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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찬 Jan 01. 2020

[단편소설] 유령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둔 열람실은 특별했습니다. 첫 키스에 대한 기대와 종강의 후련함이 학생들의 머리 위에서 비눗방울처럼 떠다녔습니다. 두툼한 점퍼 위로 무채색 목도리를 아무렇게나 두르고 다니던 여학생도 플레어스커트에 검은색 스타킹을 받쳐 입었고, 한번 자리에 앉으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 돌하르방이라 불리던 남학생에게서도 산뜻한 향수 냄새가 풍겼습니다. 펜을 떨어트리는 작은 소음에도 신경질적으로 눈을 흘기던 사람들마저 그날만큼은 나사가 풀린 듯 관대했습니다.

 중앙도서관 3열람실 22번 좌석. 저는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그 작은 공간에서 보냈습니다. 통로 쪽이라 화장실 가기도 편하고 겨울에도 외풍이 느껴지지 않아 특히 여학생에게 인기가 많은 자리였습니다. 자리를 차지하려면 늦어도 새벽 5시 반에는 자취방을 나서야 했습니다. 잠이 부족해 늘 피곤했지만 남들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는 자부심 덕분에 그럭저럭 견딜만했습니다. 물기가 깨끗이 마른 공용 화장실에서 누구보다 먼저 샤워를 하는 기분도 괜찮았고요. 가끔 간발의 차이로 자리를 놓친 날이면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근처를 서성거렸습니다.

 사람이 매일 바뀌는 출입구 근처와는 달리 구석자리에는 대체로 같은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얼굴을 맞대고 있다 보니 우리는 서로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책에 적혀 있는 이름과 학번은 물론이고 독특한 버릇이 무엇인지까지. 앞자리 여학생은 집중이 되지 않으면 잡념을 떨치려는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고, 옆자리 남학생은 피곤할 때마다 엄지손톱을 깨물었습니다. 사소한 습관까지 속속들이 아는 사이였지만 우리는 말 한마디 나눠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화를 금지당한 채 성경을 필사하던 중세의 수도사처럼 묵묵히 각자의 책과 씨름할 뿐이었죠.

 4인용 책상을 함께 사용하던 사람들은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들의 자리에는 사전을 방불케 하는 두꺼운 책들이 성벽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숨 막히게 비좁은 요새 속에서 그들은 형형색색의 펜과 포스트잇을 사용해가며 정리와 암기를 반복했습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몇 년을 지내다보니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어도 시험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이 코앞에 닥치면 폭발이 임박한 시한폭탄의 경고음처럼 쉴 새 없이 책장이 넘어갔습니다. 수험생들은 빨간 선을 자를지 파란 선을 자를지 고뇌하는 표정으로 종일 단내를 뿜어냈습니다. 저러다가 시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쓰러지는 건 아닐까 싶어 옆에 앉은 저까지 초조해지곤 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라진 사람이 시험에 합격한 것인지, 공부장소를 바꾸거나 군대에 끌려간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저는 신춘문예를 준비했습니다. 닮고 싶은 작가의 소설을 읽고, 응모할 작품을 쓰거나 고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궁금했습니다. 새벽부터 도서관에 나와 소설을 읽거나 쓰는 학생은 흔치 않았으니까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혼자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이따금 그들의 이질적인 시선이 느껴질 때면 저는 더 악착같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마감 직전에는 일부러 밤을 새워 퇴고를 거듭하기도 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공무원 시험 합격처럼 지난한 노동의 대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아빠가 20년 넘게 구독하신 신문을 골라 한해도 빠짐없이 응모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아빠는 정리해고를 당하신 뒤에도 아침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 앞에 배달된 신문부터 펼치셨습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해 첫날 새벽, 아빠가 조용한 거실에서 신문을 넘기시다가 제가 쓴 소설을 발견하고는 허둥지둥 엄마를 깨우는 장면을 늘 상상했습니다.

 뭐랄까. 그건 애정과 복수심이 묘하게 결합된 감정이었습니다. 아빠는 공부를 곧잘 하던 제가 교대에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셨거든요. 잘릴 걱정이 없는 교사야말로 최고의 직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아빠의 바람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판단하기 마련이니까요.

