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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Oct 28. 2024

[E] 아버지를 너무너무 미워했었어요

죽도록 미워했어요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어요     


아버지는 평생 술로 저희를 힘들게 했어요

엄마를 제일 괴롭혔죠

우리 형제는 엄마를 무척 사랑하기에 아빠가 더 미웠어요   

  

아빠는 지난 20여년 동안 열두 번이나 알코올전문병원에 입원했었어요

아마 그 병원의 가장 큰 단골일 거예요

15년 전인가,

비 오는 날 아침부터 취해있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차에 태워 가는데 내게 엄청 욕을 하시더라구요

“호로새끼!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 나를 죽일려고 하네!”

뒷자리에서 내 자리를 발로 차면서 욕했어요

내 안에서 분노가 일었어요

도로 옆이 천길 낭떠러지였는데 뛰어내려 버리고 싶었어요

절벽을 향해 차를 몰다가 벼랑끝에서 멈췄어요

아버지가 탄 조수석을 열고 분노와 저주를 퍼부었어요

"왜 안 죽어! 아빠만 죽으면 엄마도 우리도 행복한데 왜 안 죽어! 

그냥 죽어버려!"

이런 말들이었을 거예요

너무 화가 나 들고 있던 우산으로 아버지를 칠뻔 했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애먼 차 바퀴를 우산대가 부러질 정도로 내려쳤어요          



지난 8월에 병원에 계시던 아버지를 퇴원시켰어요

봄에 다친 허리도 아프고 틀니가 틀어져 치과 가서 고쳐야 한다더라구요

아버지는 집에 오시자마자 집 앞 텃밭으로 갔어요

서너 개월간 못 돌본 고추와 콩 등이 궁금했나봐요

밭일을 마치고는 저를 불러 밭고랑 끝으로 가시더라고요

작년 장마에 축대가 무너졌는데 그걸 봄에 다시 쌓으셨대요

동네에 버려진 슬레이트를 깨서 성처럼 쌓으셨더라고요

이걸 쌓다가 넘어져서 허리를 다치셨대요

그래서 일년 반이나 참은 술을 다시 마셨대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었대요

아파서 먹은 술이나 다시 끊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제 술 드시지 말고 재미나게 살자 약속하고 올라왔어요     


추석에는 아빠와 여수로 놀러 갔어요

여행간다고 쓴 네이비 중절모가 아주 멋드러졌었죠

게장과 장어탕을 먹고 돌아왔어요     


10월이 되자

아버지는 밤과 감을 따서 보내주셨어요

또 고구마를 캐서 보내시더라고요

"아빠 너무 많아. 두고 두 분이서 드세요."

아빠는 다음달에 내려와서 더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10월 7일

아버지가 여순사건 유족으로 인정 받았어요

근 4년의 준비였어요

엄마와 동생, 제가 수차례 서류를 준비했어요

제 할아버지는 빨치산의 심부름꾼으로 잡혀갔다가

마을에 음식 가지러 내려왔을 때 경찰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할머니와 네 살 고모도 아빠 찾으러 가시다 국군 총에 맞아 돌아가셨죠

아버지는 7살 때 부모님을 여의셨어요

20살 때 아버지에게 총알을 발사한 경찰이 이웃 마을 아저씨란 걸 아셨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그 후부터 60년의 한이었어요

드디어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으로 인정 받았는데 열흘만에 세상을 떠나시네요. 할 일을 다하셨다 생각하셨나봐요     


십여년 동안 저는 아버지를 아주 미워했어요

죽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죠

아버지가 10월 18일에 돌아가셨어요

술 때문도 이니고 밭일 하러 가시다 낙상했는데 운 나쁘게도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예기치 못한 운명이었죠

아무런 준비가 안 됐었어요

이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려도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전 예전부터

언제든 아빠가 돌아가셔도 담담할 거라 생각했어요

형제에게들도 확언했죠

"난 아빠가 돌아가셔도 안 울것 같아."

잘 참았어요

아빠 영정사진을 봐도

엄마가 우는 걸 봐도

먼길 오신 손님을 맞아도

눈물을 참을 수 있었어요     


입관하는데 아빠 얼굴과 머리에 상처가 있더라고요

'저거구나.

저걸로 아빠가 돌아가셨구나.'

"상주님, 고인을 잡아주세요"라는데

제가 잡은 아빠 머리의 수의에 혈흔이 있어요

엄지손가락으로 비벼도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내 모진 말들도 이렇게 남았을까?'

그제서야 눈물이 났어요     


운명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어요

눈물은 사람을 연하게 만들어요     


작년에 큰아버지 돌아가실 때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셨었어요

“나도 금요일에 죽을란다. 주말에 상을 치르니까 손님이 이렇게 많이 오네. 나 가는 날도 북적북적했으면 좋겠다.”     

10월 18일 금요일에 아버지는 비로소 편안히 영면하셨습니다


(이번 겨울나려고 퇴원 후 날마다 아빠가 해놓은 장작들. 엄마는 따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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