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 대하여
가끔씩 아끼는 물건들을 책상 위에 쭈욱 나열해 놓고 바라보고 있자면, 물건에 담긴 추억들 혹은 물건으로부터 보여지는 나의 흔적을 문득 느끼게 된다 (특히 물건이 더러운 상태일 때 더욱 잘 느꺼진다). 물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의 바쁜 시간들을 함께 하기도 하고, 사라져버려서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그렇게 다 쓰이게 되면 버려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버리고 똑같은 물건을 다시 사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더이상 그 물건을 팔지 않아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열정적으로 인터넷을 뒤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물건들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지는 않는다 (고가의 제품을 구매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때로는, 물건이 주변의 사람들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도 말이다.
한참 사람들의 경험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때로 물건에 대한 고찰이 매우 필요할 때가 있다. 요즈음이 그 때인듯 하다. '오브젝트'라고 표현하면 무언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이 생각나기도 하고, 미술에서의 '오브제'인듯 싶기도 한데, 가장 쉬운 개념은 그냥 '물건'이 아닌가 싶다. 거창하게 포장할 것 없이, 단순한 '물건' 말이다. 글씨를 쓴다는 명목으로 잡게되는 만년필은 그저 그립감이 좋은 물건일 뿐이고, 음악을 듣기 위해 귀에 꽂는 이어폰은 음악이 나오는 물건일 뿐이다.
잠시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폰도 그저 물건일 뿐이고, 하루종일 바라보고 있는 사무실의 모니터도 그저 물건일 뿐이다. 전기 회로가 들어가 있든 아니든, 그 물건이 우리에게 주는 경험은 바라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의 감정에 변화를 주고, 필요함을 해결해주며, 무엇보다도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욕망의 대상이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눈을 깜박여서 물체를 완전히 인지하는 그 순간, 0.1초면 충분하니 말이다. 심지어 그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원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은 우연히 프리마켓을 들르게 되면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을 내려다 보면, 물건들이 작아서 무엇인지 잘 보이지도 않는데 하나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물론 공감을 못 할 수도 있다).
별 것 아닌 물건에서부터 대단히 비싼 물건까지, '객체' 혹은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이 이 매거진의 화제가 될 수 있다. 처음부터 '슬로우 테크놀로지'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먼저 오브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어떤 이상한 의무감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려운 개념이나 현학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보단, 그저 일상적인 관찰과 고민들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 혹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싫어하는 물건에 대해 공감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볼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