 아빠는 막걸리를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평생을 보내셨습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뉴스나 드라마를 보다가 잠드는 생활이었죠. 좋게 말하면 평온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싸구려 커피처럼 밋밋하고 단조로웠습니다. 언제까지나 잔잔할 것만 같던 아빠의 삶은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달라졌습니다. 회사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급하게 설비를 확충하고 인력을 늘렸습니다. 아빠는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돌아오시기 일쑤였고, 어쩌다 일찍 들어오시는 날에도 업무를 보고받거나 지시하느라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셨습니다. 엄마와 저는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출근하는 아빠의 눈에서 전에 없던 생기가 느껴졌거든요. 그즈음의 아빠는 오랫동안 벤치만 지키다가 뒤늦게 주전으로 발탁된 노장 선수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불행히도 막걸리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장은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결정하고 팀별로 인원을 할당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뽑은 후배들을 자를 수 없다며 버티던 아빠는 결국 가장 먼저 정리해고 되셨습니다. 다른 직장을 구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불혹에 가까운 아빠에게 새로운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대학입학을 앞두고 이 모든 일들을 겪으신 아빠는 제가 교대에 진학하길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집을 꺾지 않고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습니다. 교직을 이수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죄송하게도 창작에 몰두하느라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요.

 통상 크리스마스 전날까지는 당선 통보가 이루어집니다. 당선자를 신문사로 초청해 기념사진도 찍고, 당선작과 함께 당선소감도 실어야 하니까요.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자취방 근처 우체국에서 몰래 응모작을 보낸 날부터 저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당선자가 바뀌기라도 할까봐 두려웠거든요.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상상이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마지막 신춘문예마저 떨어지면 빈손으로 대학을 떠나야 했으니까요.

 오후 6시가 가까워지도록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화사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4인용 책상에는 어느덧 저 혼자 남았고, 열람실을 통틀어도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만 띄엄띄엄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연고자만 묻히는 거대한 공동묘지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창밖으로 진눈개비가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앉아있느니 자취방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집 앞 편의점에서 라면이랑 김치라도 사서요. 노트북에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두고 뜨거운 국물이라도 마시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평소 같으면 충분히 유쾌해질 상상이었지만 그날은 기분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라면과 김치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제게 허락된 전부라는 사실보다 제 상상력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라는 게 더 비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바람을 실현할 방법은 없을 테니까요.

 점점 굵어지는 눈송이를 초점 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봤습니다. 냉정한 아라비아 숫자가 오후 6시를 가리켰습니다. 학생이라는 핑계가 마지막 효력을 다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탓인지 열람실이 유난히 썰렁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취방으로 올라가는 골목은 경사가 꽤 가팔랐습니다. 눈이 쌓이기 전에 돌아가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소지품을 챙기며 다짐했습니다. 누구라도 여기 앉아있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준다면 평생 그 사람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K에게서 거짓말처럼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특별한 약속 없으면 저녁이나 먹자.”

 K는 영문과를 졸업한 선배로 저와는 창작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1년 정도 함께 활동했습니다. 지방 출신인 K는 잡지사에 취직한 뒤에도 학교 근처 원룸을 떠나지 않았고, 이따금 동아리 방에 찾아와 후배들에게 밥이나 술을 사주곤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날 만큼 특별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K가 저를 여자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잠시 의심해 보았지만 손에 잡히는 단서는 없었습니다.

 K가 열람실 구석자리에서 저를 구원해줬다고 해도 자존심 때문에 바로 답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K가 다른 약속을 잡기에는 충분치 않은 시간이 흐른 다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만나려던 친구가 갑자기 감기에 걸려 마침 집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어디로 갈까요?”

 우리는 후문 근처 호프집에서 만났습니다. 안주가 싸고 푸짐해서 끼니까지 때울 수 있는 가게였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싸구려 호프집이 K와 제가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는 것 같아 저는 안도했습니다. K는 자리에 앉자마자 저에게 묻지도 않고 치킨과 맥주를 시켰습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뭔가를 결정할 때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는 일 따위는 없었습니다. 이런 그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친구도 있었지만, K에 대한 후배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K는 후배들이 이사를 할 때면 중고차를 몰고 와 손수 짐을 나르고, 엠티를 가면 가장 먼저 일어나 밥을 안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가 등록금을 구하지 못해 휴학하려던 후배에게 적지 않은 돈을 빌려줬다는 건 동아리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일화였습니다.

