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너무 두근거려.
넌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 않니?
엄마는 널 낳고 처음 볼 때보다 더 떨려."
무대에 오를 순간을 코앞에 놓고 발을 동동 구르는 내 모습이 재밌는지 딸은 웃기만 했다
스텝이 우리를 불렀다
무대 계단을 오르는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딸이 먼저 오르고
나는 딸의 등 뒤에 숨어서 따라갔다
딸이 마이크 앞에 섰다
딸이 위치를 잡은 후
나는 딸의 뒤에서
딸의 허리를 잡고
무릎 꿇었다
우리는 노래를 시작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
<꿈꾸지 않으면>, 양희창
우리의 노래는 끝났다
아니 딸의 노래는 끝났다
딸은 틀리지 않고 준비한대로 노래를 마쳤다
음정, 박자, 감정표현?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가수를 꿈꾸는 딸은 인생 첫 무대를 완벽히 소화했다
나의 노래도 끝났다
나도 가사를 틀리지 않고 마쳤다
딸보다 반박자 빠르게 노래했다
내 노래는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완수했다
딸이 무사히 노래할 수 있도록
나는 딸 등에 머리를 대고 노래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노래했다
그렇게 우리 딸은 아주 잘 살아냈다
무대에 내려와 나는 딸을 안아올렸다
우리가 해냈다!
"널 낳고 처음 안았을 때보다 더 행복해!"
-엄마, 고마워요!
딸을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딸은 이 좋은 날 엄마가 왜 우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게다
돌이 지났는데도 일어서지 못하는 딸을,
병원 검사에서 장애 판정을 받은 날을,
고쳐보려고 대학병원, 한의원, 무당까지 찾아헤매던 나를,
딸이 지금 어찌 알겠어
몰라도 좋다
너는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만 알면 된단다
5년이 지났다
나는 5년째 같은 날, 같은 무대에 오른다
내가 아직 다리가 아픈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 사이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보조기 없이 설 수 있다
그리고 키도 컸다
이제는 엄마가 무릎 꿇지 않아도 된다
엄마보다 내가 더 크다
그래도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의 노래가 필요하다
이제는 내가 긴장한다
5년 전 엄마만큼 내 심장이 뛴다
그래서 엄마가 내 뒤에서 나를 안고
반 박자 빠르게 노래해주면
나는 엄마 뱃속에 있듯 편안해진다
나는 노래한다
잊었니 날 잊어버렸니
아직 난 널 기다리잖아
사랑이 또 울고 있잖아
가슴엔 늘 눈물이 고여
지워도 자꾸 지우려해도
그대얼굴이 자꾸 떠오르네요
<잊었니>, 이승철
키가 커지며 더 많은 것을 보게 됐다
발걸음이 편해지며 친구들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살아낸 날들이 많아지며 마음도 넉넉해졌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더 많이 내게 받아들이니
세상이 좋아졌고
사람이 좋아졌고
특별히 더 좋아진 친구도 생겼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니까
노력하면 가질 수 있으니까
사랑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은 어른이었다
어린 아이가 닿으려면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가슴에 눈물이 고였고
사랑에 또 울면서
지우려 해도 자꾸 떠오르는
날 잊어버린 그 친구에게 노래했다
무대를 내려와 엄마를 안고 엉엉 울었다
엄마도 울음을 삼키며 울었다
'실연은 내가 당했는데 엄마는 왜 울어요.'
나를 안은
엄마의 가슴이 따뜻하다
나보다 작은
엄마가 든든하다
나보다 반박자 빠른
엄마가 고맙다
엄마는
날 잊지 않을 테고
사랑으로 웃게 하고
가슴엔 늘 행복을 담아
나랑 함께하는
지울 수 없는 얼굴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이 이야기는 개그맨이자 가수인 이정규 님이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출처 : 이정규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reel/C6WIBIdR5i9/?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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