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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Jun 02. 2020

<파수꾼>과 <사냥의 시간>

연기와 형식의 차이, 극장과 OTT의 차이, 9년의 시간차

<사냥의 시간>  네 명의 친구

<사냥의 시간>은 여러모로 올해의 기대작이었다. 2011년 <파수꾼>으로 데뷔한 윤성현 감독은 오랜 기간 충무로의 기대주였다. 주연인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과 악당 ‘한’ 역할을 맡은 박해수는 한국 영화의 현재이자, 미래를 대표할 배우들이다. 90억 원이 넘는 순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영화팬들이 기대할 많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COVID-19 때문에 극장 대신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된 이 작품은 현재 많은 이들의 엇갈린 (상당 부분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파수꾼>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당시 국내 영화제를 휩쓸고 유럽 영화제에 초청되었던 화재의 입봉작이었다. 이를 통해 데뷔한 이재훈과 박정민이 스타가 되어 다시 9년 만에 윤 감독과 작업한 작품이 <사냥의 시간>이다. 두 작품 모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파수꾼>은 세 명의 남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절친이었던 이들은 사소한 오해와 십 대 특유의 자존심으로 서로를 밀어내고,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기태(이재훈)와 희준(박정민)은 절친이었지만, 갈등이 깊어지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변해간다. 기태는 사과하고 관계를 돌리고 싶지만, 받아주지 않는 희준에게 더 큰 분노를 표출하고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하나의 장면에서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이재훈도 대단하지만, 이를 받는 박정민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희준은 기태가 가하는 폭력의 희생자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기태가 더 약한 멘털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수꾼> 세 친구


결핍이 많은 친구들이 서로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은 <사냥의 시간>의 준석(이재훈)과 친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 양 작품 속에서의 관계들은 서로 상이하다. <파수꾼> 속 친구 관계는 불안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비극이 생겨난 반면, <사냥의 시간> 속 친구 사이는 어떤 외부적 압력에도 견고하다. 준석은 장호(안재홍)와 기훈 (최우식), 두 친구들 대신 감옥에 들어갔고 자신의 희생으로 번 돈이 휴지조각이 되어도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돈을 떼어먹은 상수(박정민)에 대해서도 끝까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들의 적은 엿같은 세상과 그들을 죽이려는 킬러 ‘한’이다. 이 외부의 적들은 친구 관계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 줄 뿐이다.

 

윤석현 감독은 신작을 위해 <파수꾼>이 주인공들의 갈등과 내면 묘사를 위해 형식을 포기했던 것과 정반대의 전략을 내세웠다. <사냥의 시간> 속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보다 영상과 사운드 같은 형식에 집중한다. 폐허가 된 도시 속 그라피티와 대형 네온사인을 통해 IMF로 망해버린 머지않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묘사했다. 헤드라이트나 가로등 불빛 같은 다양한 광원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을 만들어 냈고, 드론과 짐벌 촬영 장비를 통해 세련된 액션을 찍었다. 윤 감독은 사운드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총격 소리나 폭발 장면, 스마트폰 벨소리까지 사운드들이 어우러지도록 조율했고, 덕분에 긴장감은 극대화되었다. 이런 시청각적 요소들이 넷플릭스 환경에서 잘 살려지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안타까운 점이다. 

<사냥의 시간> 킬러 '한'


<사냥의 시간>은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영상미 등 장점들 덕분에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극장용 영상과 사운드를 넷플릭스용으로 재작업하는 과정에 감독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사가 뭉개지고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들이 많아, 자막을 켜고 봐야 할 정도였다. 밝은 환경에서 보는 TV 속 장면들을 통해 감독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사운드와 영상미가 가정용 OTT 환경에서 제대로 어필되지 않은 느낌이다. COVID-19 이후 영화계에도 뉴노멀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디지털 개봉은 필수이며, 관객들이 영화를 만나는 가장 중요한 윈도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창작자들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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