 치킨은 바삭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혼자서 먹는 라면과 김치보다야 나았으니까요. K는 간간이 맥주를 들이키며 직장 상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을 쓰는 제가 얼마나 무모한지 훈계했습니다. 저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K의 얘기를 흘려들으며 네, 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혹시 심사위원끼리 의견이 갈려서 연락이 늦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지막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로.

 “발표 기다리니?”

 조심스런 말투로 K가 물었습니다.

 “아, 아니요.”

 당황한 저는 허둥지둥 핸드폰을 외투 주머니에 넣으며 태연한 척 대답했습니다. 특별한 날이라 엄마한테 전화라도 드릴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같은 핑계를 댔다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거라고 후회하면서.

 “발표 끝났어. 가끔 들어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봤거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보려던 순간 K가 말했습니다.

 부끄러움과 열패감이 해일처럼 밀려왔습니다. 탈락이 확정됐다는 사실보다 거짓말을 들켰다는 게 더 부끄러웠습니다. K가 저를 떨어트린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가 미워졌습니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느닷없는 제 행동이 K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 줄까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낡은 고기집의 오래된 식탁처럼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이따금 K와 제가 맥주잔을 내려놓는 소리만 정적을 깨트렸습니다. 부끄러움을 이기려고 서둘러 마신 술 때문인지, 머리위로 작렬하는 전기히터의 열기 때문인지 술기운이 빠르게 올라왔습니다. K가 두 번째 안주로 골뱅이 무침을 시킬 무렵부터 시야가 조금씩 흐려지는가 싶더니 결국 상기된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끝내 부인하고 싶었지만 멈추지 않는 눈물이 저간의 사정을 담담하게 자백했습니다.

 비틀거리며 호프집을 빠져나오다 건물 계단에 주저앉았습니다. 자취방까지는 버스로 고작 두 정거장 거리였지만 돌아갈 일이 막막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다리나 미끄러운 비탈길보다 더 두려운 건 방 곳곳에서 저를 노려볼 내역서들이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저는 매달 학자금 대출 내역을 인쇄해 냉장고와 침대 맡에 붙여뒀습니다. 이 많은 빚을 지고도 배불리 먹을 자격이 있는지, 일찍 잠들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취지였죠. 그날 밤에는 그 매정한 종잇조각들이 제게 살아있을 자격이 있는지 물을 것만 같았습니다.

 조금씩 술이 깨며 심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어두운 복도 쪽으로 사라졌습니다. 한걸음 떨어져 앉아있던 K가 말없이 다가와 어깨를 감쌌습니다. 저는 K의 팔을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밤이었으니까요. 다음날 아침 우리는 K의 방에서 함께 일어났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집에서 부쳐주던 생활비가 끊어졌습니다. 형편도 형편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최소한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리신 결정이었을 겁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밥을 굶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종일 바코드를 찍고 머그컵을 닦아도 슬리퍼나 쓰레기통 같은 소소한 물건을 살 때조차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빠듯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채무자의 상황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대출금은 착실히 몸집을 불렸습니다. 밤마다 흉측한 괴물이 꿈에 튀어나와 헛된 희망을 품은 대가를 토해내라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몸이 고되고 돈이 없는 건 그나마 견딜만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글이 전혀 나아가지 않는 상황은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멍하게 노트북만 바라보다 잠드는 날이 반복되자, 나는 글 쓰는 사람이야, 라는 마지막 자부심마저 서서히 증발했습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데는 K의 도움이 컸습니다.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선배에게 부탁해 학생들의 원고를 첨삭하는 일을 소개시켜 주었으니까요. 단계마다 똬리를 튼 사람들이 조금씩 떼어가고 나면 제 손에 떨어지는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해진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일주일에 3일 정도 쉬지 않고 일하면 나머지 시간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글 쓰는 일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무렵 K에게서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밤새 아이들의 원고를 첨삭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한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막아보려고 싸구려 커피믹스를 잔뜩 풀어둔 머그컵에 막 뜨거운 물을 부으려던 참이었죠. 갑작스런 벨소리에 놀라 시간부터 확인했습니다. 일요일 오전 8시 30분. K에게서 전화가 올만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가능성은 둘 중 하나. 아주 나쁜 소식이거나 그 반대였습니다.

