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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현 Jun 11. 2022

아이 키우기의 근본은 물이다

남편의 육아일기

“물에 밥을 말까, 아님 밥에 물을 부어 먹을까? 혹은


밥을 물에 적셔 먹을까?”


“그게 같은 거 아니야?”


“이를테면 은수는 욕조안에 들어가서 몸을 담그는 게


좋아, 아니면 욕조 밖에서 샤워기로 뿌려주는 게 좋아?”


“샤워기로. 머리는 안 감을래,”


“그런 거랑 비슷(?)해, 뭐가 더 좋아?”


“적셔 먹는 거!”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근본이 되는 물질은 단연코 물이다. 마시고 뱉어내고 씻고 말리고, 눈에 보이기도 보이지 않기도 그렇게 동그라미 그려가며 우릴 맴돈다. 우리가 아닌 나 혼자 있을 때도 물과 함께다. 좀 과하게 말해서 아내보다 더 내 곁에서 나를 만지는 것일 게다.



시우는 은수보다 물을 더 좋아한다. 받아놓은 물속에 기어들어가 물장구도 치고 물과 이야기(?)도 한다. 아이들을 욕조에 넣어두고 설거지를 할라치면 어느샌가 은수가 소리친다. “아빠, 시우가 물을 자꾸 먹어요!” 어쩌겠는가, 보이는 게 더러운 물도 깨끗한 물도 아닌 그냥 물인 것을. 그제 오후부터는 몇몇 아이들이 물총을 가지고 놀이터에 등장했다. 나는 서둘러 아내에게 새 물총을 구비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런 건 아빠가 골라야 하는데 재미보다 가성비를 생각해야 하는 나머지. 또한 아이들이 사용하는 장난감은 금방 부서지고 고장이 나는 이유에서 기도 하다. 곧 놀이터에 분수대도 개장을 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그건 안될지도 모르겠지만.



나 또한 물을 좋아한다. 내 몸에 들어오는 물, 무언가를 씻을 때, 씻길 때 내려가는 물, 내 밖으로 나오는 물, 내가 담겨있는 물. 그리고, 바라보는 물. 엊그제 여행을 다녀온 터라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종일 흘러내리는 물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이들은 아직 바라보는 물 따위엔 관심도 주지 않을 테지만, 언제고 같이 바라볼 물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그것이 처음엔 두려움이고 점차 익숙함으로 바뀌고 즐거움에서 평안함까지 가게 되는 과정을 나와 함께 한다면 좋겠다. 덧붙여 내가 물을 만지는 게 아니라 물이 나를 만져주는 것을 알아차릴 때라면, 술이라도 주고받겠지. 하며



비눗방울액을 사러 가야 한다. 그 역시 물이다. 방울이 되어 날아가는 물, 요새 비누로는 방울을 만들 수 없어서 천 원 한 장으로 즐거움을 사야 한단다. 뛰어놀며 물을 허비하다 물에 뛰어들어 물을 만지고 또 마시고. 저녁에는 딱딱해진 물과 밥을 섞어 그 위에 뜨거운 생선살을 올려 먹겠다 다짐해본다. 그건 은수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물이다. 당분간은 이런 물과의 사랑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테니 그럴 때마다 감사히 인사하고 버리는 일 없이. 하긴 내가 술을 버린 적 있던가. 술이 나를 버린 적은 있어도. 에어컨을 틀어놨더니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이야기의 근본은 물이다, 현재 내 일상의 전부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우리를 한 데 묶어둔. 자, 커피를 타볼까.



#2년전오늘씌어졌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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