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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알라 Sep 12. 2018

엊그제 있었던 일

20180912

일하는 시간보다 출퇴근 시간이 가끔 더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있다. 

엊그제가 바로 그랬다. 


오후 6시 15분에 워털루 기차역에 도착했다. 

나는 6시 32분 기차를 타면 '딱' 일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기차 안은 북적였고 "Excuse me"를 남발하며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겨우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왔는데도 출발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비좁은 공간에서도 우리는 각자 최대한 편한 자세들을 취하려고 서로 눈치 봐가며 가방을 내려놓거나 발의 간격을 넓혀가며 우리만의 공간을 확보했다. 기차가 아직 떠나지 않아서 운 좋게도 막판에 올라타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늘어났다. 결국 팔을 움직여서 핸드폰을 꺼내 보는 것이 눈치 보이는 상황까지 왔다.


드디어 문이 닫혔고 빨리 출발하기만을 바랐다. 

나는 이 공간이 굉장히 답답하고 불쾌했다.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쌓이는 게 느껴졌다. 


내리고 싶었다. 


그냥 다짜고짜 나가고 싶다고 얘기하면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내렸다가 올라타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적을 깼다 "어지러워서 그런데 문이 열리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어요?"


문이 안 열리는 게 확인되자마자,

서로 불쾌하게 쳐다보던 예민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동정 어린 눈빛으로 챙겨주기 시작하였다. 


한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유리창 좀 열어달라고 외쳤고, 내 옆에 있던 아가씨는 가방에서 뭘 꺼내더니 물이 담긴 콜라 페트병을 건네며 "물이에요 이것 좀 마셔요"라고 얘기했다. 내 뒤에 있던 사람은 바닥에 앉아도 되니 신경 쓰지 말고 앉으라고 권유했다. 유리창을 열어달라고 외친 아저씨가 결국에는 앉아있던 건장한 청년을 가리키며 "이 아가씨에게 의자 좀 건네 줄래요?"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결국에는 문이 열렸고 나는 도움을 준 이들이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어지럽다고 얘기한 핑곗거리에 이 많은 낯선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분주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보고 아직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고 또한 내 이기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던 불필요한 거짓말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는 또 배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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