 “일요일 아침부터 웬일이에요?”

 긴장된 목소리로 K에게 물었습니다.

 “웬일은. 내가 시간 맞춰 전화하는 영어회화 선생님도 아니잖아.”

 K의 농담 섞인 대답에 이내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뜻밖의 시간에 전화가 오니까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지 걱정했잖아요.”

 “아니 사실은 그 반대야. 저녁에 시간 비워놔.”

 무슨 일이야고 묻기도 전에 휴대폰에서 통화 종료음이 울렸습니다.

 K가 전화를 하는 시간은 주로 목요일이나 금요일 퇴근 무렵이었습니다. 통화는 저녁에 맥주나 한잔 하자는 K의 제안과 네, 라는 저의 짧은 대답으로 몇 초 만에 끝이 나곤 했습니다. K의 전화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비춰질까봐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K는 좀처럼 집밖으로 나가지 않던 저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주는 하나뿐인 창문 같은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날 저녁 우리는 서울 근교의 어느 지하철역에서 만났습니다. K는 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일식집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의 회색 건물이었습니다. 출입문 오른편에 자리 잡은 넓은 주차장에는 검은색 중형차가 띄엄띄엄 세워져 있었습니다. 자동문을 통과하자 파르테논 신전을 흉내 낸 대형 분수대에서 은은하게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검은 대리석 바닥에 박힌 펄들은 사막의 별처럼 반짝거렸습니다. 바닥에서 반사된 불빛들이 낯선 남자의 시선처럼 저를 관통하는 기분이 들어 잠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보이지 않던 소매 끝 보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에 들어가면 차려입고 오라고 말해 주지 않은 K에게 한마디 쏘아붙여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정작 차려입을 옷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검은색 양복에 황금빛 명찰을 단 직원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K가 이름을 말하자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이 다가와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벚꽃이 수놓인 치마 사이로 미끈한 다리가 드러났습니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과도한 친절은 늘 저를 긴장시켰습니다. 목감기에 걸린 친구를 대신해 합창단 사이에서 입을 뻥긋거리는 아이처럼 자격 없이 남의 자리를 차지한 기분이랄까요. 여기서 저녁을 먹으면 도대체 얼마나 나올까 궁금해질 무렵 종업원이 가장 구석진 방의 미닫이문을 열었습니다. 문틈 사이로 굵게 웨이브가 들어간 여자의 뒷머리가 보였습니다.

 “손님들 도착하셨습니다.”

 종업원의 말투에는 오랜 훈련으로 체화된 공손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들어오세요.”

 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습니다.

 “안쪽에 앉지 그러셨어요.”

 K가 방으로 들어서며 멋쩍게 입을 열었습니다.

 “귀한 손님들인데 상석에 모셔야죠.”

 종업원이 살짝 열어둔 미닫이문을 힘주어 닫으며 여자가 말했습니다.

 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놀랍게도 맞은편에 앉아있는 건 여배우 J였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여러 드라마에 겹치기로 출연했던 J는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는 그녀의 근황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어디선가 몰래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녀의 기운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제가 직접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정이 바쁘다보니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고요.”

 “이 작업을 저분께 맡길까도 생각해 봤는데…”

  J가 턱 끝으로 K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여자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J의 얘기를 듣자 제가 왜 그 자리에 앉아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J의 책을 대필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잘라 거절하지도 못했습니다. 평생 K를 배신하지 않겠다던 그날의 다짐과 그 순간에도 불어나고 있을 대출 이자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글 솜씨가 뛰어나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들었습니다.”

 “입이 무겁다는 얘기도요.”

