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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Feb 23. 2024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지인의 갑작스런 장례식에 다녀왔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니까, 그동안 장례식에도 꽤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결혼식엔 안 가도 장례식엔 꼭 가야 한다'던 선배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 어르신들 장례를 치른 경험을 통해 몸소 깨닫기도 했고요. 이제는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처음 장례식장에 조문을 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는데, 장례예절이 뭔지 전혀 몰랐던 때예요. 얼떨결에 혼자 빈소에 들어갔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습니다. 향을 피우다가 혹시 실수할까 겁이 나서(불이 안 붙으면 어쩌나, 불이 너무 활활 붙으면 어쩌나, 등등…), 그나마 쉬워 보이는 국화꽃을 선택했어요. 오산이었습니다. 화병에서 국화꽃을 빼서 제단에 올려두어야 하는데, 무지렁이 같았던 저는 누군가 이미 제단에 올려둔 국화꽃을 다시 화병에 꽂아 버렸습니다. 상주가 달려와서 반대로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셨을 때에는 정말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어요.


장례식장에 가는 것은 언제나 조금 긴장이 되고, 슬퍼하는 지인을 보는 것은 익숙해질 여지없이 마음 무거운 일입니다. 그래도 아끼는 지인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상황이 허락할 때면 언제나 장례식장에 가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지인의 본인상을 다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번에 참석한 장례식장에서는 제가 위로해 줄 사람이 없었어요.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저의 지인은 말이 없고, 저는 상주를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무슨 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아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함께 조문을 간 사람들끼리 잠시 앉았다가 금세 돌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기 때문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죽음이었습니다. 부고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났어요.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무거웠고, 빈소에 가까워질수록 영정사진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가슴이 두근두근 했습니다.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절을 했고,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빈소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저는 곧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남은 우리에게 ‘건강 잘 챙기면서, 있을 때 자주 보고 자주 표현하면서 살자'라는 다짐의 형태로 의미를 남긴다는 것 역시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들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어떤 생각들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어색합니다. 


버킷리스트가 한참 유행일 적에 ‘1년 밖에 못 산다면 뭘 하고 싶은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설정을 그렇게 했어도 사실 그닥 실감이 나진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이 계절이 마지막이야'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결론적으론 이것이 인생 마지막 제철 복숭아니까 잔뜩 먹어두자와 같은 To-do를 작성하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 것을 들었습니다. 유년기를 봄, 청년기를 여름, 중장년기를 가을, 노년기를 겨울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죠. 조금 새로웠던 것은 그 팟캐스트에서는 인생의 계절을 단 한 번씩 거쳐가는 것으로 비유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되돌아오고 인생에서 그 계절의 사이클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고 하는 말에 조금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인생에서 언제나 봄으로 대변되는 ‘시작, 설렘'과 같은 시기가 찾아오고, 생명력이 폭발하는 여름과 그간의 성취를 거둬들이는 가을을 지나, 모든 게 멈춰버리는 것 같은 겨울이 오게 마련이라고요. 각 계절의 길이나 반복되는 횟수는 인생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반드시 봄이 다시 온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인생의 봄과 여름이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너무 쓸쓸해요. 양껏 먹지 못한 딸기와 복숭아에 대한 미련도 남고요. 중년에 남은 일이 봄과 여름에 애써 준비했던 것들을 수확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초라한 기분이 들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노년을 춥고 메마른 겨울로만 본다면 앞으로 남은 삶은 하나도 기대되는 것이 없는걸요. 


(아니, 무엇보다 겨울은 붕어빵과 핫초코의 계절 아닌가요?)


저는 지금 인생의 n번째 초봄 정도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려고요. 작년 한 해동안 하던 일을 관두고 인생의 방향을 잡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시간을 보냈어요. 이제는 긴 겨울을 지나는 동안 꽁꽁 얼어있던 땅을 뒤집어서 곱게 고른 다음 담번에 피워 볼 꽃의 씨앗을 심으려고 합니다. 망할 수도 있을 테지만, 저에게는 n+1번째 봄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면서요. 


몇 번째 계절의 어디쯤에서 제 인생이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n번의 여름동안 매해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복숭아를 처묵챙겨먹고, 언제나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다시 돌아온다고 믿으며 살았다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요. 


여름 햇살 같은 청춘의 모습만을 강조하며 중년의 우리에겐 여름이 다시 없을 것처럼 얘기하는 분위기에 지지 마요. 다가올 여름엔 민트색과 보라색의 강렬한 조합의 등산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볼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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