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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Apr 19. 2024

[E] 한밤중에 온 '미등록 친구'의 부고 문자

그에게 내 번호가 있었나보다

나는 이름, 거주지를 봐도 도통 누군지 모르겠다

아마 일을 하면서 명함을 나눈 사이같다


낯선 분이지만 부고를 들으니 마음이 쓰인다

가만 읽어보니 몇 구절이 가슴에 돌을 올려놓는다


1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접하고 한 걸음에 달려와 따뜻한 위로와 조의를 표해주심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겠냐만은 고인에게는 더 갑작스러웠나보다

그 소식에 따뜻한 분들이 발빠르게 달려가 위로를 해주셨나보다

지난 달, 작은 고모가 돌아가셨다

스무살에 서울살이를 시작하고부터 결혼 전까지 작은 고모를 '서울 엄마'로 의지하고 살았다

불면증에 시달릴 때 고모가 해주신 소불고기와 소고기무국을 먹고 돌아오면 따뜻한 배를 안고 깊이 잘 수 있었다

늘 직접 만든 음식과 용돈으로 나를 위로해주신 당신은 우리의 위로도 받지 않고 조용히 가셨다

아빠와 고모는 오촌이지만 형제처럼 애뜻했는데 서로의 건강과 처지가 여의치 않다며 부고도 전하지 않으셨다

늦게서야 친척형에게 연락해 위로하고 납골당이라도 찾아뵙겠다고 전했지만

아직도 작은고모에게 위로를 전하지 못하고 있다


2 '신**, oo 배상'


고인의 성과 같은 이름 둘이 적혔다. 자식이겠지

고인의 누나가 대신 부고를 전하는 걸 보면 자녀들이 아직 어린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내가 누운 자리가 심해처럼 검고 무거워진다

유독 겁이 많은 내 딸이 지난 주말 "아빠 오래 봐야하니까 술 줄여!"라고 말했다.

밖에서도 잘 안 먹고 집에서 한두 잔 하는 수준이라 억울했지만 딸의 목소리가 떨리고 습윤해 반박할 수 없었다

고인의 아이들도 아빠에게 오래오래 행복하자, 아빠 건강해, 내가 나중에 아빠에게 잘 해줄게... 이런 말을 했겠지

아이들은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을까

아빠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급하게 이별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시간이 있었을까

이별은 모두 슬프지만 갑작스런 이별은 

대상에게 먼저 황망함과 놀라움을 발에 매달아 놀라운 속도로 침잠시킨다

이후 일상의 수면으로 올라오는 시간은 더 처절하다

하강하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슬픔을 발에 매달고

하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허우적대며 수면으로 올라와야 한다


3 "겨우 노트북 비밀번호를 알게 되어"


개인정보와 보안이 생명인 시대라 '개인'이 부재할 때의 불편함이 여기에도 있구나

누나께서는 고인이 핸드폰 비밀번호를 풀고자 애플, 경찰, 온라인 등등 온갖 곳에 수소문했을 터이다

경황 없는 와중에 노트북으로 해결하셨다니 얼마나 안심이 되셨을까

2년 전 친구가 암으로 죽었다

그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카톡을 지우지 않았었다

친구도 병상에서 힘겹게 보냈기 때문에 내 마지막 톡 3개는 읽지 못했다

제수씨는 친구 폰을 계속 살려둔 것 같다

그렇게나마 우리가 친구를 가끔 찾아보게 해줘서 고맙다

지난 주말 딸이 내 폰을 화장실에서 떨어뜨려 많이 망가졌다

월요일에 새 폰을 사서 예전 폰의 모든 걸 옮겼다

배경화면까지 똑같이 셋팅이 되니 큰 돈 썼는데도 별로 새 폰의 즐거움을 누리기 어려웠다

카톡도 모두 옮겼다

아니 옮겼다고 생각했는데 오랜 시간 대화가 없던 방은 사라지나보다

친구가 사라졌다


4 "나중에라도 어려움 또는 기쁜 일 있으시면 010-**** (누나 신00)으로 꼭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톡을 연달아 세 번 읽었다

처음엔 누구인가 싶어서

두번 째는 내용이 안 쓰러워서

세번 째는 가득한 진심이 단단하게 쌓인 작문이라서


부고에 의례 붙는 인사치레일 수도 있지만 누나분의 글을 보고

고인은 누나가 있기에 아이들을 맡기고 편안히 가실 수 있었겠다 싶다

어제 제주에도 비가 왔겠지?

오늘 제주는 서울처럼 맑은 하늘일까?

고인의 새로운 첫 날은 맑은 세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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