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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계 May 15. 2016

스탠리의 바다는 정갈하다

홍콩의 기분_6

버스를 타고 홍콩섬을 관통했다.

센트럴 버스터미널에서 길을 좀 헤매다 보니 260번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을 발견했다. 운이 좋아 버스가 들어오자마자 뛰어올라 2층 가장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버스 타고 슝슝-.


2층 버스 가장 앞자리는 홍콩을 즐기는 특급열차나 다름없다. 탁 트인 시야를 만끽하는 사이 버스는 홍콩섬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지난날 두 발로 걸었던 골목을 고가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2층 버스 앞자리에서 홍콩의 빨간 택시를 봤다


빅토리아 피크가 있는 산의 이름이 빅토리아 산인 줄 알았는데 '태평산'이랬다. 그리고 산이 하나인 줄 알았는데 동쪽 옆으로 뻗은 산의 이름은 금마론산이란다. 스탠리로 가기 위해선 금마론산읏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야 한다.


금마론산 터널을 지났더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산을 두고 나뉜 홍콩섬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터널을 지나기 전 홍콩이 바글바글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삶의 세계였다면, 터널을 지나 만난 리펄스베이의 풍경은 한가로운 휴양지 그 자체였다.


리펄스베이와 사람들


듬성듬성 바다를 보고 지어진 별장들과 한적한 공원, 고급스러운 테니스코트들 그리고 도로를 줄지어 자리 잡은 유명 자동차 브랜드 매장까지. 이 모든 것들을 지나 스탠리 해변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전통시장 골목을 지났다-.

스탠리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바닷가가 펼쳐져 있진 않다. 버스 내린 곳에서 뒤로 돌아 왼쪽 골목으로 내려가면 시장 골목이 나오는데, 유럽 어딘가의 바다 마을 연상캐하는 시장을 지나서야 탁 트인 해변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스탠리 해변에서 본 바다


스탠리의 해변의 첫인상은 정갈한 바람이 부는 바닷가였다. 스탠리 만의 모양을 따라 줄지은 식당들이 눈에 띄었다. 저마다 정갈한 음식들을 내걸고 관광객들을 모으려 애쓰고 있었다. 순간 나도 혹했지만 지역의 특색을 느끼기 힘든 메뉴였기에 참고 지나갔다(고소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질여 애를 먹었다).


적석, 바다 그리고 어색한 나


스탠리 해변은 적석이 주는 아름다움이 상당했다. 큼직큼직하게 바다를 향해 뻗은 바위들이 시퍼런 바닷물과 묘한 조화를 이뤘다. 폴짝폴짝 바위를 밟고 최대한 물가로 나가보았다.


이상하게도 스탠리 바다에선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스탠리 구경을 마치고 리펄스베이 쪽으로 이동할까 하다가 호기심이 생겨 안내지도에 작게 표시되어있던 '군인묘지'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리펄스베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2~3km 걸으니 금세 묘지에 도착했다.


좌측과 뒷편에 보이는 건물은 교도소다


공동묘지 자체의 스산한 분위기와 바로 옆에 붙어 있던 교도소의 생경함 그리고 이 모든 감정들과 너무나 정반대로 청명한 날씨, 아기자기한 묘석들, 탁 트인 바다 전망이 멜랑꼴리 했다.




다시 리펄스베이로 가는 길.

 리펄스베이로 돌아가기 위해 스탠리로 들어올 때 탔던 버스에 다시 올랐다. 곧장 리펄스베이로 가려던 찰나 스텐리 해변을 조금 지나 즐비해있는 고가의 주택들에 시선이 쏠렸다.


이런이런.. 또 한번 기심이 발동해 무턱대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길을 따라 내려가며 빌라 단지들과 한눈에 보기에도 값이 상당할 것 같은 주택 단지를 기웃거렸다.


집집마다 차고에 외제차는 물론이고, 카약(?) 비스무리한 것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을 때 즘, 저기 멀리 한 집에서 부자지간을 보이는 아저씨와 아이가 카약을 함께 지고 나왔다.


그들만의 해변으로-.

부자(父子)를 따라 길을 조금 더 내려가 보니 관광객이 아닌 이 곳 주민들만을 위한 작은 해변이 있었다. 여유롭게 서핑을 하거나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이상한 나라 속 또 한 번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해변에 나무가 있다


리펄스베이의 나무들.

우여곡절 끝에 홍콩섬 남부를 빠져나오는 길에 리펄스베이에 들렀다. 모래알이 고운 백색인 것이 인상 깊었다. 해변의 크기도 크지 않고 딱히 물이 맑은 것도 아니었는데 알 수 없는 청량감과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졌다.


나무 때문이었으리라.


리펄스베이의 모래사장에는 듬성듬성 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바닷모래로 이뤄진 해변에 나무가 자란 모습이 독특했다. 우리나라도 동해안을 가면 해송이라 하여 바닷가에 소나무가 자란 것을 많이 봤었는데 여긴 특정 종류의 나무가 아니라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뿅- 뿅- 나있었다.




홍콩섬 남부 여행은 여러모로 이상했다. 금마론산의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흔히 알고 있는 홍콩'으로 돌아오고 나니 더욱이 꿈이었나 싶었다.


기분이 하도 묘해 다음번에 홍콩에 오면 그 세계에서 하룻밤 묵어보고 싶어 졌다.


그랬다가 엘리스처럼 못 나오게 되는 건 아니겠지?


사진은 직접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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