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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Oct 28. 2024

#30 (프리퀄)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나요2

110개 계단을 다 오르면 숨이 까딱까딱 넘어갈 것 같다고 해서

그 길은 '까딱계단'이라 불렸다

까딱계단의 끝에는 작은 개척교회가 있었고

넓고 맨들맨들한 벽은 기대앉기 좋았다

그 벽에 기대어 차오르는 숨을 길게 내뱉고

빈 폐에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켰다

갈기갈기 찢어진 폐포에 탄산들이 난동을 부리는 그 느낌이 좋았다

아직 살아있다고 더 뛰어야 한다는 울림같았다


그날은 하루종일 뛰어다닌 날이었다

평화시장부터 청평화시장까지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뿌렸다

그날따라 사복경찰이 많이 깔려있어 수시로 동맹상가로 숨어들어가야 했다

길음동에 오니 해가 저물었다

배가 고팠지만 주머니에 돈은 없었다

길음시장 우물에서 물로 배를 채우고 까딱계단을 밟았다

그날의 담배는 더 짜릿했다

먹은 게 없어서인지 담배가 맛있어서 한 대 더 물었다

불을 붙일 찰나에 어디선가 사납게 미닫이 문이 열리더니

빛이 흘러 내 발치까지 닿았다

단발머리에 커다란 네모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날 내려보더니 턱짓을 하고 다시 들어갔다

그녀의 턱이 향한 방향을 따라가니 내 머리 뒤 벽에 글자가 있었다

"담배는 사탄, 흡연은 지옥의 지름길"

섬뜩한 문구였다. 담배를 도로 갑에 넣고 길을 나서다 다시 벽을 봤다

글은 무자비했지만 글을 쓴 이의 패기는 귀여웠다

답장을 해야했다


"내일부터 금연으로 극락왕생!"


그렇다고 금연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면 그 후 까딱계단을 올라서면 담배부터 꺼내지 않고 낙서부터 봤다

낮에 보니 그곳은 마을의 게시판이었다

친구의 짝사랑을 까발리는 아이

때아닌 고추 크기 논쟁

세탁소의 불친절을 고발하는 낙서

몇 해 전 죽은 대통령의 선거 벽보

노상방뇨를 저주하는 글도 빠지지 않았다


그곳에 사탄과 부처의 배틀이 단칸방마냥 자리를 틀었다

그녀의 답은 없었지만 나는 그 단칸방에 가끔 글을 적었다

공장에 돌리던 전단지에 있는 선전문구부터

까딱계단을 올라야 하는 고단한 삶,

내가 선반을 돌릴 때 펜대를 돌리는 또래의 느슨한 하루를 질투하기도 했다


"내 담배 연기를 욕하지 마라

폐에 남은 최루탄 가스가 폐병처럼 토악질을 올린다

캠퍼스의 담배연기는 하얗지만

평화시장 노동자의 담배연기는 까맣다

쉬지 않는 미싱,

멈추지 않는 선반 톱니바퀴가

너희 발목에서 나래춤을 추는 나팔바지를 만들고

너희 하얀 손에 튕겨지는 기타줄을 만든다"


다시 그 글을 봤을 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무안했다

지워버릴까 생각했지만 지우는 게 더 바보 같았다

부끄러워서 며칠간 그 벽을 눈감고 지나갔다

다시 그 낙서 앞에서 섰을 때 나는 벽을 마주보고 한참 울었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난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박노해, <그리움>



당장 그녀를 찾아 구애했다

우리는 비슷하게 가난했고 비슷하게 서로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그저 그 낙서처럼 서로에게 위로가 되길 희망했다

내가 일하고 돌아오면 그녀는 까딱계단 위에서 나를 기다렸다

내 자취방에서 라면이나 전 한 장 부쳐 먹어도 우리는 배불렀다

불기 없는 맨바닥에 몸을 뉘어도 서로를 따뜻이 품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린 가난한 만큼 가난을 싫어했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녀를 붙잡고

반병의 소주와 한 마리의 노가리를 놓고

공장에서 기장이 되면 살림은 나아질 거라 다짐했다

가난한 걸 알고 만났으면서도 투정부려 미안하다며 그녀는 울었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걸 알면서도 너를 붙잡는 나도 울었다


