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속먼지 Sep 04. 2020

설날을 시댁에서 보냈으니, 추석은 친정에서 보내겠습니다

대답 없는 너에게

나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지만, 또 한 편으로는 머리 속에서 지나가는 수 많은 생각 중 옳다고 생각하는 말은 꼭 해야겠는 사람이고 이런 나의 버릇은 직장 생활에서도 '거론'되기도 하였다. 첫 직장에서도 너무 좋은 선배들을 만난 덕분에, 대부분 나의 정의로움에 기반한 한 마디씩 해야하는 성향을 받아들여 주었고, 사실 쟤가 틀린 말 하는 건 아니잖아- 라는 식으로 이해를 해주었다. 하지만 역시 보고도 넘어갈 일, 안해도 될 말을 하는 누군가는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긴 하니 걔는 도대체 왜그러냐 - 선배에게 이렇게 말을 해도 되는 것이냐 - 등의 거론이 되고 있으니 주의는 하라는 당부도 전해 듣긴 하였다.

내가 했던 말들 중 혼난 말들

- 원하시는 방향이 있으면 그걸 미리 말씀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것에 기반해서 업무 진행하면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 불안하셔서 전부 다 야근하도록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회사 전체 회식 끝나고 주니어들까지 다 들어오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이 뭐 결혼한다고 어디 가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시댁에 가서도 내가 할 말은 하는 편이다. 이전 글들에서 내가 꼭 참았다고 하는 말은 사실 어른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이고, 운 좋게 조금 더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해서는 안될 말이니 하지 않았던 것이지 (그래. 그정도는 안다..) 사실 나는 할 말은 하는 며느리다. 화가나면 시어머니에게 "이런 말 사위에게도 하느냐"고 하여, 아니뗀 굴뚝에 갑자기 사위가 시댁의 모든 제사에 초청받게 되기도 하였다.


그런 내가, 당연히 명절을 얌전히 다녀올 리는 없는데, 결혼하고 첫 명절을 시댁으로 갔으니 다음 명절은 우리 집을 먼저 다녀오겠다고 했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이구나. 그러니 뭘 어쩌겠나 안오겠다는 나를 멱살 끌고 오게 할 수도 없고 시어머님은 그냥 받아들이셨다. 우리집에 가서 놀다가 오후에 시댁으로 건너가니 시댁에 모였던 작은 집은 이미 갔다고 한다. 시댁의 작은 집은 개신교여서 어렸을 때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싶어하거나, 제사 상에 오른 음식을 먹지 않으려하는 것으로 할머니와 시어른들과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12시 땡!하고 차례가 끝나면 항상 칼 귀가. 오후에 집에 가보니 남편의 누나(형님)네는 곧 오신다고 하고, 어머님은 나를 구석으로 불러 "할머니에게는 친정 다녀왔다고 하지 말고 그냥 일했다고 하면 안되겠니?" 하신다. 나는 "글쎄요. 거짓말하기는 싫어서요." 하고 말았고. 할머니는 나에게 어디 다녀왔냐고 묻지는 않았고.


그렇게 첫 명절 2차례를 보내고 나니, 그 다음번 명절에 내가 우리집을 가야할 차례가 되었을때 시댁은 설날을 구정이 아니라 신정을 지내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차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추석에 친정에 다녀와야할 때는 추석 명절을 그 전주 토요일로 앞당겨 하시겠다고 하셨다. 역시 나와 남편이 차례에 빠지지 않도록. 차례를 결국 두 번 다 챙겨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 작은 집에 죽어도 차례는 못없앤다고 30년간 싸워오셨다는 시댁이 맹랑한 며느리 하나에 변화를 했다는 것이 나름의 배려이기도 하고, 명절을 통째로 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어느 해 어머님이 전화가 오셨다. 계속 그렇게 명절을 앞당겨서 지내야겠니? 할머니가 정말 너무너무 싫어하시거든. 근데 할머니가 자매가 여섯이셔. 그런데 그 할머니들끼리 또 정말 자주 모이시거든. 그 할머니들끼리 모이면 누구 자식이 어떻고, 누구 며느리가 어떻고 미주알 고주알 서로 흉보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곳에 가서 자기 욕을 얼마나 하겠니. 나는 누가 그렇게 내 뒤에서 나를 욕하고 할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어. 죽는 것 보다 싫어. 


이때 이미 우리집은 명절 당일에 굳이 오지 마라, 편하게 집에서 쉬어라- 하고 있던 찰나라 우리는 명절을 온전히 쉬고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의 편안함에 감사한 마음도 있던 터라 나는 (왜그랬어!) 좋은 마음에 "어머님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시면 그냥 당일에 갈게요." 라고 양보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신경 안쓰니까 그냥 안가도 돼. 어머님은 이렇게나 싫으시다는데. 연세 60세가 되셔서 죽기보다 싫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그냥 좀 가주지 뭐. 그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몇 번의 명절을 매번 당일에 갔다. 그리고 우리 집은 나 편하게 오지 말라고 했으니 안가고. 그러니 시댁에서 급하게 나올 필요 없이 아침에 갔다가 오후 4-5시에 집에 돌아오면서. 그렇게 몇 번 안되는 명절 당일의 행사를 보내면서도 참 여러 말들을 들었다. 


