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3
올해, 난 서른이 되었다. 기분이 묘하다.
새해맞이는 늘 기대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벌어가며 거대하게 마시는 그런 날이었는데 올해는 앞자리가 바뀐다는 이유로 겸손하게 (?) 새해를 맞이했다. 20대의 마지막 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소소하게 보내는 게 더 의미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혹은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사람들과 의미 없는 새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00:00시에 런던 시내에서 시작하는 폭죽놀이를 보기 위해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을 켜고 맥주캔을 땄다. 나와 남자 친구는 스크린에 뜬 시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금세 2020년이 되었고 멋진 폭죽들이 마구 터지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10분가량 넘게 터지던 폭죽이 2분 만에 끝났다 ㅎㅎㅎ 브렉싯 때문이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지난 2019년을 돌아봤을 때 내가 제일 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 번 고민 없이 라식을 꼽고 싶다. 시력이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했지, 막상 수술이 잘못되면 어쩌지? 말로만 듣던 부작용이 심하면 어떡하지? 등의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웃기게도 라식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사소했다. 매일같이 안경을 끼고 다니던 내가 남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렌즈를 끼기 시작하니까 안구 건조증도 생기는 거 같고 일회용 렌즈를 챙기는 것 마저 일이었다. 그래서 결심했었다, 라식. 스마일 라식을 하고 난 후 둘째 날에 정말 모든 사물이 또렷이 보였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저 먼 아파트들의 동호수까지 읽혔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또렷했다. 너무 기쁘고 설렜다.
그럼 2019년에 제일 후회되는 건 무엇일까. 2019년에는 꼭 이직을 하고 싶었다. 막상 이직을 하려니 생각해야 할게 많았다. 이력서 업데이트도 해야 하고, 어느 쪽으로 커리어를 쌓을지, 포트폴리오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고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9월 말에 회사 측에서 연락이 왔다. 이 계기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력서 업데이트를 마쳤고 인터뷰 스크립트도 정리했다. 5명과 1:1로 6시간의 인터뷰를 5주 동안 하고 보니, 이직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이 템포를 유지해 2개월 동안 4곳의 회사와 면접을 봤다. 1차에서 떨어진 곳들도 있었고 감사하게도 최종까지 간 곳들도 있었다. 내가 이직 준비를 연초부터 했었더라면 진작에 이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는 나와 더 잘 맞고 내 커리어를 보다 더 잘 쌓을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