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첫 번째 이야기
짧다면 짧은 내 5일 휴가가 시작되었다.
내가 그토록 벼루던 포르투갈이다. 예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곳이기에 가기 훨씬 전부터 설레었지만 며칠 전에 걸린 감기 때문에 모든 게 귀찮았다. 여행 계획마저 바로 전날까지 미뤄뒀다. 9시간 동안 스트레이트로 여행 계획을 짰다. 구글맵 창을 여러 개 켜놓고 어느 곳을 찍고 그다음 코스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거리 계산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안 그래도 코를 훌쩍거리는 바람에 머리가 꽤나 아팠는데 말이다. 오전 7시 30분 비행기여서 4시간 동안 쪽잠을 자고 오전 5시에 집을 나섰다. 아직 밖은 깜깜했고 새벽 공기는 차디 찼으며 둥그렇게 뜬 달은 우리를 반갑게 배웅하듯 훤히 밝혀주었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BA를 타고 2시간 40분이 지나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여행 의지를 굴복시켰던 감기몸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분명 전날 나는 런던에서 모직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리스본은 오전 10도 이전에 25도를 찍고 있었다. 전날 미리 공부했던 루트 덕에 나는 고민 없이 메트로로 향했고 24시간 트래블 카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30분 내로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맡겨둔 후에 나는 사진 속의 그 궁전을 보기 위해 신트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리스본 근교의 신트라라는 도시에 위치한 페나 궁전이었다. 사실 리스본에 있는 일정이 이틀밖에 되지 않아 시내 관광만 고집해도 되었을 텐데 나는 조금 더 욕심부리고 싶었다. 언제 다시 리스본을 찾을지 모르니깐.
시내에서 신트라까지 가는 기차는 50분에 한대 씩 있었다. 나는 Rossio 기차역으로 가는 길이 다 예뻐 보였다. 여기저기 멈춰 가며 사진을 찍는 바람에 기차를 5분 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시간 계산을 딱딱 맞춰가며 몰려오는 스트레스가 싫어서 그런지 5분 차이로 놓쳐도 아쉬워하지 않고, 오히려 30분 동안 기차역 근처를 두리번 거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하는 순간순간들이 나에게는 소중했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 마저도.
종점 역인 신트라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차했다. 신트라 역은 예쁜 근교답게 아줄레주 타일과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역으로 나오자마자 셔틀버스들이 나란히 대기하고 있었고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손짓하며 호객행위하고 있었다. 이때 도착한 시각이 대략 오후 두 시가 되었던 거 같다. 우리는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해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 먹을 곳을 물색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골목길을 조금 내려가다 보니 몇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유독 한 식당이 붐벼서 눈에 띄었다. 나는 아이폰을 꺼내어 Tripadvisor를 이용해 레스토랑 리뷰를 찾아봤다. 리뷰가 너무 좋은 나머지 나는 고민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테이블을 달라고 했다.
포르투갈에서의 첫 끼니인 만큼 우리는 기대를 많이 했다.
어머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완벽했던 첫 끼니였다. 스타터부터 디저트까지 모든 게 즐거울 정도였다. 더 놀라웠던 건 스타터, 메인, 디저트 그리고 와인까지 모든 코스 요리가 11유로였다는 것이다. 메뉴판을 보고도 믿기 힘들어 웨이터에게 재차 확인했다.
Incomum
주소: R. Dr. Alfredo da Costa 22, 2710-523 Sintra, Portugal
전화번호: +351 21 924 3719
36도 더위에서 마신 화이트 와인 때문인지, 여행 첫날이 주는 설렘 때문인지, 내 양쪽 볼이 살짝 붉어진 게 느껴졌고 내 표정은 인상 하나 없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바쁜 일상에서 쫓기듯이 먹는 점심이 아니라, 걱정거리 없는 사람 마냥 여유롭게 음식 하나하나 음미해가며, 시간이 우리를 제압하는 게 아닌, 우리가 시간을 제압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여하튼 나는 계속 빙구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고, 꾀나 유치한 드립까지 쳐가며 페나 궁전에 도착했다.
페나 궁전으로 올라가는 와중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포르투갈로 떠나기 바로 전 날 나는 런던 시내에서 어머니 생신을 기념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일본 사람들이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지 꾀나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페나 궁전으로 올라가는 와중에 런던 시내에 있던 그 많고 많던 중식 레스토랑 안에서 건너편에 앉아있던 일본 사람 세 명이 바로 포르투갈, 그것도 40분 떨어진 근교에서, 정확히 페나 궁전 가는 길에 떡하니 마주친 게 아닌가. 너무 소름 돋고 신기했다!
페나 궁전은 내가 여태 본 고대 궁전들과는 달리 알록달록한 동화 속 궁전 같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에버랜드에 있을 법한 살짝 오버스러운 아름다운 궁전 말이다. 현실 속에 이런 궁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런 궁전을 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는 게 너무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리스본에 이틀밖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신트라를 들릴까 말까 고민했던 나에게 실망할 만큼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곳이다. 비록, 시간이 부족해 궁전 안을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궁전 옆 정상에서 신트라를 내려다보았을 때의 그 느낌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