도 이젠 업무가 되어, 정치인들의 출연 스케줄을 챙기며 기사를 씁니다.  국회 소통관 브리핑실에서 매일 수 십 명의 정당 대변인, 국회의원들이 발언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날 기사에 필요한 내용들을 챙기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을 훌쩍 넘깁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료들을 보면서 '와, 워커홀릭들만 모아놨구나' 싶을 정도로 다들 기계처럼 자동으로 자기 할 일 찾아서 하면서, 심지어 업무도 능숙하게 잘 해내는 것을 보니 '과연 나는 여기서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먹기’를 떠올리며 하루하루 견뎌냈습니다.


17년 차에 정치부는 처음이지만 검찰의 수사 기소 분리 법안인 이른바 검수완박 논란이 뜨거웠고, 서초동 불씨가 여의도로 옮겨 붙으면서 초반엔 인사가 난 건지, 안 난 건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이젠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 정치적 중립성


기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정치적 중립성입니다. 기자로 활동하다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하는 기자를 동료 기자들이 비판하는 이유도, 그 사람이 기자라는 자리를 자기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저 같은 경우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어느 쪽 하나 내편도 네 편도 될 수 없는 직접적 특성상 늘 정치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는데,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도 중요하지만, 정치를 잘 아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기자만큼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무원 조직에서, 특히 몇 년간 내가 출입했던 검찰 조직의 장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지난 몇 년간 서초동을 여의도로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해 민심이 0.7% p 표차로 심판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정치는 내 관심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동안 눈 감았던 부분에 대해서 반성도 했습니다. 관심사든 아니든, 기자는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막 여의도에서 말과 글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과연 적응하는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라의 법을 만들고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들을 가까이서 보고 챙기면서 우리 사회가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돌아가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지난 2월 우크라이나 관련 글을 마지막으로 쓰고 이틀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러시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쟁이 나는 것을 보니, 세상은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느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게 참 가슴 아팠습니다. 크렘린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맞서 싸워왔던 역사인데, 러시아가 다른 나라를 먼저 침공했다는 사실이 충격을 받았고, 끝까지 키이우 현장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의지를 보면서 숙연해졌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나라는 많고,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겠다는 나라는 많지만 전쟁에 참전해 함께 싸우는 나라는 없는 것을 보면서 우크라이나 상황이 결코 남의 나라 얘기 같지만은 않았습니다.

2월 22일.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그래도 전쟁은 안 날 거야' 믿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집안에 사정이 생겨 직장을 한 달 정도 쉬었고, 그 사이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대선 직후 정기 인사가 있었고, 출입처가 바뀌면서 '정말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6.1 지방선거가 이제 일주일도 채 안 남았습니다. 오늘은 선거를 앞두고 르포 기사를 준비하느라 지방 출장을 다녀옵니다.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뉴스에 담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려고 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그 시간 앞에 정직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잘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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