- 우리 집에 온 시할머니에게 시어머니 왈, "애들이 점점 짐도 많아지고 할거라, 좀 큰 평수로 해줬어요"

1초만의 마음 속 생각으로 어라,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도 집 부담해주신 것 모르나? 어라, 어머님이 역시 자존심이 있어서 항상 이렇게 혼자서 아들네 집 해주신것처럼 얘기하시는건가. 어라, 여기 30평대인데 왜 큰 평수라고 하는거지...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뭔가를 반응할 타이밍을 놓침


- 시할머니 왈, 이제 남녀가 평등한 시대니 너희 집에도 집 해달라고 해

나의 답: (당시 시간 설날 당일 오후 3시) ㅏ하 그럼 제가 왜 명절 당일에 여기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머님 답: (멋쩍게 웃으며) 이제 차례 끝났으니 너희 집 가라니까.


- 이제 시어머니 고생하지 않게 밖에서 외식하며 가족들 얼굴 보자고 내가 추진하여 외식 장소에서 만난 아버님이 메뉴판을 열어보며 왈, "오늘은 만나자고 한 우리 며느님이 사는건가?"

나의 답: 네 정 원하시면 저희 아빠 카드로 사드릴게요~ 하하~

형님 답: 어우 완전 민폐야 진짜~ 내가 살거야~

(사실 나에게 아빠카드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우리 부모님은 절대 저런 말 안하는데 시댁은 만날때 마다 밥 한끼 대접받는 것이 그렇게 좋은지 꼭 저런 말을 하시길래 그냥 한 번 말해봤다.)




여하튼 그렇게 몇 번의 명절을 보내고 나서, 이번에 우리는 이사를 하게 되었고 역시나 우리 부모님은 지원을 해주셨다. 그러고 나니, 나는 이제 얼마 안남았을 9월 명절을 달력에서 보니 갑자기 화가 나더라. 우리 부모님은 항상 시댁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시는데 왜 당연하게 명절을 시댁에 먼저 가야해? 내가 친정을 먼저 가겠다고 하면 그건 왜 투쟁이 되어야해? 그게 왜 당연한 것이 될 수 없어? 


경제적인 지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무엇보다 튼튼한 우리의 지원자라는 생각이 우리에게는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 무엇을 해도 항상 최선인 것을 선택하라고 하고, 가장 스트레스 받지 않는 생활을 하라는 그 한마디의 정서적 지원과 버팀목 역할이 우리에게는 참 큰 힘이다. 


그런 우리 부모님을 시댁어른들 모시는 것처럼 모시는 것이 유난스러워야하지? 나도 내 자식을 우리 부모님처럼 키우는데, 내 아이가 딸이라면?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처럼 아무리 곱게, 일평생 성차별 당하지 않고 키웠는데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히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 시어머니가 "죽고싶은" 일이 된다면?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그렇게 물려지는 것이 맞는 걸까? 


임신을 준비하고, 정말 딸을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더욱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만큼 불공평함이 당연한 사회에, 그걸 받아들이는 나 자신에,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따르지 않는 나를 유별나다고 생각하여 전화로 "죽고싶다고"까지 얘기하는 시댁에 너무 화가 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9월의 명절을 아예 가지 않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드니, 남편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말했고 남편은 최근에 시댁과의 갈등이 없었는데 내가 갑자기 이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해서 알겠다고 하면서도 장난스럽게 "또 쉐도우 복싱을 시작했네" 라고 하고 컴퓨터를 했다. 남편이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딱히 의미를 두지 않고 넘어갔으나 나는 이번에는 너무 화가나서 왜 그런 단어를 선택하느냐. 시댁과 있었던 일들이 없었던 일도 아닌데 내가 지어내기라도 했다는거냐. 명확히 잘못한 사람이 있는데 왜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잇따른 다툼. 


다음날 아침에도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았고 남편은 그런 단어 선택을 하여 미안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있다. 또 5년 뒤에 이런 일이 있으면 남편은 나를 "쉐도우 복싱"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걸로 문제 제기하는 나를 시댁과 세상은 유별나다고 얘기할 것이고. 그럼에도 세상은 조금씩 변해서 어쩌면 내가 낳을 자식들이 성인이 될 즈음엔 세상이 변해있을 수도 있고, 뭐 그렇지 못해서 우리 엄마나 나처럼 비슷하게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을. 10년을 채식할때도 사람들이 말했지만 나 하나의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것을. 내가 고기를 먹든, 시댁을 가지 않고 친정을 가든, 세상이 뭐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임도 안다. 그냥 나만 피곤하게 사는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나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시어머니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다름 아니고 명절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항상 저희 집에서도 많이 도와주시니 자식된 도리도 공평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지난 명절에 시댁에 가서 종일 보낸만큼 이번 명절에 저희 집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균형잡히게 지내고 싶구요. 시댁과 함께 하는 명절 당일은 설에만 함께 하는 것으로 할게요.

그리고 첨언. 

또 첨언.

부연 설명..


보낸 시각 오후 12시 19분.

현재 시각 오후 2시 13분.


어머님 답장 없으심. 카톡 확인 하심. 나 떨리심.


절교 하자고 한 건 아닌데.. 

절교 하자는 말로 받아들이진 않겠지?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초등학교 우정편지 주고받던것 같다. 답장이 언젠가 오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