 딱히 목소리를 높인 것도 아닌데 J가 마지막 문장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면 섭섭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J가 옆에 놓인 종이가방을 상위에 올리며 말했습니다.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J는 진홍색 캐플린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에세이집은 이혼한 여성의 홀로서기, 혼자서 딸을 키우는 엄마의 고단함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제가 자취방에서 집필에 몰두하는 동안 J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즘, 동성애, 난민, 미혼모, 권력형 비리 등 가장 예민한 이슈를 찾아내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오랜 경험 덕분인지 그녀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일단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되는 순간 가장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대중은 전사가 되어 돌아온 J에게 열광했고, 기자들은 그녀의 게시물을 퍼 나르기 바빴습니다.

 J의 에세이집은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책의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름과 사진만 인쇄되어 있다면 이면지라도 팔려나갈 기세였으니까요. 대학시절을 통째로 갈아 넣은 저의 작품은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는데, 그녀의 이름으로 출간된 제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걸 지켜보는 심경은 여러모로 복잡했습니다. 특히 결혼을 해본 적도,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저의 글에 진심으로 위로받았다는 후기를 볼 때면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J는 북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저는 자취방에서 노트북으로 현장을 지켜봤습니다. 행사에 초대받지 못할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저였으니까요.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대중문화평론가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어떤 계기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느냐, 책을 통해 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냐 같은 하나마나한 질문들이 지루하게 이어졌습니다. 사회자조차 책을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가 소화하고 있을 살인적인 스케줄을 고려한다면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건 관객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관객들은 J와 사회자의 공허한 문답을 들을 때마다 감동어린 눈빛으로 탄성을 질렀습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의 노래에 과장되게 환호하는 엄마들처럼. 마지막 순서로 동료 연예인들의 축하 영상이 방영되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J의 열정에 감탄을 쏟아내던 동료들은 그녀가 바쁜 와중에 어떻게 책까지 썼는지 모르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콘서트 전체가 거대한 사기극처럼 느껴졌습니다. 자기가 쓰지도 않은 책을 소개하는 J와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칭찬하는 사회자, 그들의 의미 없는 문답에 감탄하는 관객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배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한 기자가 J에게 물었습니다. 연예인은 대필 작가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느냐고.

 “부끄럽지만 어릴 때부터 틈틈이 습작을 해와서인지 글 쓰는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오탈자를 봐주기는 했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의 힘과 노력으로 썼습니다.”

 J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혹시 의심하는 분이 계실까봐 원고를 직접 들고 왔어요.”

 의자 밑에서 두툼한 종이 뭉치를 꺼내며 J가 덧붙였습니다.

 확신에 찬 J의 눈빛과 말투에 하마터면 저까지 그 말을 믿을 뻔 했습니다. 행사 내내 심한 메슥거림을 느끼던 저는 결국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습니다. 저녁으로 먹은 삼각 김밥의 잔해들이 편의점 비닐봉투 위로 어지럽게 흩어졌습니다.     

 어찌됐건 이 거대한 사기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학자금 대출을 해결했고, J는 사람들의 관심을 되찾았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문학 전문 블로거가 대필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사용된 어휘와 에세이집에 사용된 어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으며, 페이스북과는 달리 에세이집에서는 띄어쓰기 실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J는 가벼운 페이스북과 진중한 단행본에서 같은 어휘를 사용할 수는 없으며, 출판사의 교정을 거쳤다는 사실은 이미 인정했다며 의혹을 전면적으로 부인했습니다. 미리 준비된 것처럼 신속하고 논리적인 반박이었습니다.

 상황이 진정될 무렵 익명의 게시물이 꺼져가던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J가 책을 직접 썼다면 굳이 원고를 인쇄해서 펜으로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북 콘서트에서 그녀가 꺼내들었던 원고가 오히려 대필의 단서가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J는 이동하는 차속에서도 틈틈이 원고를 수정하기 위해 인쇄본을 가지고 다녔다고 반박했습니다. 흠잡을 곳 없는 대응이었습니다. 에필로그에 책을 집필하는 3개월 동안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내용만 없었다면요.

