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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Dec 19. 2023

멍 때리기 아닙니다

12살 고양이는 지금 DMN 가동 중!


우리 집 첫째 고양이 모찌는 외동묘로 살다가 7살에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다. 친구가 혼자 살 때 기르다 남편 될 사람의 알레르기 때문에 결혼하면서 친정에 맡겨졌던 녀석.

친구의 친정 부모님께서 여행을 자주 다니셔서 이집 저집 맡겨진 적이 많았다는 녀석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울면서 옷장 속에 꽁꽁 숨어 지냈다. 또 어딘가에 맡겨지는 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모찌의 찹쌀떡 모드 1, 2단계

모찌가 우리 집에서 완전히 배를 까고 드러누울 수 있을 만큼 경계심을 푸는 데까지, 한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5년이 지난 지금은 푹 퍼진 찹쌀떡처럼 바닥에 녹아있는 날이 많다. 고양이는 바닥과 순간 일체가 되는 마법을 부릴 줄 안다.



이제 12살이 된 묘르신 모찌는 4살인 둘째 고양이가 같이 놀고 싶어 가까이만 가도 하악거리고, 앞발 펀치를 날리기 일쑤다. 그럴 때면 순둥이 둘째는 거의 반격하는 일 없이 껌뻑껌뻑, 딴청을 피우곤 한다.

싫어하는 척해도, 둘째 카이가 안 보이면 어느덧 두리번두리번, 어디에 있나 찾고 있는 모찌.



천성이 예민한 모찌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활동은 다름 아닌 멍 때리기이다. 어떤 때는 미동도 없이 벽을 보고 있기도 하고, 가만히 누워 얼음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순식간에 몸을 뒤집거나 토끼처럼 껑충 뛰어 다른 곳으로 사라진다.

본디 행동이 느린 녀석이 아니라 때에 따라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재빠르게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었던 성장기를 보내며 터득한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일지도 모르겠다. 8형제 사이에서 복작복작하게 자란 둘째 녀석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행동이니 말이다.


사람의 경우에도, 쉬면서 아무런 인지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가 있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 DMN이 가동되면 뇌를 초기화 시키고 창의성과 특정 수행능력을 향상시킨다고.


'잠시 멈춤'으로 DMN을 활성화하면,
오히려 더 빠르게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고양이 나이 12살은 사람 나이로 치면 64살에 해당한다. 묘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는 녀석이 깨우친 이 멍때리기, '짧은 멈춤'이 어쩌면 인간 집사의 뒤엉킨 생각들을 풀어낼 묘수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양조합니다.

마인드 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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