그녀는 어느날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엄마 식당에 자주 오는 어른인데 시인이라고 했다

시장이 파할 무렵 그녀는 엄마를 이끌어 내일 장사할 장을 보러 가겠다며

시인과 나만 두고 식당을 나갔다

시인은 그녀에게 대강 내 얘기를 들었다며 술을 따라주셨다

"공장 일이 쉽지 않다

변혁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둘 다 하려는 자네가 대견하다"


<어르신, 공장일, 운동보다 더 어려운 것때문에 힘듭니다. 그녀를 사랑하는데 제가 지명수배가 돼서 결혼을 못 합니다. 아니 가난하기 때문에 결혼하자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녀도 자네를 사랑하지 않는가?

백석 선생이 이런 시를 썼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쟈'"


선한 눈매에 웃는 인상인 시인은 잔에 든 술을 비웠다


"'지상의 모든 상처가 쌓이는 눈 속에 있다

풀과 나무가, 새와 짐승이 살아가며 만드는

아픈 상처가 눈 속에 있다

우리가 주고받은 맹세와 다짐이 눈 속에 있다

한숨과 눈물이 상처가 되어 눈 속에 있다'


이건 내가 쓴 시인데

시간은 결국 흐르고 오늘의 아픔은 흘러가잖아

자네가 저 아이와 사랑하는 그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결국 너희에게 가난은 아무 것도 아닐 게야

결혼하게. 내가 주례 서겠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시작된 개척교회의 지하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은 그녀의 부모님과 시장 이웃, 내 운동 동지 몇해서 10명도 안 됐다

주례는 시인선생님께서 봐주셨다

간소한 식처럼 선생님께서는 짧게 주례말씀을 하시고

우리를 위한 시라며 낭송하셨다



<너희 사랑>

              -누이를 위하여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병의 소주와 한 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 번이었지만

뉘우치고 다짐하기 또 여러 밤이었지만

망설임과 헤매임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새 삶 찾아 나서는

다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깊어졌다

돌팔매와 최루탄에 찬 마룻바닥과

푸른 옷에 비틀대기도 했으나

소주집과 생맥주집을 오가며

다시 너희 사랑은 다져졌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 사랑은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낙서처럼 눈에 익은 너희 사랑은

단비가 되어 산동네를 적시는구나

훈풍이 되어 산동네를 누비는구나

골목길 오가며 싹튼 너희 사랑은

새 삶 찾아 나서는 다짐 속에서

깊어지고 다져진 너희 사랑은




어두운 지하에서 간단히 치러진 식이었지만 많은 축하를 받았다

우린 어머님의 식당에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누구보다 기분이 좋으셨던 시인 선생님은 금세 얼큰히 취하셔서 우리를 부둥켜 안고 축하하셨다

그리곤 오늘 술을 많이 먹으면 이 좋은 기분을 까먹겠다며 집으로 향하셨다

나중에 선생님의 새 시집이 나왔을 때 급히 피로연장을 빠져나간 이유를 알게 됐다

선생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날 집에 곧장 가서 시를 쓰셨다고 했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탱크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해서 그리움을 버리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결혼 후 우린 까딱계단보다 낮은 동네에 신혼집을 차렸다

신혼 단꿈에 빠질 여유도 없이

밤낮 없이 위협하던 호각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냉골같은 신혼집에 새댁만 남겨두고 나는 감옥에 갇혔다

신랑을 감옥에 보내야했던 스물 다섯 새색시는

차가운 가난과 매서운 눈길을

미싱바늘처럼 단단하고 강인한 의지로 버텨냈다


감옥을 나오니

서울에 봄이 오고

올림픽도 열리고

민주정권도 들어서고

미싱도 돌아가고

시인도 시를 쓰는 시대였다


시인의 말씀처럼

계절은 돌아오고

상처와 가난을 덮을 눈은 내리니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내리는 눈을 맞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삶이 편해졌다

바다가 있는 인천에 자리를 잡고 작은 가게를 열었다

시인 선생님께 내가 만든 안주로 술 올릴 처지가 됐다

그렇게 가끔 선생님과 술을 주고받으며 늙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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