 J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한 상어 떼처럼. 그들은 진실을 요구하는 카페를 만들고, 그녀를 비난하는 게시물을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렸습니다. 공공연히 알려진 대필 작가의 글과 J의 책을 비교하는 작업도 대대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두려우면서도 우스웠습니다. J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만 권씩 책을 사주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녀의 거짓말을 밝혀내기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요. 다행히 그들이 저를 찾아낼 방법은 없었습니다. 저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작가였으니까요. 그들이 저를 찾아내는 건 뱃속의 아이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좁은 자취방에서 숨을 죽인 채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이빨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 크고 싱싱한 먹잇감이 나타날 때까지 버티는 방법밖에 없었으니까요.


 며칠을 기다려도 그 흔한 열애설 하나 터지지 않던 어제 저녁 K가 불쑥 자취방 앞으로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습니다. 대필 의혹이 불거진 뒤부터 우리는 각자의 은신처로 숨어든 공범들처럼 만남을 삼갔으니까요. K는 골목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더니 다짜고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아무런 단서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웬 돈이냐고 물었습니다. K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J가 보냈다고 하더군요. 저는 봉투를 받지도 액수를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불안한 침묵이 이어지자 K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습니다. 책이 잘 팔려서 보너스로 주는 거니까 그냥 넣어둬. K는 팔짱을 끼고 있던 제 손을 억지로 잡아당겨 종이봉투를 쥐어주고는 황급히 비탈길을 내려갔습니다.

 녹슨 대문 앞에 서서 멀어지는 K의 뒷모습을 지켜봤습니다. K는 시간이 늦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저를 자취방 앞까지 바래다줬는데, 큰길로 이어지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곤 했습니다. 마치 제가 지켜보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저는 허세가 잔뜩 낀 K의 작별인사를 사랑했습니다. 웬일인지 어제는 K가 걸음을 멈추고 저를 돌아보더군요. 가로등을 등진 K의 실루엣이 비극적 멜로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쓸쓸했습니다. 정지화면으로 한참을 서있던 K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듯 큰길 쪽으로 사라졌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종이봉투부터 구석으로 던졌습니다. 봉투를 열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세상의 온갖 재앙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불길한 예감을 떨쳐보려고 습관처럼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홈페이지로 설정해 둔 포탈에서 J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또 무슨 일이 터졌나 싶어 J의 이름을 클릭했습니다. 대필 논란에 시달리던 J가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습작하던 단편소설을 공개했다는 내용의 비슷한 기사들이 연이어 올라와 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며 J의 공식 팬사이트로 들어갔습니다.

 J가 공개한 작품은 제가 신춘문예 응모를 앞두고 의견을 묻기 위해 K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K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왜 전화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K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핸드폰 너머로 K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넌 재능이 있어. 소설이야 다시 쓰면 되잖아.”

 세 번째 연기를 뿜으며 K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전세금이라도 마련하면 좋잖아. 언제까지 월세 걱정하면서 애들 글짓기나 봐주고 있을 거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K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미안해. 이게 너한테도 좋을 거라 생각했어.”

 터무니없는 변명에도 잠잠하던 분노는 오히려 사과의 말에 폭발했습니다.

 “왜 그걸 선배가 판단하죠?”

 벽을 향해 날아간 핸드폰이 묵직한 파열음을 내고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제가 잃은 것이 작품인지 K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온 몸의 피가 일시에 흐름을 멈춘 것처럼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작동을 멈추지 않은 눈에서만 끝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구겨진 종이처럼 밤새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창밖이 밝아올 무렵에야 간신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살얼음처럼 액정이 갈라진 핸드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K에게서 온 것일까 싶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화면을 열었습니다.

 “물건 잘 받으셨죠?”

 등록되지 않은 번호에서 발송된 문자에는 미안하다거나 감사하다는 말도, 그간 잘 지냈냐는 형식적인 안부 인사도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J의 문자를 확인하자 밤새 저를 휘감았던 슬픔과 무기력이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갑자기 할 일이 떠오른 건망증 환자처럼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가느다란 커서가 쉴 새 없이 깜빡거리며 이 글을 쓰라고 저를 재촉했습니다.

 이 글은 아마도 제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 되겠지요. 조그맣고 동그란 등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다시는 예전의 저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적어도 이 글은 제가 쓴 글로 기억될 테니까요.


 종일 글을 쓰며 이따금 생각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치킨 대신 라면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하구요.


By hobvias sudoneig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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